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불운 겹쳤는데 임원은 주식 매도…1년 만에 나스닥100지수에서도 퇴출
[글로벌 현장]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펠로튼 인터랙티브의 본사 건물은 요즘 적막에 휩싸여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여파로 재택근무자가 많은 때문도 있지만 회사 실적이 엉망인 게 더 크다. 상당수 기업들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 회사는 대규모 구조 조정까지 준비하고 있다.
2012년 창업 이후 7년 만에 나스닥 시장에 입성한 데 이어 ‘코로나19 스타’로 각광 받았던 펠로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화려했던 데뷔 이어 팬데믹 수혜주로
펠로튼의 사업은 크게 두 종류다. 실내 운동 기구와 함께 라이브·주문형 수업을 맞춤식으로 제공하는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다.
실내 운동용 자전거(바이크)는 대당 1500~3000달러 선이다. 비교적 큰 화면을 정면에 장착했다. 장기 할부가 가능하다. 언제든 운동 동영상을 볼 수 있고 개별 정보 기록이 가능한 회원권은 월 39달러씩이다. 휴대전화나 TV 웹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동영상 회원권은 월 12.99달러다.
창업자는 존 폴리 최고경영자(CEO) 부부다. 부부는 원래 피트니스 클럽 체인으로 유명한 ‘솔사이클’ 회원이었다. 솔사이클은 오프라인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기를 끌었는데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강의당 수업료가 비싸고 회원들이 직접 센터를 방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폴리 부부는 ‘집에서도 솔사이클처럼 운동을 유도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데 착안했다. 온라인판 솔사이클을 만든 배경이다.
창업 초기엔 승승장구했다. 매년 3~4배씩 매출이 늘어났다. 2019년 글로벌 회원 수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작년엔 600만 명까지 늘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용한다는 소문에 유명세를 탔다.
‘스타 강사’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도 먹혀 들었다. 펠로튼의 유명 강사 때문에 수업료를 낸다는 회원들이 적지 않았다. 피트니스 강의를 찍을 때는 할리우드 영화 촬영 기법을 동원했다.
펠로튼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뉴욕 증시에 데뷔한 것은 2019년 9월이었다. 나스닥 공모가는 주당 29달러였다. 새내기주였지만 시가 총액이 80억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공모 이후 펠로튼의 주가는 한동안 내리막길을 탔다. 매출이 급증했지만 손실 폭은 오히려 커지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폴리 CEO는 당시 “향후 수년간 수익보다 성장을 우선시할 것”이라며 “일각에선 손실과 현금 소진을 지적하겠지만 투자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팬데믹은 펠로튼엔 커다란 기회로 작용했다.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고 재택근무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피트니스센터 대신 집에서 운동하는 게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펠로튼의 회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규 순가입자 수는 2019년 4분기 5만2000명에 불과했지만 팬데믹이 터졌던 2020년 1분기 14만9000명 급증했다. 정점은 작년 2분기였다. 3개월 동안 41만4000명이나 늘었다.
팬데믹 이후 펠로튼의 주가는 급등했다. 주당 160달러마저 돌파했다. 폴리 CEO는 2030년까지 전 세계 회원 수를 1억 명까지 늘리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팬데믹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여러 곳에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기존 오프라인 피트니스 업체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경쟁이 재가열됐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펠로튼은 급증하는 내부 비용이란 벽에 부닥쳤다. 실내 운동 기구의 제조 원가가 크게 늘어났다.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공급망 병목 문제로 고객 배송이 지연됐다.
상당한 액수를 주고 운동 기구 제조사들을 인수했지만 사업 효율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펠로튼은 2020년 프리코를 4억2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프리코는 호텔 등에 납품하는 대형 운동 기구 제조업체다. 앞서 2018년 디지털 음악 업체인 뉴로틱 미디어, 2019년엔 대만 제조 업체인 토닉 피트니스 테크놀로지를 각각 매입했다.
비대면 운동 관리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애플 등 경쟁사의 압박도 거세지는 추세다. 펠로튼과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지만 월 회비가 훨씬 저렴한 게 특징이다. 노틸러스 노르딕트랙 등 기존 바이크 업체들뿐만 아니라 룰루레몬이 인수한 미러나 토날, 하이드로, 템포 등 신생 홈 트레이닝 업체들의 부상도 위협적이다.
작년엔 펠로튼의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주는 사건도 발생했다. 전원이 켜졌던 러닝머신(제품명 트레드+) 옆에서 놀던 6세 아동이 기구 밑으로 빨려 들어가 숨졌다. 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에 따르면 트레드+ 밑으로 사람·동물·물건 등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는 총 72건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트레드+의 즉각적인 사용 중단을 명령했다. 펠로튼은 반발했지만 결국 총 12만5000여 대에 대한 리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성인 사용자와 어린이·반려동물·물건 등이 기구 아래로 끌어당겨져 사망하거나 부상할 위험이 있다”고 시인했다.
불운도 겹쳤다. 작년 12월 HBO 맥스가 15년 만에 방영한 인기 드라마 ‘섹스앤드시티’에서 배우(‘미스터 빅’을 연기한 크리스 노스)가 펠로튼 바이크를 타다 발을 헛디뎌 심장 마비로 사망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드라마였지만 펠로튼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펠로튼은 부랴부랴 배우 노스를 섭외했다. 그가 다시 살아나 펠로튼 바이크를 탄다는 내용의 광고를 찍었지만 바로 내려야 했다. 노스가 성폭력으로 기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자사 임원들도 믿지 않은 높은 주가
이 와중에 창업자인 폴리 CEO를 포함해 임원들이 자사 주식을 대거 매도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펠로튼의 임원들은 1년여 전인 2020년 11월 주가가 단기 고점을 찍자 이때부터 총 5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줄기차게 매도했다.
폴리 CEO와 윌리엄 린치 대표, 공동 창업자 겸 최고법률·문화책임자인 쿠시 히사오, 최고제품책임자인 톰 코티스 등 예외가 없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임원들이 주가가 오를 때마다 주식을 팔아 치웠다는 게 뒤늦게 알려지자 주가는 맥을 추지 못했다.
최근엔 또 다른 굴욕을 당했다. 유망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100지수에서 퇴출된 것이다. 지난 1년여간 주가가 80% 넘게 추락한 때문이다. 나스닥100지수에 편입된 지 딱 1년 만이다.
2020년 한때 500억 달러에 달했던 이 회사의 시총은 이제 상장 때 수준인 80억 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펠로튼은 급기야 생산량까지 조절해야 할 처지다. 폴리 CEO는 성명에서 “신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며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올해 2~3월 한시적으로 운동 기구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별도로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와 함께 인력과 점포 구조 조정 방안을 짜고 있다.
미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집에서만 운동해 온 소비자들이 점차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23 회계연도까지는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란 게 펠로튼의 자체 분석이다.
주가에 대한 월가의 시각은 엇갈린다. ‘기업 가치에 비해 너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진단도 있다.
앤드루 분 JMP증권 애널리스트는 “펠로튼이 조만간 제품 가격을 일제히 인상할 예정”이라며 “그 덕분에 차기 회계연도엔 1억5000만 달러 정도의 추가 매출을 내고 흑자 전환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가격 인상이 수요 감소란 역풍을 초래할 수도 있다.
투자은행인 니드햄의 버니 맥터낸 선임애널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펠로튼이 고성장 산업에 속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수익을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펠로튼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