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윤석열 공약, 거대 담론 사라진 이유는
입력 2022-02-07 06:00:04
수정 2022-02-07 06:00:04
‘스윙보터’ 2030세대 탈이념·실리주의 경향 반영…‘소확행’ ‘심쿵’ 등 생활공약 집중
[홍영식의 정치판]대선 후보들이 2030세대의 표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해 왔다.
지지율이 출렁이는 중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다. 40대는 이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이어져 왔고 50대는 균형, 60대 이상은 윤 후보를 꾸준히 지지해 왔다. 하지만 20~30대는 때론 이 후보를, 때론 윤 후보를 지지했다. 이들이 대표적인 ‘스윙보터(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사안별로 판단해 결정)’로 꼽히는 이유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이하 자세한 여론 조사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 후보는 27%, 윤 후보는 34%의 지지도를 보였다. 20대(18~19세 포함)는 이 후보 12%, 윤 후보 15%였고 40대는 이 후보 36%, 윤 후보 24%였으며 50대는 이 후보 37%, 윤 후보 41%였다. 60대 이상은 이 후보 27%, 윤 후보 53%의 지지를 나타냈다.
한국갤럽의 새해 1월 4~6일 조사에선 이 후보 36%, 윤 후보 26%의 지지율로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60대 이상에선 윤 후보의 지지율(43%)이 이 후보(32%)를 여전히 앞섰고 40대에선 반대로 이 후보의 지지율이 우위를 보이는 흐름이 이어졌다. 20~30대에선 이 후보의 지지율이 윤 후보에 비해 두 배 정도 앞서면서 큰 차이를 보였다. 20~30대가 판을 가른 것이다.
이념 아닌 생활 도움 되는 이슈 따라 지지 후보 바꿔지난 1월 18~20일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는 각각 34%, 33%의 지지율로 박빙을 보였다. 40대에선 이 후보 우위, 60대는 윤 후보 우위 흐름이 변하지 않았다. 20~30대는 이번엔 두 후보에게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였다. 코리아정보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이 후보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30일 각각 40.2%에서 올해 1월 11일 21.4%, 1월 19일 20.7%를 보였고 윤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8.5%→38.2%→48.2%로 변동 폭이 컸다.
2030세대가 전체 유권자의 35%를 차지하는데, 이런 비율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판세를 좌우하는 대표적 스윙보터인 이들을 잡지 못하면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야 후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2030세대들이 과거보다 월등히 높아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특히 이들은 지지 후보를 바꿀 의향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크게 높다는 것도 큰 변수다.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40~60대는 10~20%대를 보이지만 20~30대는 60%대 이상을 나타낸다. 역시 20~30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2030세대를 겨냥한 공약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과거엔 ‘2030세대’의 표심은 지금의 민주당 정당 계열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실제 2012년 18대 대선만 하더라도 방송 3사(KBS·MBC·SBS) 출구 조사를 보면 20대(66%)·30대(67%)는 문재인 후보를 많이 찍은 반면 60대 이상(73%)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 하지만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는 20대 55.3%, 30대 56.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했고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는 응답은 20대 34.1%, 30대 38.7%에 불과했다.
젊은층의 이런 변화는 탈이념과 실리주의 경향과 맞물려 있다. 이념과 진영이 아니라 자신의 실생활에 누가 더 이익을 줄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진다. 좌·우, 진보·보수라는 이념적인 틀에서 벗어나 정치 상황이나 그때의 이슈, 자신들이 관심을 갖는 정책 등에 따라 선택한다는 것이다. 언제든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지지를 보내 정권 교체 또는 창출의 원동력 역할을 할 수 있다.
여전히 운동권의 영향이 남아 있는 40~50대와 보수적인 60대 이상과는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까지 굵직한 전국 선거에서 4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 4·7 재·보선에서 40~50대는 민주당 지지세가, 60대 이상은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둔 것은 이런 2030세대의 표심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02년 행정수도 이전, 2007년 한반도 대운하 건설, 2012년 경제민주화, 2017년 적폐 청산 등 역대 대선에선 거대 담론들이 대선판을 흔들었다. 하지만 올해 대선에서 이런 담론이 사라지고 ‘소확행’, ‘심쿵’ 등의 이름을 붙인 생활 밀착형 공약들이 넘쳐나는 것은 이런 2030세대의 표심 변화에 맞춘 것이다.
윤석열 캠프의 한 관계자는 “공약을 만들기 위해 여론을 수렴해 보면 2030세대들을 중심으로 거대 담론이나 보수·진보와 같은 이념적 이슈보다 실용적 정책을 선호한다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미시적인 공약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루가 멀다고 청년 공약…결국 이들에게 빚 떠넘겨대선 후보들은 하루가 멀다고 이런 흐름에 맞춘 청년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두 후보 모두 가상 자산 투자자 공개 모집 허용 검토, 과세 기준 5000만원으로 상향, 게임 확률형 아이템의 구성 확률과 기댓값 공개, 병사 월급 200만원 등 판박이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 후보는 군 복무 중 휴대전화 요금 절반 인하, 군 복무 중 최소 1학기 이수 취득 학점 인정제, 태블릿 PC 허용, 2023년부터 만 19~29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의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 지급, 장기간 은행 금리 수준으로 최대 1000만원을 빌릴 수 있는 청년 기본대출, 일반 예금 금리보다 높은 1000만원 한도의 청년 기본저축 등도 제시했다.
낮은 임대료로 살다가 10년 뒤 최초 분양가에 분양받도록 하는 ‘누구나집형’, 자기 지분을 조금씩 적립해 가는 ‘지분적립형’ 등 청년 주택 공약도 내놓았다.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 확대, 학점 비례 등록금제 도입, 교육과 취업을 포기한 니트(NEET)족 청년 지원, 청년 정치 참여 할당제 검토 등도 약속했다. 오토바이 소음 근절,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임플란트 보험 확대 등 범연령층 소확행 공약도 있다.
윤 후보는 임기 내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 가구 등에 건설 원가로 총 50만 가구 공급, 신혼부부를 위한 ‘역세권 첫 집’ 주택 공급, 신혼부부·청년층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로 상향, 저리 융자, 저소득층 청년 재산 형성 보조를 위한 ‘도약 보장금’, 대입 정시 비중 확대, 배우자 출산 휴가 급여 확대, 아이 키우는 부모가 원할 경우 재택근무 보장 등도 내놓았다. 오토바이 운행 기록 장치를 설치할 때 보험료 대폭 할인, 건강보험 가입자 정보 도용 방지, 아파트 단지별 공원 조성, 택시 운전 칸막이 설치, 전기차 충전 요금 동결, 체육 시설 소득 공제 등 ‘심쿵’ 공약도 선뵀다.
하지만 여야 모두 재원 대책은 잘 안 보인다. 상당 부분 나랏빚으로 해결해야 할 텐데, 이는 결국 미래에 MZ세대(2030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앞에선 뿌리고 뒤로는 이들에게 빚을 떠안기는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청년이 진짜 원하는 것은 돈 몇푼을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월급이 제대로 나오는 질 좋은 일자리인데, 눈앞의 ‘사탕발림’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