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논란이 뭐길래…잇단 패소에 보험사 초긴장

올해 공동 소송에서 가입자 연이어 승소…생보사, 1조원대 연금보험 보상 임박

[비즈니스 포커스]

각 사 본사 모습. 사진=각 사 제공


즉시연금 소송전이 5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진행된 즉시연금 소송전에서 소비자의 승소 판결이 연이어 나오면서 업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1심에서 패소한 보험사는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그중 2월 9일 미래에셋생명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 연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났다. 가입자 약 16만 명에 대해 1조원대의 보험금이 걸린 즉시연금 소송의 첫 항소심에서 원고인 소비자가 승소한 것이다.

여러 소송 중 현재까지 보험사들이 이긴 것은 지난해 10월 두 건의 소송뿐이다. 당시엔 사실상 처음 승소하는 사례가 나와 고무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이후 열린 재판에서 다시 보험사에 불리한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향후 소송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갈등 왜 불거졌나
즉시연금은 소비자가 가입 시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내면 보험사가 보험료를 운용하고 매달 이자를 연금 형식으로 제공하는 금융 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 출시됐고 상품 판매가 급증한 것은 2012년 전후다. 가입 시 목돈이 필요하지만 10년 이상 가입하면 세금이 면제되고 금리가 떨어져도 2~2.5% 수준의 최저 보증 이율을 보장해 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고액 자산가와 은퇴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보험사도 단번에 큰돈을 그러모을 수 있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이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저금리가 장기화됐다.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즉시연금에도 갈등의 불이 붙었다. 2017년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가입했을 때 설명했던 것보다 적은 연금을 받고 있다’며 금융감독원(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당초 약속한 금액보다 부족하니 그 차액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왜 약속한 금액보다 적었을까. 우선 즉시연금에서 논란이 된 상품은 상속 만기형(만기 환급형)이다. 이 상품은 만기에 도달하면 처음 냈던 보험료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보험사는 만기일에 환급할 재원(만기 보험금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 운용 수익의 일부를 적립해 둬야 하고 이 때문에 매월 지급하는 연금액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한 후 연금을 지급한 것이다. 당시 금감원은 상품 약관에 이 내용이 빠져 있다고 봤다. 삼성생명도 이에 동의하고 2018년 2월 조정안이 확정됐다.

문제는 금융 당국이 2018년 3월 일괄 구제 방침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5만5000여 건을 포함해 생보사의 유사 사례 16만 건에 대해 즉시연금 동일 처리 방침을 통보했다. 민원 1건에 불과했던 삼성생명 즉시연금 건이 유사 사례에 모두 적용하라는 당국의 일괄 구제 권고가 내려지면서 1조원 상당의 지뢰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4300억원(금감원 추산) 정도를 지급해야 했고 한화생명(851억원), 교보생명(640억원), KB생명(391억원), KDB생명(249억원), 동양생명(209억원), 미래에셋생명(2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법원에 공을 넘겼다. 애초 1건의 민원에 대해선 ‘부실한 약관’이라고 동의했던 삼성생명도 즉시연금 논란에 대해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한국에선 집단 소송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여러 건의 관련 소송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금감원도 일괄 구제를 권고한 이후 소송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에게 법적 조력을 포함한 여러 지원을 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금융사가 대놓고 금융 당국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다른 업종과 달리 금융권은 매우 세세하게 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어 불만이 있어도 당국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보험사들은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은 전관 출신 변호사와 한국 최대 로펌인 김앤장 변호사 등 막강 변호인단도 꾸리며 소송전에 뛰어들었다.

다만 보험사들은 연이은 소송전에서 패소하고 있다. NH농협생명만이 약관에 만기 환급금 마련을 위한 연금액 차감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다. 보험사들은 결과를 뒤집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보면서도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2018년 8월 종로구 내자동의 한 카페에서 생보사 즉시연금 공동소송 관련 기자브리핑을 갖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약관에 없는 ‘산출 방법서’ 인정 여부가 관건
향후 소송에서의 관건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 방법서(산출 방법서)’에 대한 인정 여부다. 보험사들은 약관에 ‘산출 방법서에 따라’라고 적시돼 있고 또 산출 방법서에 만기 보험금 지급 재원 적립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산출 방법서 내용이 약관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운용 수익에서 만기 때 돌려줄 원금을 만들기 위한 재원을 따로 적립하는 것은 연금보험의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반면 금감원은 ‘상식이라면 왜 약관에 제대로 밝히지 않았느냐’고 주장한다. 보험사와 가입자는 보험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이해도에 대해 큰 차이가 있다는 전제가 있는 가운데 약관은 보험사가 만드는 것이고 산출 방법서는 보험사 내부 서류여서 고객이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판결 난 소송 중 지난해 10월 각 개인과 삼성생명·한화생명의 소송에서 보험사들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만 ‘보험 계약 내용이 반드시 약관 규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객에게 공시 이율에 따라 연금 월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환급 플랜에 가입할 경우 종신 플랜에 비교해 매달 지급받는 연금 월액의 차이까지 설명했으므로 충분한 설명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 가입자가 직접 매월 지급받는 연금 액수는 적지만 만기에 납입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는 환급 플랜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만기 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선택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판부들은 약관에 일정 금액 공제 사실을 넣었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과의 소송전에서 이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도 올해 1월 차례로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공동으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특히 2월 9일 미래에셋생명 즉시연금의 가입자 김 모 씨 등 2명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금 반환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가입자)가 승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 미래에셋생명의 항소를 전부 기각했다.

법조계에선 즉시연금 소송이 모두 대법원에 가서야 결론이 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최소 2~3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판결에서 재판부가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면 보험사들은 추가 연금 지급에 따른 비용 유출이 불가피하다. 법조계는 가입자들이 최종 승소하면 원고(가입자)들뿐만 아니라 관련 즉시연금 가입자들 모두 보험금 추가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재판과 앞선 재판 모두 보험사의 소멸시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이은 패소에 보험사들도 충당금을 쌓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2분기에 즉시연금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278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다. 한화·동양·미래에셋·KB생명 등도 충당금을 쌓았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삼성생명 등 다수 보험사를 대상으로 공동 소송을 진행하는 즉시연금 공동 소송 재판에서 항소심인 2심에서 가장 먼저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어서 의미가 크다”며 “생보사들은 시간 끌기용 소송전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미지급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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