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들, 야놀자·컬리·토스 등 신흥 플랫폼에 투자
AI·바이오·콘텐츠도 고속 성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도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찾는 열기는 뜨거웠다. 2021년 한국 스타트업 투자액은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금도 급증했다.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중국 빅테크 규제 등에 따라 해외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F)들의 관심이 한국 스타트업에 쏠렸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성이 인정받은 결과다.
전체 투자액 13조원…상위 30개 스타트업에 절반 쏠려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커지고 있다. 2021년 한국 스타트업에 몰린 투자액은 약 13조원으로 2020년 약 5조원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경비즈니스가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베이스 더브이씨(The VC)와 함께 2021년 한국 스타트업 누적 투자 유치 상위 기업 30개사(국내외 기업에 인수된 사례 제외)를 분석한 결과 모두 100억원 이상의 빅딜이었고 그중 10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은 21개였다. 이들 30개 회사가 지난 1년간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총 6조7400억원 규모였다. 전체 투자액의 절반이 30개에 쏠린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이커머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이커머스·플랫폼 분야에 투자가 몰렸다. 야놀자·컬리(마켓컬리)·비바리퍼블리카(토스)·리디·당근마켓·펫프렌즈·무신사·크림 등 정보기술(IT) 기반의 플랫폼 스타트업이 국내외 벤처캐피털(VC) 등에서 많은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다.
IT 기반의 종합 유통 물류 브랜드 ‘부릉’을 운영하며 신흥 플랫폼 기업으로 떠오른 메쉬코리아와 물류·IT 플랫폼 스타트업 바로고가 각각 1002억원, 910억원의 투자를 끌어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열기도 여전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 유망 스타트업인 뤼이드·몰로코·아이유노미디어그룹·센드버드에는 글로벌 유명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집중됐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약진도 이어졌다. 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유명한 눔이 6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지아이이노베이션과 레고켐바이오가 각각 1905억원, 12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야놀자 ‘2조 잭팟’…눔·컬리·토스 4000억원 이상 유치
지난해 가장 많은 투자액을 유치한 곳은 여가 플랫폼 기업 야놀자다. 야놀자는 2021년 7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창업자가 이끄는 세계 최대 벤처 투자 펀드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에서 17억 달러(약 1조9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데카콘(기업 가치가 10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에 등극했다.
야놀자는 2019년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부킹홀딩스에서 1억8000만 달러(약 2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기업 가치 1조원을 인정받았는데 불과 2년 만에 기업 가치가 10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야놀자는 비전펀드의 투자를 계기로 글로벌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공개(IPO)도 추진 중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 매니징 파트너는 “야놀자는 AI를 앞세운 여가 슈퍼 앱 전략을 통해 한국의 여행·레저 산업을 혁신하는 선두 주자”라고 말했다.
한국인인 정세주 대표가 창업한 글로벌 모바일 헬스케어 기업 눔은 6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눔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가 주도하는 5억4000만 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기존 투자자인 세쿼이아캐피탈·RRE벤처스·삼성벤처스도 추가로 베팅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홀딩스, 생명과학 중심 투자 기업 노보홀딩스, 오크HC·FT 등이 신규 투자자로 합류했다.
눔은 행동 심리학을 기반으로 AI 기술과 코칭을 결합한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눔은 이번 투자로 기업 가치 4조원을 인정받았으며 미국 나스닥 상장도 계획 중이다.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IPO를 앞두고 두 차례에 걸쳐 총 47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2254억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를 유치한 이후 5개월 만인 12월 홍콩계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서 2500억원의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 투자를 유치했다. 프리 IPO를 통해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4조원이다.
