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백기사’로 나선 칼라일그룹…주주가치 제고·불확실성 해소

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로 떠오른 칼라일그룹

[비즈니스 포커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이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서 미래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 3대 글로벌 투자사모펀드(PEF)인 칼라일그룹의 현대차그룹의 백기사로 나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칼라일그룹이 지분 매입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글로비스의 미래 성장세가 뚜렷할 것이란 반증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주주가치가 제고되는 동시에 시장 불확실성도 해소돼 글로비스의 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을 피하는 묘수도 됐다. 새해 들어 강력한 지배 구조 규제가 시행되면서 정부 기준을 넘어서는 지분을 보유한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상장사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은 기존 지분율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10% 낮아졌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보유 지분을 정리하는 총수 일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비스 지분 매각, 지배 구조 개편 신호탄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1월 5일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에 매각했다. 정 명예회장은 보유한 251만7701주(6.7%) 전량을, 정 회장은 873만2290주 중 123만2299주(3.3%)를 처분했다.

처분 단가는 1주당 16만3000원으로 정 명예회장의 매각 대금은 4104억원, 정 회장은 2009억원이다. 해당 주식은 칼라일의 특수목적법인(SPC)인 프로젝트가디언홀딩스가 매입했다.

주식 처분으로 정 회장의 글로비스 지분율은 23.29%에서 19.99%로 낮아져 공정거래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이 이번에 해당 주식을 처분하지 않았다면 총수 일가 주식이 30%에 달해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 해당됐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전량을 처분했고 정 회장도 20% 미만으로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공정위의 칼날을 피하게 됐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기아의 완성차 운송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매출의 약 60%가 그룹 내부에서 발생한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이 되면 이러한 사업 구조가 일감 몰아주기로 해석돼 공정위의 제재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월 시행된 상법 개정안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됐다”며 “현대글로비스가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지분율을 낮춰야 하는 압박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슈를 해소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정 회장이 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서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그룹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한 여유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지배 구조의 핵심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9월 기준 현대차 지분 21.4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현대차는 기아의 지분 33.88%를 가진 최대 주주이고 기아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17.3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큰 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고리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기아·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들여 순환 출자의 고리를 끊으려고 했다. 고리에 있는 기업 중 한 곳이라도 어려움을 겪으면 그룹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해소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가 조정 등에 반대하면서 2개월 만에 백지화됐다. 이에 따라 여전히 순환 출자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대주주 일가→모비스→현대차→기아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가 ‘대주주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단순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주주 일가와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지배 구조가 구성된다면 순환 출자의 고리가 해소되고 정 회장이 안정적으로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계열사에 나눠져 있는 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모비스의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모비스의 최대 주주인 기아(17.33%)에 턱없이 부족한 지분율이다.

정 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매각과 2월 15일 상장을 앞둔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얻을 수익으로 우선 모비스의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해 한 걸음씩 착착 밟아 가는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시장이 예상하는 시가 총액은 62조원대 안팎이다. 정 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11.72%(890만3270주)로 상장 과정에서 공모를 통해 534만 주를 처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4000억원의 현금을 얻을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비스의 지분 매각으로 마련한 2000억원과 합치면 2월 초 6000억원의 유동성을 얻는다.

또한 본인의 직접 구입과 함께 정 명예회장으로부터의 상속도 지배력 강화에 큰 몫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명예회장의 모비스 지분율은 7.15%로 정 회장이 전부 상속받으면 7.45%가 된다.

공정위가 정한 20% 미만의 지분율까지는 12.54% 여유가 있는데 이를 매입하기 위해선 약 3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이 자금은 정 명예회장에게서 받을 현대차의 지분 매각 등으로 충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의 지분 5.33%와 현대모비스의 지분 7.15%를 가지고 있다. 약 4조2000억원 규모로 상속세 최고 세율과 대주주 할증을 적용하면 상속세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을 일부 정리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금액은 모비스 지분 인수에 쓸 것으로 예상된다. 혹은 구광모 LG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분 승계 과정에서 했던 것처럼 주식 담보 대출로 상속세를 내고 현대차의 지분율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 변화와 경영권 승계가 필요한 시점에 글로비스의 지분 매각은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 모비스의 지분을 어떻게 인수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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