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에도 위기감…디지털 고삐 죄고 금융 플랫폼 변신 잰걸음
[스페셜 리포트]신용카드 회사들이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주요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율은 점점 낮아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소비의 증가로 빅테크 기업의 금융권 공략은 더욱 매서워졌다. 더 이상 본업만으로는 수익을 보존하기 어려워진 카드사들은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며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의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7개 신용카드사(신한·삼성·KB국민·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의 당기순이익 합계는 약 2조 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아직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현대카드의 실적을 합산하면 8개 전업 카드사의 순이익은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도 8개 카드사의 순익 합산 약 2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하지만 현재 카드사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들은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카드사들은 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을까. 우선 이들의 전통적인 수익원을 살펴보면 소비자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가맹점이 내는 가맹점 수수료(카드 수수료)와 소비자가 할부 이용 시 발생하는 할부 수수료, 소비자가 매년 한 차례 납부하는 연회비 등 총 세 가지다. 그런데 잇단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신용 판매가 위축될 위기에 놓였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3년마다 적격 비용을 재산정하는데 2007년부터 14년간 14번 인하됐다.
여신업계에 따르면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올해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합산 영업이익 감소분은 최대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은 1.40%에서 1.36%로 약 0.06%포인트 감소했고 이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가 예측되면서 카드업계는 희망퇴직을 단행하기도 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에 대출 규제까지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가계 부채 관리에 들어가면서 카드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작용했던 카드론(장기 카드 대출)에 제동이 걸렸다. 가계 대출 상품인 카드론은 올해 1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돼 영업이 어려워졌다. 2금융권 전체 DSR은 기존 60%에서 50%로 하향 조정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가 간편 결제 등에 뛰어들며 카드사의 본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전후로 한국의 결제 시장은 온라인 위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모두 페이(결제) 플랫폼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빅테크와 협력에 나섰지만 향후 빅테크들이 독자적인 결제 시장에 진출한다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빅테크들이 후불 결제(BNPL : Buy Now Pay Later)에 출사표를 던진 점도 카드사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지만 소액 신용 대출 서비스가 필요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고객으로 끌어들여 자사 플랫폼에 계속 머무르도록 하는 락인(lock-in)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플랫폼 구축에 힘주는 신한·KB국민카드
위기감을 느낀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데이터’와 ‘디지털’을 핵심 키워드로 꼽고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의 관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1위 신한카드를 이끌고 있는 임영진 사장은 “데이터와 디지털은 고객의 마음을 향해야 하고 더 쉽고 새로운 금융 경험을 선사하는 딥테크(deep-tech)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신한카드는 ‘생활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결제 플랫폼 신한플레이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운세 서비스,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서비스, 골프 레슨 콘텐츠 등 비금융 콘텐츠를 탑재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9월 말 간편 결제 서비스 ‘신한페이판’을 3년 만에 리브랜딩하며 ‘신한플레이’를 출시했다. 고객의 소비 패턴에 따른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재테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강한다는 방침이다.
마이데이터에 기반한 소비 관리(PEM)와 자산 관리(PFM)도 갖췄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신한플레이’를 통해 일상 속 소비 관리, 통합 자산 조회, 맞춤형 금융 상품 추천, 신용 관리 서비스, 유용한 투자 정보 등 자산 관리 서비스를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제공한다는 게 특징이다. 먼저 마이데이터 기반의 통합 조회 서비스를 통해 모은 돈, 빌린 돈, 순자산 등 자신의 경제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와 함께 각 자산별 상세 정보까지 제공한다. 또한 금융 캘린더를 통해 지출·입출금·정기 납부 등 꼭 필요한 가계부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입출금 조회와 이체 서비스까지 연결해 원스톱 뱅킹을 구현했다.
