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수위’, 다듬고 채우고 빼야 할 공약 많다[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2-03-21 06:00:11
수정 2022-03-21 06:00:11
자영업자 50조 보상, 수백조 지역 SOC, 청년 공약 그대로 실행 땐 나라 곳간 구멍
[홍영식의 정치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를 본격 가동하고 정권 인수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인수위는 앞으로 국정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핵심 과제와 실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새 정부의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윤 당선인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을 보좌하고 검증 작업도 한다. 5월 10일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두 달 가까운 작업을 통해 총체적인 국정 청사진을 그리는 막중한 일을 하게 된다.
역대 인수위 활동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선진 일류국가’라는 국가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정 5대 지표, 21대 전략, 192개 과제, 900여 개 세부 실천 과제들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비전 아래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 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 시대의 기반 구축 등 국정 5대 목표와 20개 전략, 100대 과제를 선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급작스럽게 보궐 선거가 치러지고 선거 다음날인 2017년 5월 10일 취임하는 바람에 인수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대신 정권 출범 직후 인수위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두 달간 활동 끝에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등 5대 국정 목표와 20대 전략, 100대 과제들을 내놓았다.
인수위원회 본격 가동, 새 정부 국정 청사진 마련
윤 당선인의 인수위는 7개 분과로 구성된다. 기획조정과 외교·안보, 정무·사법·행정, 경제1(경제정책·거시경제·금융), 경제2(산업·일자리), 과학기술교육, 사회복지문화 등이다. 국민통합특위와 지역균형특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 대응 태스크포스(TF),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는 문제를 담당할 청와대 개혁 TF가 별도로 꾸려진다.
윤 당선인의 인수위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공약들을 가다듬어 새 정부가 실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선거 때 제시된 공약은 득표를 우선하다 보니 아무래도 비현실적 포퓰리즘 성격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공약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다 실천할 경우 나라 재정이 구멍 난다면 현실에 맞게 가다듬고 뺄 것은 빼야 한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공약부터 그렇다. 윤 당선인은 임기 개시 100일 내 50조원 지원을 약속했다. 재원 조달 방안은 허술하다. 예산 지출을 효율화하겠다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기존 예산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판에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임대료 나눔제’와 ‘반값 임대료’도 마찬가지다. 임대료 나눔제는 임차료를 임대인·임차인·국가가 3분의 1씩 나눠 분담하는 것이다. 임대료 삭감에 따른 손실은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종식 뒤 세액공제 등 방식으로 보전해 준다. 반값 임대료는 영세 자영업자의 부가가치세, 전기·수도요금 등 공과금 부담을 50% 감면해 준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채무 원금 감면 폭을 현재 최대 90%로 확대하는 공약도 내놓았다. 코로나19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이들의 부실 채무를 정부가 일괄 매입해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안들은 막대한 예산도 문제이지만 자칫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금융 시장의 질서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이 급하더라도 손실 보상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의 개혁 필요성을 거론하면서도 집권 뒤 사회적 논의 기구 설치 등만 언급했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께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생은 연금을 제대로 받기 힘들 수 있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기초연금 증액 등 연금을 더 주겠다는 방안만 내놓아 개혁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동산 공약도 다듬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윤 당선인은 250만 가구 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산과 분당 신도시 30만 가구의 8배가 넘는데 이만한 부지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5년간 청년 원가주택 30만 가구 공급 목표도 제시했다. 분양가의 2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게 하고 나머지 소요 자금 80%는 30년 이상 장기 저리로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현대판 반값 아파트다. 청년이 5년 넘게 살다가 팔면 국가가 이를 사도록 했는데, 수조원의 재원이 필요하지만 재정 지원과 주택도시기금의 활용 방안만 제시했다.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공약도 조정이 필요하다. 윤 당선인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신설·연장, 경인선 구로역~인천역과 경원선 청량리역~도봉산역, 경부고속도로 한남~양재, 경부선 당정역~서울역 등 지하화를 공약했다. 수도권 경원선 청량리~도봉산, 파주~고양 전철, 제1순환고속도로, 경부선 화명~부산진역 등도 지하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지역마다 약속한 도로·철도 등 SOC 공약이 수두룩하다. 물론 필요한 SOC 사업은 해야 하지만 이 모든 공약을 이행하려면 한 해 예산의 절반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이다.
병사 월급 200만원으로 올리면 연간 10조원 더 필요
‘청년도약계좌’ 공약도 재원 논란이 크다. 근로·사업소득이 있는 만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원 한도 내에서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정부가 월 10만~40만원씩 더해줘 10년 만기 시 1억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인기를 모은 청년희망적금과 비슷하지만 혜택이 더 많고 지원 대상도 넓다. 청년희망적금은 연소득 3600만원 이하인 청년만 가입할 수 있지만 도약계좌는 한계를 두지 않았다.
문제는 청년희망적금 가입자 290만 명에게도 청년도약계좌로 옮길 수 있는 혜택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희망적금 가입자가 모두 이 상품으로 갈아탄다면 정부 지원금은 이자와 지원 금액을 합쳐 10년간 최대 80조원이 필요하고 자칫 은행권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재원 대책에 대해선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군 장병의 월급을 현 병장 기준(67만원)의 3배 정도인 200만원까지 올려주겠다고 한 공약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5조1000억원이 더 필요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으로 ‘엄격한 세출 구조 조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특히 이 공약이 실행되면 초임 부사관과 장교보다 병사가 월급을 더 받는 모순이 생긴다. 병사의 월급을 올려주면 간부의 월급 인상도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연간 재원은 줄잡아 10조원 더 필요하고 다른 군 예산을 줄여 충당하게 되면 자칫 군 전력 증강에 차질이 우려된다.
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틈만 나면 고용 유연화 등 노동 개혁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노동단체를 찾아가서는 노동이사제 수용, 타임오프제 찬성 방침을 밝혔다. 노동 개혁과는 모순된 공약이란 지적이다. 정부 재정으로 택시 플랫폼을 만들고 농업 직불금을 두 배로 늘리는 공약도 윤 당선인이 주장해 온 ‘작은 정부’와 ‘시장주의자’와는 맞지 않는다.
윤 당선인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266조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지역 개발 공약을 제외하는 등 이마저도 과소 계상했다는 게 중론이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