울산 유일의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 ‘운곡도가’[막걸리 열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달큰한 탁주 ‘토끼구름’

[막걸리 열전]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끝자락에 있는 울산 중구 다운동, 한적한 골목 어귀에 ‘운곡도가’가 있다. ‘구름이 끼는 골짜기’라는 의미를 지닌 다운동의 옛 지명 운곡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구름이 낀 골짜기 위에 앉아 있는 토끼 한 마리. 운곡도가의 탁주 ‘토끼구름’의 라벨 그림이다. 몽글몽글한 분홍빛 구름들과 새하얀 토끼, 반짝이는 펄을 덧입힌 어여쁜 토끼구름 라벨은 많은 전통주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뽐낸다. 운곡도가의 황정의 실장을 만나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입맛까지 사로잡은 토끼구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다운동의 옛 지명 운곡마을에서 이름을 딴 ‘운곡도가’.


가양주를 복원하다
운곡도가는 가양주(家釀酒 : 집에서 담근 술)를 복원하려는 황 실장의 아버지 황광조 대표의 일념에서 시작됐다. 황 대표의 집안은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대대로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 마셨다고 한다. 집안의 전통 양조법을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한 끝에 2018년 원래 살던 주택 1층을 개조해 소규모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인 운곡도가를 설립해 옛사람들의 주막처럼 술을 직접 빚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운곡도가는 울산 유일의 전통주 주점으로, 운곡도가에서 제조한 막걸리는 물론 지역 특산 막걸리와 프리미엄 막걸리·약주·소주 등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만든 제품은 가양주 양조법을 기반으로 한 삼양주 ‘황감찰’로 도수가 높고 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울산 울주군 고헌산 자락 차리 마을에서 재배한 햅쌀과 햇찹쌀로 정성껏 빚고 여기에 참당귀 뿌리, 생강, 곰솔 잎 등을 재료로 사용해 약재 특유의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다. “주점의 장점은 손님들의 반응을 바로 확인해 운곡도가가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황감찰은 막걸리에 익숙한 손님들에겐 반응이 좋았지만 막걸리가 낯설거나 접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술이라 좀 더 대중적인 탁주를 만들었어요.”

황정의 운곡도가 실장.


‘토끼가 구름 위를 뛰어다니는 맛’이라는 의미의 ‘토끼구름’.


고객의 취향을 반영해 만든 탁주 ‘토끼구름’
대중의 취향을 저격할 운곡도가의 새로운 막걸리 ‘토끼구름’이 완성됐다. 새하얀 토끼구름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달큰한 솜사탕 맛 구름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기분 좋은 배 향과 멜론 향이 맴돌다가 마지막에 바닐라 향으로 마무리된다. “토끼구름이란 이름은 지인이 ‘토끼가 구름 위를 뛰어다니는 맛’이라고 표현한 것을 그대로 차용했어요. 심지어 그때 느낀 맛과 감각을 그대로 로고로 만들어 이렇게 예쁜 패키지도 만들 수 있었죠.” 고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도수도 6.8로 높지 않고 입에 물리는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한 병을 마시면 두 병, 세 병 계속 이어진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막걸리를 찾던 사람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고 토끼구름에 대한 수요가 급상승하면서 운곡도가 한편에 자리한 16.5㎡(5평) 남짓한 양조실과 숙성실은 더 바빠졌다. 평소 1주일에 100병 정도 제조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토끼구름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0병까지 제조량을 늘렸다.

토끼구름은 다섯 번 발효 시킨 오양주에 속한다.


다섯 번 발효하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토끼구름이지만 만드는 정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통주는 발효 횟수에 따라 단양주·이양주·삼양주·사양주·오양주로 분류되는데 토끼구름은 다섯 번 발효한 오양주에 속한다. 오양주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술이 완성되기까지 시간과 정성도 많이 들어간다. 제조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효 기간만 한 달 가까이 걸리다 보니 숙성실이 늘 포화 상태다. 이렇게 여러 차례 빚으면 날카로운 맛은 휘발되고 부드러운 맛과 향은 남는다. 하지만 토끼구름의 매력은 부드러움만이 아니다. 미숫가루를 타 마시는 것처럼 이물감이 남는데 고두밥 대신 쌀가루를 사용해 제조하기 때문에 이런 입자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쌀가루는 입자가 작아 발효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거친 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토끼구름에 대한 인기는 원주(原酒)로 이어진다. “토끼구름 원주 맛을 궁금해하는 손님들이 늘고 있어 희석되지 않은 원주도 한정으로 판매합니다. 맛의 차이에 놀라는 손님들이 많아요. 앞으로도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싶어요.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이 가진 강점을 더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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