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증명한 비트코인의 가치 [비트코인 A to Z]

우크라이나에 쏟아지는 비트코인 후원금…달러 대체하는 ‘화폐’로서의 내재 가치 증명한 비트코인

[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을 둘러싼 기운이 심상치 않다. 도박성 투기에서 4차 산업혁명의 전령, 튤립 거품에서 안전 자산까지 결코 묶을 수 없는 극단적인 평판이 오고 가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새 비트코인이야말로 다른 그 어떤 자산도 가지지 못한 ‘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합당한 의혹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3월 1일(현지 시각) 비트코인이 자신의 내재 가치를 세상에 보여줬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 포브스는 최근 네 가지 사건을 들어 비트코인이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캐나다 정부가 백신 반대 시위대에 대한 후원 계좌를 동결한 사건이다. 둘째,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월경하는 피란민들이 비트코인을 소지했고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돕는 후원금들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로 쇄도하고 있다. 셋째, 놀랍지 않지만 서방의 금융 제재를 받게 될 러시아에도 비트코인이 금융 통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넷째 값어치가 종이보다 빨리 떨어지고 있는 터키의 리라화다.
금융 제재 뚫고 국경 넘나드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금융망을 통하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공항 검색대나 국경수비대의 몸수색도 피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도 빛보다 조금 늦은 속도로 도달한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비트코인이 지정학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화폐를 꿈꾸는 사람들이 30년 동안 만들고자 했고 실패를 거듭하다 얻은 결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1945년 전쟁의 종료와 함께 만들어진 세상은 외견상으로는 처참한 상태였지만 질서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상 보기 드물게 단순한 상태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제국들은 거의 몰락했고 전쟁에 이긴 소련도 너무나 많은 피해를 본 상태였다. 오직 미국만이 건재했다. 미국은 세계 질서를 자신들이 생각해 온 이상에 맞춰 설계할 수 있었다. 비록 공산주의의 도전이 지속됐지만 시장 경제를 수용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명확한 서열과 함께 법치의 개념이 자리 잡았다.

글로벌 금융은 세상이 원래부터 법대로 움직이는 곳이라는 착시를 일으키는 원천이었다. 은행을 끼고 하는 원거리 무역에서 고려할 문제는 운송 비용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전부였다. 통계적으로 계산 가능한 자연재해는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원거리 무역의 모든 위험은 비용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드디어 경제학자들이 수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이 창조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세상이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미국을 제국이라고 부르든 패권 국가라고 부르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애초에 한 나라의 국내 통화를 세계 무역의 결제 수단으로 삼는다는 자체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이를 처음 지적한 사람은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다. 트리핀 교수는 기축 통화국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무역 적자를 떠안게 되는데 무역 적자가 쌓이면 국가 신뢰를 잃어 버릴 수밖에 없어 기축 통화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고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의 예견은 맞아떨어졌고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크고 작은 분쟁에 개입하느라 엄청난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를 찍어 낼 수밖에 없었다. 비현실적으로 좋았던 시절은 이런 보이지 않는 막대한 세금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오래된 국가들과 민족들이 즐비하다. 민족적 갈등은 실타래를 풀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다. 석유와 물자를 실은 배들은 그런 갈등 지역을 오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행세를 내거나 갈등에 휩싸여 가라앉거나 압류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현대 경제 시스템의 토대는 미국의 해군력과 유라시아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의지 때문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 빚을 갚으면서도 국가 모라토리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 무역 적자를 지속적으로 쌓는 데도 흑자국들이 채권을 구입해 기축 통화의 가치를 지지해 줘야 하는 현실 등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지정학적 보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는 사실은 어느 나라의 정치가도 노골적으로 입밖에 내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은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미얀마의 군부를 제압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까지 주면서 서구가 영웅으로 떠받들던 아웅산 수치 정부를 전복했는데도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날 때는 누가 보더라도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도망가는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다. 카자흐스탄 국민이 정부를 규탄하는 모습을 서방 언론이 아름답게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특공대가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미국 정부의 대변인은 코미디와 다를 바 없는 하나 마나 한 말만 늘어놓았다.

유라시아 대륙은 지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미국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챕터는 책이나 연극과는 다르다. 대나무처럼 마디가 분명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중첩되기도 하고 역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섣부른 단정은 오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예단이 투자 행위와 연결될 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시대가 마감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평원은 독일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예전에는 마차와 기마군단이, 현대에는 전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탁 트인 평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다가 몰락을 재촉했다. 이 평원은 러시아가 아니라면 독일의 세력권일 때 안정된다. 이상적인 세계라면 두 강대국이 조약에 따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세계가 이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지당한 사실을 일깨워 줄 뿐이다.
‘달러 패권’ 시대의 마감
미국의 패권 아래 오랫동안 비현실에 길들여져 있던 독일과 서유럽이 이 일을 계기로 미국 없는 유라시아를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피 값을 지불하며 배워 온 유럽 대륙은 어쨌든 미국 없는 세계에서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문제는 개인들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에 새로운 패권이 자리 잡을 때까지 사람들은 익숙한 과거로부터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인데 무엇보다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없거나 돈을 보낼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경을 넘을 때 몸수색을 당할 것이고 값나가는 모든 것들이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부동산·자동차·귀금속을 적들에게 고스란히 바치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불을 질러 재로 만들어 적들을 조롱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포브스가 증명됐다고 말한 비트코인의 내재 가치는 이토록 불쾌한 세상을 가정한다. 불쾌하지만 이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면 어쩔 것인가. 아니다. 불쾌한 현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불과 1%밖에 안 된다고 해도 비트코인은 당신 가족의 생명줄이 돼 줄 수 있다. 질서가 무너질 때는 오직 비트코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지금과 같은 세상이 지속된다고 해도 비트코인에 투자한 자금을 모두 잃어 버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거의 언제나 우크라이나·터키·캐나다에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따라서 비트코인은 불쾌한 현실이 벌어지지 않은 나라의 국민에게도 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벌자는 심보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반대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허겁지겁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에 가더라도 거지꼴을 면할 수 있는 이유는 평안한 국가의 국민이 비트코인을 비싼 값에 사 주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아무튼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합리적인 부자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이야말로 지금 당신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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