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변경합니다”…부동산 경기 침체에 신사업 진출하는 건설업계

친환경·IT·유통 등 진출 초읽기, 사업 다각화로 지속 성장 목표

[비즈니스 포커스]

건설업계가 올해 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신사업에 진출한다. 사진=픽사베이


건설업계의 주주 총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총 안건을 보면 올해의 핵심 이슈는 정관 변경에 따른 신사업 진출이다. 금리 인상과 정권 교체를 앞두고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신사업에 뛰어들며 지속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모습이다.

친환경 사업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

정관 변경으로 신사업 진출을 노리는 건설사들은 DL이앤씨·DL건설·HDC현대산업개발·코오롱글로벌·계룡건설산업 등이다. DL이앤씨와 DL건설의 주총은 3월 24일, HDC현대산업개발과 계룡건설산업은 3월 28일, 코오롱글로벌은 3월 29일이다.

신사업 진출 분야는 친환경 사업이 대부분이다. 탄소 자원화와 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사업이 시장에서 각광받는 만큼 올해 주총에서 정관을 바꿔 해당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다.

DL이앤씨는 주총에서 기존 정관에 △이산화탄소(CO₂) 포집·활용·저장과 탄소 자원화 사업 설계, 시공·운영에 관한 일체의 사업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업 △고압 가스 저장·운반업, 위험물 저장·운반업 △신기술 관련 투자, 관리 운영 사업과 창업 지원 사업 등을 정관에 추가할 예정이다.

DL이앤씨는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발전소·철강·정유·시멘트 등 제조업 분야에서 CO₂ 포집·활용 등에 관한 발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원천 기술을 확보해 해외 사업 기회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DL이앤씨는 정관 변경에 앞서 CO₂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 작업도 진행했다. 지난 2월 서해그린환경과 탄소 포집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충남 대산에 있는 서해그린환경의 폐기물 처리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CO₂를 포집하는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한다.

Dl이앤씨는 해당 사업장에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의 흡수제를 적용한 CO₂ 포집 설비 설계와 건설 작업을 실시한다. 이 설비는 연간 약 6만 톤의 CO₂를 포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착공에 들어가 2024년 상반기부터 운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계룡건설산업도 친환경 사업에 적극적이다. 올해 주총에서 △태양광 발전과 전력 중개업 △폐기물·부산물 연료화 사업 등을 정관에 추가할 방침이다.

예전부터 제로 에너지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한 정관 변경을 실시해 온 계룡건설산업은 친환경 에너지 분야 중에서도 태양광과 폐기물 사업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계룡건설산업 관계자는 “기존 핵심 사업인 건설만으로는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주택·산업 시설의 구축에는 땅이 필요한데, 지을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다. 고부가 가치 산업인 친환경 사업 진출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IT·유통·금융 분야도 진출

건설사들은 친환경 사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유통·금융 등의 분야에도 진출하려고 한다. DL건설은 토지 정보 플랫폼 운영을 위해 올해 주총에서 △소프트웨어와 정보 처리 개발 및 공급업 △전자 상거래 및 기타 통신 판매업, 통신 판매 중개업 등을 정관에 추가할 방침이다.

DL건설은 지난해 7월 사내벤처로 탄생한 토지 솔루션 플랫폼인 ‘랜드테크컴퍼니’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랜드테크컴퍼니는 프롭테크 기술을 적용한 토지 정보 플랫폼이다. 해당 홈페이지에 토지 정보를 등록하면 사업성을 분석해 매매 체결까지 지원한다. 등록 대상은 주택 개발과 도시 개발, 물류 개발 등이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홍역을 앓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도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해 정관 변경에 나선다. 유통업·도소매업·판매시설운영업·물류업·운수업 등을 추가한다.

이 가운데 유통과 물류업 등은 관련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서울 용산에 아이파크몰을 만들며 이미 유통업에 진출해 있다. 이번 유통업 정관 변경은 기존 B2C 유통뿐만 아니라 B2B 관련 사업도 진행하기 위해서라고 회사 측은 귀띔했다.

코오롱글로벌은 △건설 기계 및 물류 장비(중고 포함) 판매업·정비업·부품 사업 △상품권 판매업 △금융 상품 중개업 등을 추가한다. 건설과 함께 유통·무역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코오롱글로벌은 이번 사업 목적 추가로 상사 사업과 자동차 부문 사업 확장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건설업계가 정관까지 바꾸며 신사업에 진출하는 주된 이유는 주택 사업 위주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돈이 되는 것은 다 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건설 경기 침체를 경험한 건설사들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에 좌우되는 현재 상황과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관 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사업 다각화 시도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모습”이라며 “정관 변경을 통해 본격적으로 관련 산업 진출을 저울질한 후 관련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건설업계는 올해 주총에서 사업 목적 추가와 함께 안전 관리 강화도 주요 안건으로 설정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 관리에 대한 중요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안전 관리 책임자를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현대건설은 3월 24일 주총에서 황준하 안전관리본부장을 신규 사내이사에 선임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경영지원본부 산하의 안전지원실을 안전관리본부로 격상하고 최고책임자(CSO)에 황준하 본부장을 임명한 바 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