이동철 사장에서 올해 이창권 사장으로 수장이 교체된 KB국민카드도 카드사로서의 정체성보다 플랫폼 기업으로의 진화를 예고했다. 이 사장은 지난 1월 취임식에서 “메타버스·NFT 등 새로운 기술과 가상 자산 등 카드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미래 화폐 구조 변화를 예의 주시하겠다”며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선사하는 최고의 플랫폼 기업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먼저 이 사장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신성장사업그룹과 글로벌사업본부를 신설, 국내외 신성장 사업을 지원하고 IT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KB페이의 결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선다. 기존 카드 결제는 물론 상품권과 지역화폐 등 비(非)카드 결제 수단으로 결제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엔 환전 없이 해외주식을 소액거래할 수 있는 해외주식 투자 서비스도 탑재했다. 또 페이마케팅부를 신설해 현업 계열사 플랫폼 간 연계 영업과 월간 활성사용자수(MAU) 증대를 위한 마케팅을 강화했고, 기존 KB페이 플랫폼과 홈(웹·앱) 운영 채널도 통합했다. 그룹의 모든 계열사의 자원과 역량을 적극 활용해 KB페이를 결제 경쟁력 및 금융·비금융 서비스까지 갖춘 플랫폼으로 우뚝 세우겠단 목표다.
빅데이터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2월 온라인 기반의 개방형 데이터 비즈니스 통합 플랫폼인 ‘데이터루트’를 선보였다.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중소기업·지방자치단체 등이 카드 빅데이터를 온라인에서 분석하고 시각화된 보고서와 각종 부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카드는 데이터, 삼성카드는 원 앱 승부
현대카드도 수수료·이자 수입 중심의 기존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 카드사가 가진 데이터를 가공·활용해 수익을 내는 데이터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꾀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및 현대커머셜 부회장은 신년 메시지에서 “모든 산업이 테크놀로지라는 도구에 지배되고 있다”며 “결국 기술을 가진 기업이 산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카드는 금융 테크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야후 등 출신의 오승필 디지털사업본부장(현 부문대표) 영입을 시작으로 디지털 인력을 상시 채용하는 등 금융 테크 기업으로서 기반을 닦았다. 현재 디지털 인력(약 450명)이 전체 직원의 20%를 넘었다. 특히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금융테크 기업으로 입지를 다진다는 전략이다. 또 애자일(agile) 조직 운영과 분기별 프로젝트 점검 시스템을 도입해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변화를 추진 중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대부분의 마케팅이 데이터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2020년부터 AI를 활용한 앱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고객의 결제 데이터 분석 값을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고 또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는 상품과 이벤트 등을 추천할 수 있는 앱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할인·쿠폰·이벤트 등의 혜택을 추천해 주는 ‘3층 시스템’, ‘내 신용정보 비교’, 마이데이터 서비스 ‘내 자산’, ‘소비케어’ 등 많은 서비스들이 데이터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또 현대카드는 PLCC를 기반으로 지난 5년간 금융사를 넘어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해 왔다. PLCC는 유통 등 기업이 전문 카드사와 함께 운영하는 카드다. 현대카드는 2015년 이마트를 시작으로 업계 ‘챔피언’ 기업만 엄선해 PLCC 파트너십을 맺었다. 온라인 오픈 마켓(이베이), 창고형 마트(코스트코), 자동차(현대차·기아), 정유(GS칼텍스), 항공(대한항공), 커피(스타벅스), 배달(배달의민족), 차량호출(쏘카), 패션 플랫폼(무신사) 등이다. 2020년엔 자체 기술로 개발한 데이터 플랫폼 ‘도메인 갤럭시’를 가동했는데, 이 플랫폼에서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사는 고객들의 소비 행태를 분석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각자의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또 파트너사들은 각자의 마케팅 니즈가 발생하면 손쉽게 다른 파트너사에 협업 마케팅을 제안하고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쏘카와 무신사는 고객층이 연령대·취향 등에서 공통점이 많아 마케팅 이벤트를 진행했다.
삼성카드는 삼성 금융 계열사들과 함께 통합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지난해 4월 삼성화재가 174억원, 삼성생명이 143억원, 삼성증권이 74억원을 분담하고 삼성카드가 통합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기로 공동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 금융 계열사 통합 앱은 ‘모니모(가칭)’로 불릴 예정이고 삼성 금융 계열사의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오픈 뱅킹, 리워드 지급 등의 서비스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 금융 계열사는 통합 앱을 통해 상당한 이용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