컬리는 골드만삭스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애널리스트 출신 김슬아 대표가 2014년 설립한 신선식품 업체다. 기존에 없던 신선식품 큐레이션과 새벽 배송 서비스를 핵심 사업 모델로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까지 DST글로벌·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힐하우스캐피탈그룹·애스펙스매니지먼트·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 글로벌 유명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대기업도 ‘될성부른 떡잎’에 직접 투자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는 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토스는 치과의사였던 이승건 대표가 2013년 설립한 핀테크 플랫폼으로, 2021년 3월 토스증권, 10월 토스뱅크 등을 오픈하며 대규모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토스는 간편 결제에서 시작해 은행·증권 등 금융 서비스를 하나의 애플리케이션(토스앱)에서 쓸 수 있는 원 앱(one-app) 전략에 힘입어 지난해 뱅킹 서비스 사용자 수 1위를 차지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시리즈A부터 G까지 누적 투자액 1조원을 달성했다.
주요 투자자는 알토스벤처스·굿워터캐피탈·싱가포르투자청(GIC)·페이팔·KDB산업은행 등이다. 알토스벤처스는 쿠팡·크래프톤·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하이퍼커넥트·직방·당근마켓 등 한국 유수의 IT 기업들에 투자한 곳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올해 상반기 프리 IPO를 추진 중이다.
AI 기반의 에듀테크 기업 뤼이드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에서 1억7500만 달러(약 197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해 주목받았다.
뤼이드는 AI 토익 튜터 ‘산타’를 ‘뤼이드 튜터’로 변경하고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해외법인 전환(플립)을 추진 중이다. 뤼이드는 이번 투자금을 AI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 글로벌 교육 AI 기술과 산업에서 초격차를 이어 간다는 계획이다.
유튜브 초기 머신러닝 엔지니어 출신인 안익진 대표가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한 AI 기반의 애드테크 기업 몰로코는 1954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몰로코는 모바일 비즈니스가 빠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래매틱 광고 솔루션을 제고한다.
디즈니·넥슨·넷마블·카카오게임즈 등이 주요 고객사다. 몰로코의 시리즈C 투자 유치는 미국 기술투자사인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가 주도했다. 삼성벤처투자·LG테크놀로지벤처스·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 주요 투자자다.
대기업도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신성장 분야로 꼽는 영역의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직접 투자했다.
2013년 설립된 더마코스메틱 전문 회사 코스알엑스는 아모레퍼시픽에서 18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코스알엑스는 ‘오리지널 클리어 패드’, ‘아크네 패치’, ‘굿모닝 젤클렌저’ 등 히트 상품을 중심으로 K뷰티의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미국·동남아·유럽·중국·일본 등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 진출했고 해외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던 아모레퍼시픽이 더마코스메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코스알엑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지분 38.4%를 인수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자사주를 제외한 잔여 지분 57.6%에 대해서도 2024~2025년에 걸쳐 매수 가능한 콜옵션 등을 부여했다.
[돋보기]
중국 빅테크 규제에 한국으로 눈 돌리는 글로벌 VC
2021년 한국 스타트업의 주요 투자사 리스트에서 눈길을 끄는 이름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창업자가 이끄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 5월 중동 국부펀드·애플·퀄컴 등과 함께 비전펀드를 출범시켰고 세계의 유망한 정보기술(IT)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 1호는 중국 투자 비율이 절반에 가까웠지만 2019년 출범한 비전펀드 2호는 중국에 집중됐던 투자 대상을 다변화해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 2호는 인공지능(AI) 관련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과 예비 유니콘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는 중국의 빅테크 규제 강화로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 비전펀드가 지분 25%를 보유한 알리바바와 지분 20% 이상을 갖고 있는 중국 최대 차량 호출 업체 디디추싱 등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손 창업자는 중국 투자를 보류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빅테크 규제 리스크로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하면서 한국·인도 등 다른 아시아 스타트업에 눈을 돌리는 해외 VC들이 늘어 한국 스타트업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해외 투자사들도 늘었다. 지난해 야놀자(1조9400억원), 뤼이드(1970억원), 아이유노미디어그룹(1800억원) 등이 비전펀드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1월 소프트뱅크그룹은 한국 AI 핀테크 스타트업인 크래프트 테크놀로지스에 1억4600만 달러(약 1746억원)를 투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