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좌표 틀어쥔 안철수 권영세 원희룡[홍영식의 정치판]

인수위, 서울대 법대 출신 ‘法黨’· MB정부 인사 두드러져…DJ·노무현 정부 인사도 참여

[홍영식의 정치판]


역대 정권마다 인사에 특징이 있었다. 과거 군사 정권에선 ‘육법당’이란 말이 회자됐다. 육군사관학교와 법대 출신이 청와대·정부·국회를 차지해 나라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다. 법대는 서울대 법대를 지칭한다. 고시에 합격해 판사와 검사를 거쳐 정·관계에 입문해 육사 졸업의 ‘별’들과 함께 권력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서울대 법대 동창회가 1994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펴낸 수상록에서 한 동문은 “군사 독재를 뒷받침해 준 머리와 손발은 대부분 서울 법대 출신이었다. 반면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 법대인은 드물었다. 법대 출신들이 정통성 없는 권력과 야합해 역사를 어지럽혔다”고 평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엔 별들의 힘이 약화됐다. 당시 김 대통령이 5~6공화국의 실세를 형성했던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육사의 시대가 저물게 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운동권이 권력의 주류를 형성했고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또 정권에 관계 없이 ‘법당’ 세력도 마찬가지로 정·관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 정권 이후엔 정권의 주류는 이전보다 다양화됐다. 하지만 정권마다 특징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6·3세대가 주류를 형성하고 이른바 ‘386’들이 이들을 떠받치는 ‘행동대’ 역할을 했다.

이명박 ‘고소영’→박근혜 ‘성시경’→문재인 ‘캠코더’→ ?

이명박 정부에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전 대통령의 출신 학교와 지역, 다니던 교회를 끈으로 한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직책을 차지한 데서 비롯됐다. 박근혜 정부에선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 인사들이 중용돼 ‘성시경’이란 별칭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특징은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로 요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지와 상관 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위원 등 인선을 마무리하고 본격 출범했다. 특징 중 하나는 윤 당선인의 주변에 과거 다양한 정권의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특별고문에 위촉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위원인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김창경 과학기술교육분과 위원, 이상휘 당선인 비서실 정무2팀장 등은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이다.

윤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공동부위원장 겸 투자유치TF팀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겸 정책실장으로 이 전 대통령을 도왔다. 임태희 전 실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 실장을 역임했고 윤석열 후보 캠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과 김성한 인수위 외교안보 분과 간사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 외교부 1차관을 각각 지냈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도 적지 않다.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은 주중 대사,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를 맡은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국무조정실장, 강석훈 정책특보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김현숙 정책특보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는 기획재정부 1차관, 경제 1분과 위원인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연구원장을 각각 역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김한길 국민통합특별위원장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기획특보와 대통령 취임식 실행준비위원장, 민주당 대표를 맡았었다. 검찰 출신의 박주선 취임식준비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법무비서관과 민주당 계열 정당과 국민의당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김병준 지역균형특별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성민 정무특보는 김대중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유종필 특별고문은 김대중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후보 공보특보, 민주당 소속 서울 관악구청장을 각각 지냈다.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7개 분과 위원·대변인·특위 위원장·기획위원장 등 31명의 면면을 보면 학연 쏠림 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윤 당선인이 학교와 지역 등을 가리지 않는 인재 등용 원칙 때문이라고 인수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월 13일 인수위 첫 인사를 발표하면서 “일 잘하는 정부, 능력 있는 정부로 국민을 주인으로 제대로 모시고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절반 넘고, 법대 주류로 등장…정치인은 배제

서울대가 17명(54.8%)으로 절반을 넘는 것도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윤 당선인과 같은 법대 출신이 7명으로 두드러진다. 권영세 부위원장은 77학번으로 윤 당선인의 2년 선배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다. 권 부위원장이 신입생인 윤 당선인을 직접 형사법학회에 스카우트했고 사석에서 윤 당선인은 그를 형님으로 불렀다. 박주선 취임식준비위원장은 윤 당선인의 11년 선배이고 원희룡 기획위원장은 3년 후배다.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82학번), 유상범 정무사법행정분과 위원(84학번), 최지현 수석부대변인(96학번)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특히 권 부위원장과 원 기획위원장이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함께 차기 정부 청사진 마련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인수위에 정치권 인사들이 많았던 반면 이번엔 위원 23명 중 현역 의원은 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로 채웠다. 교수 출신이 8명, 관료는 6명 등이다. 이 역시 ‘일’과 ‘능력’을 중시한 윤 당선인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김은혜 대변인은 말했다.

이전 인수위에 비해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과 기업 출신의 시장 친화적인 인물들이 많이 발탁된 것도 특징이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안철수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경제2분과 간사에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가 깜짝 발탁된 것이 한 예다. 윤 당선인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이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공직 생활을 한 경험도 있고 기술 혁신 등 신산업 분야 전문가다.

윤 당선인의 오랜 친구이자 ‘디지털 플랫폼 정부’ 공약을 주도한 김창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탄소 중립 전문가로 과학·기술·교육 분과 위원인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유웅환 전 SK ESG혁신그룹장,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등도 눈에 띈다.

인수위원들은 정부 출범 이후에도 청와대와 관계 주요 직위에 대거 진출했다. 인수위에서 확정한 새 정부 청사진을 착근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인수위원 109명 56%인 60명이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으로 갔다. 이 때문에 이번 인수위 위원들 중 상당수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정부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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