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는 될 수 없다”…중대재해법 공포에 건설사 ‘눈치 싸움’

설 연휴 전후로 공사 중단…준공 일정보다 안전 관리 우선

[비즈니스 포커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 지난 18일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 대형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여론의 관심이 건설업계에 쏠려 있다. 처벌 대상 1호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준공 일정을 미루더라도 현장의 공사를 중단할 방침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에 앞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현장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것이다.

최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정부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첫째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건설사끼리 일정을 미루며 ‘눈치 싸움’에 돌입한 셈이다. 또한 법 시행에 앞서 준비한 대책을 재확인하고 현장 점검을 실시하는 등 안전 강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에 현장은 ‘셧다운’

중대재해법은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수의 건설사들은 시행일에 맞춰 공사 중단이라는 고육책을 꺼내 들었다. 준공 일정을 제때 맞추지 못해 공사 비용과 입주민의 불만이 쏟아질 것이란 우려에도 설 연휴에 현장을 셧다운하는 것이다.

포스코건설은 한국의 전 사업장에 ‘1월 27일부터 휴무를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현장 소장의 판단으로 반드시 작업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공사를 진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1월 27~28일 공사를 중단하면 설 연휴를 합쳐 7일 정도 사업장의 문을 닫는 셈이다.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휴일 작업이 많았던 건설 현장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건설은 1월 27일을 ‘현장 환경의 날’로 지정해 정리 정돈을 위한 최소 인원만 현장에 남긴다. 1월 28일에는 원도급자와 협력사 임직원이 참여하는 안전 워크숍을 개최한다. 포스코건설처럼 1월 27일부터 설 연휴에 돌입한다. DL이앤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우건설은 공사 중단 기간이 가장 길다. 2월 3~4일도 휴무일로 지정해 최대 9일간 모든 현장이 공사를 멈춘다. 다른 건설사도 설 연휴 기간에 공사 일정 중단을 검토 중이어서 사실상 모든 건설업계의 공사 시계가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설사들이 현장을 셧다운하는 것은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이 되면 회사가 뿌리째 흔들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다. 건설사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단, 책임자의 기준과 범위가 모호해 건설사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중대재해법 2조9항은 산업 재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의 기준을 경영 책임자로 상정하고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안전·보건 책임을 묻는 범위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설정했다. 즉, 예전에는 단위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소장 등이 처벌을 받았지만 이제는 최고경영자(CEO)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처벌 대상 1호가 되면 중대재해법의 첫 ‘판례’가 된다. CEO 등이 처벌받으면 건설사의 운영 체계가 마비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셧다운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것이다.

A 건설사 관계자는 “광주 사고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모든 건설사들이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현장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항상 발생하는 만큼 공사 중단 기간을 늘려서라도 첫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전문경영인, CEO 교체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대형 건설사는 중소형 건설사와 비교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안전 관리에 투자할 수 있어 전담팀을 신설해 관련 인력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여력이 있다.

하지만 중소형 건설사는 인력 충원과 시스템 개발에 예산을 투입할 여유가 없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는 현장의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건설사에서 발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노동자 사망 사고를 포함해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은 671곳이다. 이 가운데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80.3%(539곳)가 나타났다. 사업 규모가 작을수록 재해 발생 비율이 높은 것이다.

중대재해법 시행에서 50인 미만 및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의 사업장에는 2년이라는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향후 가장 큰 피해를 볼 곳은 중소 건설사다. 이에 따라 일부 중소 건설사에선 선제적으로 CEO를 창업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하는 모양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효율화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중대재해법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속내로 풀이된다.

B 건설사 관계자는 “중소형 건설사는 오너 일가가 CEO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난해 오너 일가가 CEO에서 물러난 건설사가 많은 것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송사에 휘말릴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CEO가 중대재해법의 칼 끝에 놓인 만큼 이 자리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CEO로 받는 급여보다 사고 발생 시 내야 할 벌금과 변호사 선임 비용이 더욱 많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응책으로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의 직책을 신설하거나 해당 직급을 높이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재해 발생 시 CEO 대신 처벌 받는 ‘총알받이’가 될 수 있어 적임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건설업계는 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노력하고 있는 만큼 명확한 기준과 범위로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기업의 자주적인 안전 대책 마련과 함께 정부의 지원도 대폭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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