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강자들과 차별화 전략 앞세워 소비자 공략…빅3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
[비즈니스 포커스]최근 이커머스업계의 시선은 11번가의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유통 공룡’ 아마존과 제휴한 11번가는 빠른 속도로 직구가 가능한 상품 수를 늘려 나가며 순식간에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11월 11번가의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는 약 54만 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110만 명의 사용자가 늘어난 쿠팡이츠에 이어 ‘사용자 수 급상승 앱 순위’ 2위를 차지했다.
카카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카카오의 이커머스 사업을 담당하는 카카오커머스는 카카오메이커스의 2021년 12월 누적 거래액이 5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메이커스는 ‘아이디어 상품’을 중개하는 큐레이션 커머스 서비스다. 2016년 2월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는데 출발은 좋지 못했다. 서비스 시작 3년째인 2019년에서야 누적 거래액 1000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부진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이 사실상 네이버·신세계·쿠팡 등 3강 체제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빅3’의 점유율은 네이버 17%, 신세계 15%, 쿠팡 13% 등으로 추산된다. 아직까지 절대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경쟁사들과는 전혀 다른 무기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선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향후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표 주자는 바로 11번가와 카카오다.아마존 후광 예상되는 11번가특히 11번가는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이커머스 시장의 다크호스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2022년 11번가가 이커머스 3강 구도를 위협할 존재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이런 관측을 내놓은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출에 따른 중국산 브랜드들의 이탈 가능성이다.
현재 네이버·쿠팡·이베이코리아는 모두 오픈 마켓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수십만 개의 셀러들이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산 브랜드들이다.
중국산 제품의 판매 구조는 대략 이렇다. 중국 제조 업체들은 자사에서 만든 제품을 한국의 수입업자들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매입을 요청한다. 수입업자들은 이렇게 사들인 상품을 오픈 마켓에 입점시켜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파는 방식이다.
아마존의 등장은 이 같은 중국산 제품 판매 과정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고 유 애널리스트는 지적한다.
“아마존은 중국 제조업체들에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이 직접 해외에 상품을 팔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현재는 11번가가 아마존 직매입 상품만을 판매 중이지만 전략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즉 11번가를 앞세운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출은 중국 제조업체들이 중간 단계의 판매자들(수입업자)에게 수수료를 내지 않고 한국에 직접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존 네이버·쿠팡 등에서 수입업자들이 판매 중인 중국산 상품들의 수가 크게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오픈 마켓 비율이 높은 이베이코리아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아마존을 등에 업은 11번가가 새로운 빅3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플랫폼 영향력 앞세워 틈새 공략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아마존 직구 상품의 배송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11번가에서 아마존 직구 상품을 구매하면 최소 3일 이상이 걸린다. 느린 배송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빠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에는 달라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는 11번가가 배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주 물류센터를 적극 활용하며 아마존의 상품의 배송 시간 단축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적인 부담은 가중될 수 있지만 점유율 제고를 위해 아마존재팬을 통한 항공 물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일본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하고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상황이다. 일본과 한국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아마존재팬을 활용한 항공 물류를 활용하게 되면 직구 배송 시간을 이틀 안으로 단축할 수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항공 물류에 들어가는 비용을 11번가가 부담해야 해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11번가는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이 같은 출혈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리콤의 적극적인 지원 역시 11번가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SK텔레콤은 2021년 8월 선보인 구독 상품 ‘T우주패스’ 가입자들에게 아마존 직구 무료 배송과 할인 쿠폰 등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2021년 말 T우주패스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한 만큼 신규 고객 유입을 기대해 볼 만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카카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활용한 선물하기로 약 3조원 정도의 거래액을 기록 중이다.
선물하기의 뒤를 이어 카카오메이커스가 급성장을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아이디어 상품을 넘어 최저가 호텔 패키지 등으로 상품을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 카카오커머스 관계자는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먼저 카카오메이커스에 입점 제안이 오기도 한다”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른 플랫폼에서는 구매할 수 없는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계속 론칭해 거래액을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 공략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도 이뤄졌다. 2021년 카카오는 거래액 1조원을 기록 중인 온라인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인수했다. 이와 함께 라이브 커머스 업체 그립도 손에 넣었고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물류 경쟁력 강화에도 자금을 투입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품목들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생필품’과 ‘식음료품’ 그리고 가구나 패션 등을 전부 포함하는 이른바 ‘버티컬 상품’ 영역이다. 배송상의 어려움, 의류 제품 사이즈 등의 문제로 버티컬 상품은 아직 기존 강자들이 장악하지 못한 영역이다. 최근 카카오의 행보를 보면 네이버에 버금가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활용해 이 영역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하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버티컬 상품을 중심으로 점차 거래액을 늘려 3~4년 후엔 카카오가 이커머스의 한 축을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2022년 네이버·신세계·쿠팡의 이커머스 3강 체제가 더욱 굳건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신세계가 2021년 인수한 이베이코리아를 활용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박차를 가하며 탄탄하게 입지를 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11번가와 카카오 등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더라도 기존 강자들 또한 다양한 전략을 앞세워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11번가나 카카오가 의미 있는 거래액 상승세를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