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개방 후 초고속 성장
미‧중 무역분쟁 점화…WTO 기능 상실
20년 전인 2001년 12월 11일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을 정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얼마 안 돼 구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됐지만 덩샤오핑 중국 국가주석 재임 당시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추진을 밝힌 후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했고 1995년 WTO가 출범하자 가입 노력을 기울였지만 국제 사회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WTO 체제의 대주주인 미국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부분적으로 민영화와 사유 재산을 허용했지만 계획 경제 체제하에서 국유 기업의 비율이 높아 시장 경제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이 거론됐다. 다만 당시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와 중국의 WTO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이미 1년 전 중국과의 WTO 가입 협상을 종료했지만 의회 내 민주당 의원 절대 다수가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했다. WTO 회원국으로 승인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항구적인 정상 무역국 대우(PNTR)’ 지위를 부여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PNTR을 부여하게 되면 중국의 인권 유린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점을 제기했고 민주당의 정치 후원자인 노동 단체들은 중국의 저가 수입품으로 노동자들이 실직할 것을 우려했다.
PNTR 법안이 부결될 위기에 처하자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단합해 민주당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대통령도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을 일일이 전화하거나 백악관으로 초청해 설득함으로써 절반을 넘겨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3년 만에 국제 무역 질서에 편입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WTO 가입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정치·경제적 자유의 길을 따를 것이라고 장담했고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은 중국의 가입이 WTO와 다자 무역 체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외 연구 기관 등에 따르면 중국의 값싼 상품들이 세계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고 회원국들이 우려하지만 시장 개방으로 중국의 농업·제조업·서비스업이 외국산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업 개방으로 수천만 명이 농촌을 떠나게 될 것이고 노동 집약적인 섬의류와 저가 전자 산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중국의 제조업의 대부분은 WTO가 금지하는 보조금 중단으로 도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전반적인 관세 인하로 중국 정부의 주요 수입원인 관세 수입이 줄어들어 정부 재정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의 WTO 가입 20년이 되는 현시점에서 보면 지나친 낙관론이 지배했고 국제 사회가 중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WTO 가입을 전후해 중국은 시장 개방 범위를 확대하고 통상 관련 법과 규정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마침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고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대거 중국에 투자했다. 농촌 경제가 파탄한 것이 아니라 도시 지역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를 찾아 2억 명 이상의 농민공이 농촌을 떠났고 이들 농민공이 생산한 상품 수출로 중국은 세계 1위 무역 국가와 2위 경제 국가로 발전했다.
WTO 체제하에 초고속 성장의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 기조와 세계 패권 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지도부는 덩샤오핑 전 주석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지침에서 벗어나 대국굴기(大國堀起)를 추진했다. 중국의 글로벌 부상에 위기를 느낀 미국은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게 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강력한 무역 제재를 공약으로 내세워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체결한 주요 무역 협정에서 다른 회원국이 비시장 경제 국가와 독자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명시했다. 또한 미국의 WTO 고사 전략에 따라 WTO는 점진적으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앞으로 미·중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WTO는 식물 기구로 남게 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