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못 하면 기업이 붕괴된다 [강함수의 레드 티밍]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위기관리 체계 실패 사례…대응력 갖춰야

[강함수의 레드 티밍]

안전사회시민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앞에서 1월 17일 광주 아파트 붕괴 참사 규탄 기자 회견 중 레드카드를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리조트 특판 마케팅을 담당했던 한 후배의 이야기다. 리조트에 어느 중학교의 단체 숙박을 알아보는 교사팀이 방문했다. 교사팀은 후배가 안내해 준 장소 이동 경로를 다시 걸어가면서 주요 장소마다 이동하는 시간을 체크하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을 메모지에 기록했다.

당시 교사팀이 갖고 온 노트에는 사고의 위험 요인을 살피는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리조트에도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었지만 활용되지 않았다.

위기의 발생 요인을 찾고 사전 조치, 대응 방안과 절차, 위기관리팀의 책임과 역할 등을 규정해 놓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다. 매뉴얼에 기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직의 담당자, 조직 문화,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매뉴얼 내용이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

잘못된 관행 탈피가 신뢰 회복의 첫걸음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주상복합단지 공사 중 39층 초고층 아파트 외벽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 근무자 6명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추가 붕괴의 위험으로 초기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시공을 담당한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최고 경영진이 나와 두 차례 사과와 조치 방안을 발표했지만 아직 명확한 사고 원인을 알 수 없다. 언론을 통해 붕괴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현산의 메시지는 ‘공정을 독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입주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다가 발생한 참사라고 말한다. 무너진 외벽 상태를 보면서 질이 좋지 않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사고의 원인은 사후에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 유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주요 사업과 관련된 위험이 발생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해당 기업이 제일 잘 파악하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39층 초고층 아파트는 건설하는 데 반드시 살펴야 할 요건이 명확하게 정리돼 있고 공정 과정별로 안전과 품질 관리를 위한 관리 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발생했다면 현산은 외부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사고 원인 추정에 대한 반박 반응만 하면 안 된다.

지금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알아야 할 요건, 안전과 품질 관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수많은 절차와 확인 사항을 설명하고 현재 파악하고 있는 것과 파악하지 못한 것을 구분해 전달해야 한다. 그런 내용이 없는 사과나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사고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사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은 사고 원인에 따라 법적 책임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고려해야 한다. 공사 발주처인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실질적 공사가 내려가는 과정에서 어떤 요인이 사고를 야기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고의 원인과 관련된 정보를 신속히 공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부실 공사 업체라는 인식적 낙인, 고객의 불안감, 이해관계인의 불신을 고려한다면 앞선 예시의 리조트를 방문한 교사팀처럼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을 세부적으로 확인하고 살펴보던 체크리스트를 알려주고 앞으로 무엇을 검증하고 어떻게 재발 방지 조치를 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책임을 묻기 위해 사업자나 경영 책임자가 제삼자에게 도급·용역·위탁을 맡긴 경우에도 제삼자의 사업장과 그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항목 대응이다. 사업자와 경영 책임자의 범위에 대한 해석과 대응 조치를 마련하는 모습이다.

둘째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다시 살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기업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훈련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본사와 떨어져 있는 공장부터 지역 사무소, 공장 현장 등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요청하는 것이다.

관습적으로 그동안 해 왔던 방식으로 하거나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올바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 ‘레드 티밍(red-teaming)’은 조직의 전략을 점검하고 보완하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문제점이나 취약점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다. 미국이 모의 군사 훈련 과정에서 아군인 블루팀의 취약점을 파악, 분석하기 위해 편성한 가상의 ‘레드팀(red team)’으로 지칭한 것에서 유래됐다.


강함수 에스코토스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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