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 편입하는 펀드매니저들…공급량 한정되 물가 오르면 투자 매력 커져
[스페셜 리포트] 재테크 대전망 – 암호화폐 투자“새로운 경제 재앙이 닥칠 것이다. 비트코인(BTC)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한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 최고경영자(CEO)가 12월 7일 미국 경제 전문 매체인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현금은 안전한 투자가 아니다”며 “포트폴리오에는 가상 자산 같은 디지털 자산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1차 ‘코인 붐’이 꺼질 때 암호화폐 시장의 미래를 낙관한 이는 많지 않았지만 2020년 코인 광풍이 다시 불며 암호화폐의 자산 가치를 묻는 질문은 해묵은 논쟁이 됐다. 각국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속속 도입하고 코인 비즈니스 모델은 메타버스·게임·플랫폼 등 첨단 산업과 연결되면서 무궁무진한 미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제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주요 투자 자산 중 하나로 암호화폐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2022년 투자 바구니에 암호화폐를 담는다면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까.
①기관투자가
펀드매니저 68%, 암호화폐 투자하거나 고려 중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암호화폐 시장의 상승기는 기관투자가들이 주도한 ‘기관 장세’였다. 하지만 올 4월 고점을 찍은 뒤 주도 세력이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한 개인 투자자로 바뀌면서 값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변동성 장세로 전환됐다. 주식 시장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굴려야 하면서도 꾸준하고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 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가 암호화폐의 전망을 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테슬라와 비트코인 등의 가격 랠리를 미리 예상한 월가에서 ‘황금손’이자 한국에선 ‘돈나무 언니’로 불리는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는 여러 차례 “기관투자가들이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5% 정도만 가상 자산에 투자한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50만 달러(약 6억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인 12월 9일에도 미국 경제 전문 매체인 CNBC방송에 출연해 “암호화폐는 여전히 제도권 내 기관투자가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기관투자가들이 서서히 암호화폐 쪽으로 자금을 옮기고 있는 만큼 앞으로 투자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며 “비트코인 가격이 50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계 투자은행인 나틱시스가 최근 기관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도 우드 CEO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기관투자가들이 앞으로 디지털 자산을 더 많이 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설문에 참여한 펀드매니저 500명 가운데 40%가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답했고 28%는 “이미 가상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지난 4월 역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6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 추가 진입을 꺼리는 듯했던 기관투자가들이 최근 가파른 조정 국면에서 다시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이클 세일러가 이끄는 나스닥 상장사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12월 9일 1434비트코인을 추가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평균 매수가는 5만7477달러(약 6766만원), 총 매입 규모는 8200만 달러(약 965억원)다. 이 회사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총 12만2477BTC로, 현재 가격 기준으로 59억 달러(약 7조원)다. 이는 전 세계 기업 중 비트코인 보유액 1위 규모다.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의 참여에 따라 시세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시가 총액 상위 코인들을 선제적으로 사 모으는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는 시기”라고 조언했다.
②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금과 함께 부상
암호화폐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상관관계도 주목할 부분이다.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면 공급량이 한정된 암호화폐는 투자 매력도가 커지기 마련이다. 일종의 ‘위험 회피(헤지)’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금과 함께 부상하는 것이다.
올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990년 12월(6.3%)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6%대에 올라섰을 때에도 비트코인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12월물 가격은 5개월 내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강대석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 가격의 연간 변동을 소비자물가지수 변동과 비교할 때 6개월 선행 시 0.40으로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며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발생 이후 최근까지 인플레 국면에서 비트코인이 큰 변동성 속에서도 인플레이션 헤지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강 애널리스트는 “이 관계를 감안하면 추후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떨어지지 않거나 높은 수준이 유지되면 비트코인이 다시 전년보다 강세 폭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제 시장의 눈은 미국 중앙은행(Fed)으로 향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전문가들은 Fed가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속도를 높여 내년 1분기 양적 완화를 완료, 상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NBC가 이코노미스트·전략가·자산운용사 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내년부터 2년 동안 각 3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해 현재 제로(0) 수준의 금리를 2023년 말까지 1.50%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2024년 5월까지 금리가 2.3%를 달성할 때까지 인상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내년 인플레이션이 4%에 육박하고 내후년엔 3%에 가까운 2.9% 수준으로 예상했다. 완화되더라도 Fed 목표치인 2%를 뛰어넘을 것이란 설명이다.
