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CES 100% 즐기는' 기술 [CES 2022]
입력 2022-01-16 06:00:06
수정 2022-01-16 06:00:06
민경중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의 CES 참관기…미래 기술 읽으려면 '유레카관' '첫 등장한 부스'에 주목
[트렌드]1967년 시작된 CES는 지금은 전 세계 전시회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 중반까지 정보기술(IT)에 관한 절대 강자는 단연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던 컴덱스(Computer Dealers Exposition) 쇼였다.
필자가 1988년 언론사 입사 후 서울올림픽을 취재할 당시는 데스크 컴퓨터조차 매우 귀했다. 한국 기자들이 수기로 기사를 써 전화기 너머 소위 ‘캐처’라고 불리는 수습기자들에게 내용을 불러줘 기사 마감을 했고 외신 기자들은 ‘소형 타자기’ 같은 것으로 기사를 작성해 기기 옆에 달린 조그만 구멍에 전화선을 꽂고 어딘가로 기사를 송고했다. 필자는 어릴 적 오른손 엄지 일부를 잃어 글자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청와대 기자실 출입할 때 한 달 월급을 털어 ‘대우 르모2’라는 워드프로세서를 들고 다녔다. 그때부터 노트북을 비롯한 IT 기기에 관심을 가지고 최신 노트북을 파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아다녔고 정보통신 분야를 취재하며 ‘언론계의 얼리어답터’라는 귀한 별명을 얻었다.
오미크론 변수로 주요 글로벌 기업과 중국의 불참이 이어진 가운데 한국이 올해 CES 참가 규모 2위 국가로 부상했다. 그 덕분에 ‘K테크’는 전 세계 바이어와 미디어를 상대로 빛났고 이는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역에 자주 울려 퍼진 BTS 노래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CES를 새로 찾을 분들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노하우를 방출한다.
포인트1 ‘내돈내관’ 직접 관람하라
매년 초 언론사들은 ‘CES’에 관한 기사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행사의 명성에 끌려 라스베이거스에 오면 처음에는 ‘내가 이 돈 주고 여기 왜 왔지’라는 후회가 밀려든다. CES는 한국의 코엑스 전시관과는 방식부터 다르다. 월드컵 경기장 20개 면적에 해당하는 전시장은 라스베이거스 도처에 분산돼 있다. LVCC 센트럴홀·노스홀·사우스홀·웨스트홀·베네치안 엑스포·유레카 파크·테크이스트·테크웨스트·샌즈엑스포 등 이름도 낯설다.
이뿐만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기업인으로 참석해 바이어 미팅이나 각종 호스트 초청 행사, 키노트 발표장이 있는 수십 개 호텔을 모두 방문하는 것은 슈퍼맨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대기업 임원이야 수행원이 있지만 중소기업 사장님이라면 도무지 이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CES는 ‘내돈내관(내가 돈 내고 내가 관람한다)’이 최고다.
포인트2 유레카관 스타트업을 주목하라!
CES에 관한 언론 보도는 대부분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그룹 같은 한국 대기업 기사가 독차지한다. 특히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의 최대 스폰서인 삼성전자의 광고 사인보드는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메인 홀의 삼성전자 전시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입장객을 일정한 수로 유지하는 바람에 입장 등록 후 무려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을 정도다.
대기업 전시관은 일단 패스하고 두 가지 코스를 가장 먼저 봐야 한다. 하나는 그해 최고의 테크 전문 심사진 83명이 뽑은 27개 카테고리 베스트 혁신 제품만을 모아 놓은 ‘이노베이션 어워드(Innovation Awards)’ 전시장이다. 시간 절약하며 신속하게 기술 트렌드와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유레카 파크’다. 스타트업·중소기업·대학관·국가관이 있는 유레카 파크는 CES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생아의 뜨거운 심장 같은 곳이다. 유레카 파크에 자리를 확보하려면 시제품이나 양산 제품으로 주최 측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참가 횟수도 최대 두 번으로 제한된다.
2017년 유레카 파크에서 우연히 뉴스에서 본 낯익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둘러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지리 정보 시스템(GIS) 지리 정보업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에스리(Esri)의 창시자 잭 데인저먼드였다. 재산만 수조원인 그에게 유레카관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CES에서 가장 좋아하고 관심 있는 곳이 바로 유레카관이다. 젊은 사람에게 참신한 얘기를 듣고 내가 창업할 때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에너지도 얻는다.”
스타트업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기를 살려줄 방안을 찾는 그의 모습은 ‘거장’ 그 자체였다. 필자의 기억으로 불과 5년 전만 해도 유레카관을 찾는 한국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대기업 임원은 그저 자사 전시관 테이프 커팅 행사에 참석하고 수행원을 앞세워 몇 개 전시관을 둘러본 뒤 현장을 떠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레카관이 ‘핫’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삼성전자의 사내외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이 이곳에서 삼성이 육성하는 스타트업을 선보여 글로벌 시장 반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2016년의 일이다.
CES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기업은 ‘쇼’를 하고 중소 기업은 ‘장사’를 하며 스타트업은 ‘꿈’을 얘기한다.
포인트3 처음 나온 부스를 주목하라!
CES 주관사인 CTA는 매년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이틀 전 전 세계에서 찾은 각국 미디어를 상대로 ‘CES 언베일드 라스베이거스(CES Unveiled Las Vegas)’ 행사를 개최한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 겸 최고 경영자(CEO)의 인사말에 이어 올해 CES에서 주목해야 할 기술 트렌드를 발표한 스티브 코니그 CTA 수석부사장은 수송, 우주 기술, 디지털 건강, 모빌리티(이동성) 등을 꼽았다.
필자가 올해 주목한 ‘원픽’은 우주 항공 분야와 푸드테크, 농업 관련 산업이었다. 시에라 스페이스의 이번 CES 우주 항공 분야 첫 참석은 큰 주목을 받았다. 시에라 스페이스는 조종사 없이 최대 25번까지 자율주행 모드로 우주 정거장을 오가는 ‘드림체이서’를 실물 크기로 센트럴홀 앞 광장에 전시했다.
우주 항공 산업이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에 나온 것이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2013년에도 CES 전시회에 자동차 회사가 처음 나왔을 때 혹자는 ‘자동차가 가전제품인가’라며 비웃기조차 했다. 당시에는 CES 전시회가 끝나고 2주 뒤 열리는 북미 디트로이트 자동차 전시회가 오히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 10년도 안 된 지금 자동차 메이커들은 CES 전시장을 찾고 디트로이트 자동차 전시회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자동차가 TV와 다름 없는 가전 소비재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우주선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10년 이내에 자동차 고르듯 개인용 우주선도 사고파는 시대가 올 것으로 짐작된다. 158년 된 세계 최대의 농기계 업체 존 디어의 무인 자율주행 트랙터 8R도 큰 주목을 받았다. 수년 전부터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스마트 팜과 함께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으로 무장한 농기계 분야는 꾸준히 CES의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1차 산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테크가 결합된 첨단 산업으로 부상 중이다.
푸드테크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비건(채식주의자)이 늘면서 고기 대체 식품 회사인 임파서블푸드가 꾸준히 CES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로봇과 식당 내 무인 자율 음식 배달기, 배달 음식을 따뜻하게 임시 보장해 주는 실외 보관기 등도 이번에 첫선을 보였다.
※ 민경중 사무총장이 작성한 칼럼의 전체 내용은 한경무크 CES 2022에서 확인할 수 있고 CES 2022는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2만5000원이다.
민경중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현 법무법인 제이피 고문,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