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에 전쟁까지…지정학 리스크에 떠는 포스코인터내셔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터미널 ‘올스톱’
미래 먹거리 사업 불확실성 커져

[비즈니스 포커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항에서 곡물 수출 터미널을 운영 중이다.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이어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알짜 사업인 가스전 사업과 식량 사업이 모두 현지 쿠데타와 전쟁의 영향권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러시아명 키예프)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곡물 수출 터미널을 운영 중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아직까지 관련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지 주재원과 가족을 모두 인근 국가나 국내로 대피시키고 터미널 운영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러시아군은 최근 키이우를 장악하기 위해 인근의 주요 거점 도시에까지 무차별 공격을 이어 가고 있다. 하르키우·마리우폴·미콜라이우 등 대도시에 집중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식량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식량 사업 확장에 제동 걸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식량 사업을 철강·에너지와 함께 3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트레이딩에 그치지 않고 농장-가공-물류 인프라에 이르는 식량 밸류 체인을 구축해 왔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식량 사업은 인도네시아 팜오일 사업, 미얀마 미곡 종합 처리장, 우크라이나 곡물 창고(터미널) 등 3개 나라를 거점으로 하고 있다. 현지 인프라 운영과 트레이딩의 연계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식량 사업 육성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2018년 선정한 100대 개혁 과제 중 하나다. 포스코그룹이 최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식량 사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식량 사업은 미얀마 가스전에 이어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캐시카우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는 △철강 △2차전지 소재 △리튬·니켈 △수소 △에너지 △건축·인프라 △식량 등 ‘7대 핵심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해 2030년까지 기업 가치를 현재의 3배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매출 33조9489억원, 영업이익 5854억원을 올렸다. 그중 식량 소재 사업 부문 매출은 8조1443억원이다. 지난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30년까지 곡물 취급량을 기존 800만 톤에서 2500만 톤으로 확대하고 연매출 10조원을 달성해 종합 상사를 넘어 글로벌 10대 식량 종합 사업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식량 사업 확장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추진해 온 우크라이나 영농 사업 진출도 전쟁 발발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최대 수출항 중 하나인 미콜라이우(니콜라예프)항에 밀·옥수수·보리·대두 등 연간 250만 톤 규모의 곡물 출하가 가능한 곡물 수출 터미널을 준공하고 가동 중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를 통해 유럽연합(EU)과 중동·북아프리카(MENA)·아시아 지역에 옥수수·밀 등의 곡물을 판매하고 있다.

곡물 수출 터미널을 이용해 국제 가격이 낮을 때 곡물을 보관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파는 식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 2021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곡물 수출 터미널을 통해 식용 옥수수 5만 톤을 한국 최대 곡물 수입 업체인 대상·삼양·CJ에도 공급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식량 사업에서 핵심적인 시장이다. 곡물 수출량이 2010년 1200만 톤에서 2020년 5500만 톤으로 10년 사이 4배 이상 증가한 수출 강국이다.

또한 세계 밀 수출 시장의 10%, 옥수수 시장의 18%를 차지하는 세계 주요 곡창 지대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전체 곡물 수출량의 약 90%가 흑해 항만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 그중 22.3%가 미콜라이우항에서 수출된다.


[돋보기]


그래픽=송영 기자

전쟁 나면 주가 오를까…
과거 주요 이벤트와 금융 시장 영향 보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국가들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을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로 ‘세계 지정학적 위험지수(GPR : Geopolitical Risk Index)’가 있다.

GPR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캐나다·영국의 11개 언론에 전쟁·테러·정치적 갈등 등과 같은 지정학 위험 단어가 언급된 비중을 종합해 2000~2009년을 기준으로 세계 지정학적 위험이 심화 혹은 완화됐는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개발했다.

GPR 지수는 100이 기준으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해당 비율의 평균값을 100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GPR 지수가 200이라면 이는 2000년대 당시보다 지정학 위험을 언급한 기사가 2배 많아진 것이고 지정학 위험이 기준 연도 대비 2배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증 분석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이 크게 상승하면 경제 활동이 약화되고 주식 시장이 하락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금융 시장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출현하면 선진국의 주가는 하락하고 안전 자산 선호가 강화되면서 미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된다.

또 국제 자본 이동을 제약하기 때문에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선진국으로 자금 회귀가 강화된다. 지정학적 위험 상승은 유가에도 부정적이다. 다만 경기 상황과 정책 대응에 따라 지정학적 위험의 충격 수준이 달라지므로 글로벌 경기 여건과 정책 대응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전 세계 주요 지정학적 이벤트가 발발했을 때 GPR 지수는 크게 상승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GPR 지수가 372까지 치솟으면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 당시 36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46, 1982년 아르헨티나가 영국령인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으킨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는 272까지 올랐다. 2017년 북핵 문제를 둘러싼 주변국 간 갈등과 각국 대통령이 잇달아 탄핵에 몰리면서 GPR 지수가 300대까지 급등했다.

과거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금융 시장의 영향을 보면 2003년 이라크전 당시에는 전쟁 발생 직후 높았던 안전 자산 선호가 1개월이 지나지 않아 빠르게 완화됐다. 금값은 이라크전 이후에도 단기적으로 뚜렷한 방향성을 나타내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수일간 휴장에 돌입했고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폭락했다. 테러 직후 안전 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화와 금값이 크게 상승했다. 테러 발생 2개월 후 코스피와 미국 증시는 모두 플러스 전환했다.

1990년 걸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침공을 개시한 후 3개월간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지만 1991년 1월 미국이 군사적 행동에 돌입해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는 국제 유가가 하락 전환됐다. 걸프전 이후 안전 자산인 미국채와 금값 등이 강세를 기록했고 위험 자산인 주식은 하락했지만 3개월 이후부터 안전 자산 선호가 완화됐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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