‘비트코인은 강했다’의 저자인 오태민 멘델체인 대표는 “2022년 기적적으로 팬데믹 상황이 종료돼 모든 정부가 이자율을 올리고 시장에 돈을 더 풀지 않는다면 비트코인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조기 종식될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시 비트코인을 통한 인플레이션 헤지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 또한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부각되며 이미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암호화폐”라며 “향후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면 기관투자가의 유입으로 매수세가 강하게 유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③메타버스
NFT 등 메타버스에서 암호화폐 거래 증가
‘메타버스’가 가져올 시장 변화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현실의 세계를 초월한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소비·생산·투자 등 경제 활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때 근간이 되는 것이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이다. 메타버스에서의 경제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자산’인데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는 데 NFT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도 산업의 메가트렌드가 된 메타버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암호화폐 플랫폼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의 주도권 선점을 위한 전통 기업들의 암호화폐 산업 진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이 단적인 예다. 페이스북은 올해 10월 ‘메타’로 사명을 바꾸고 메타버스를 앞세워 NFT 시장에 진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디센트럴랜드와 샌드박스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의 메타버스 프로젝트와 NFT 프로젝트 코인이 한동안 급등했다.
노경탁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수많은 변수에 따라 메타버스 시장이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NFT 기술과 이를 활용하는 산업적 시도는 계속될 것이고 메타버스와의 접점을 점차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시행되는 ‘트래블 룰’에도 메타버스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트래블 룰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사업자에게 부과한 의무로, 암호화폐 사업자는 암호화폐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보를 모두 파악해야 한다. 트래블 룰은 올해 초 적용될 계획이었는데 기술적 한계로 1년 연기됐고 내년 3월 25일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거래소 간 암호화폐 이동, 거래소와 개인 지갑으로의 이동 등이 트래블 룰 적용 대상일 뿐 개인 간 거래에서는 트래블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거래소에 엄격한 트래블룰이 적용되면 메타버스에서 소유권이 인정된 다양한 디지털 자산(NFT)과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오태민 대표는 “트래블룰의 대안으로 각 나라와도, 금융권과도 연결되지 않은 탈중앙거래소(DEX)를 통한 거래가 꼽힌다”며 “DEX에서는 트래블룰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유권이 인정된 NFT를 통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250만원 초과 수익 20% 과세, 2023년 시행으로 1년 유예 2022년 암호화폐 투자의 걸림돌은 ‘과세’였다. 하지만 12월 2일 암호화폐 과세를 1년 미루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과세 시행일은 당초 예정한 2022년 1월 1일에서 2023년 1월 1일로, 첫 세금 납부는 2024년 5월로 1년씩 미뤄졌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내년 1월 1일부터 발생하는 암호화폐 거래 수익에 대한 과세를 추진했지만 올해 9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상 암호화폐 사업자 신고 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암호화폐 사업자는 사업 신고 수리가 돼야 과세 자료 추출을 위한 이용자의 개인 정보 수집 권한이 생긴다. 12월 2일 기준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 신고를 한 29개 거래 업자 중 협회 소속 10개 회사만 수리를 마친 상태다.
한편 2023년 시행될 암호화폐 과세안에 따르면 정부는 암호화폐를 복권 당첨금 등과 같은 일시적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있어 기본 공제 금액인 250만원을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 20%의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반면 금융 투자 소득으로 분류된 주식·펀드·채권 등의 공제액은 5000만원이다. 특히 주식은 5년 동안 결손금 이월 공제가 허용된다.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거래소에 엄격한 트래블 룰이 적용되면 메타버스에서 소유권이 인정된 다양한 디지털 자산(NFT)과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