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동 거는 애플, 결제 시장 혁신 일으킬까 [비트코인 A to Z]
입력 2022-04-12 17:30:08
수정 2022-04-12 17:30:08
금융 생태계 뒤흔들 모바일 기기의 스마트 계약 도입…‘비상사태’ 걸린 삼성전자
[비트코인 A to Z]4월 6일부터 미국 마이애미에서 비트코인 콘퍼런스가 열린다. 필자가 글을 쓰는 시점은 아직 콘퍼런스가 시작되기 전이다. 지난해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던 잭 맬러스 스트라이크 최고경영자(CEO)는 애플과 관련해 뭔가 중대한 발표가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다. 과연 애플이 암호화폐 산업에 어느 수준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할지가 이번 콘퍼런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10년째 이어지는 IT 기업의 페이먼트 전쟁
아이폰의 행보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금융 혁신이 맞다는 전제에서 보면 이는 한국으로서는 비상상태나 다름없다. 불과 15년 전까지는 노키아가 휴대전화를 지배하던 기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망할 수 없을 것 같은 시장 지배력을 가졌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만약 비트코이너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트코인이 화폐 현상이고 이 화폐 현상에 애플의 아이폰이 한 발 앞서 깃발을 꽂는다면 삼성전자는 새로운 융·복합 산업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10년 전부터 페이먼트 전쟁을 하고 있다. 애플페이·삼성페이·구글월렛·카카오페이 등 IT 기업마다 시도하는 결제와 금융 프로젝트는 이 전쟁이 얼마나 중요하고 치열한지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그런데 왜 이 전쟁에서 하필 비트코인을 주목해야 할까.
사실 IT 기업들의 페이먼트 전쟁은 기술의 각축전이 아니다. 현재 선보이는 기술들은 오래전부터 가능했다. 문제는 기존의 산업과 정부가 결탁해 만들어 낸 거미줄과 같은 규제다. 물론 규제 하나하나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어 창안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기존 산업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해자와 같은 역할도 하기 때문에 기술과 상상력을 가로막기 쉽다.
복잡한 규제보다 더 복잡한 기존 금융 기업들의 먹이 사슬이야말로 비트코인이 IT 기업들의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삼성페이는 모바일 금융의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페이는 기존에 깔려 있는 카드 리더기와 보안망 관리 회사 그리고 카드 회사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스마트폰 안에 디지털화된 신용카드를 넣고 신용카드 리더기가 읽어 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소비자 편의를 획기적으로 고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페이로 삼성전자가 금융 기업이 되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차라리 아마존의 선급 카드 시스템이 삼성페이보다 금융업에 더 가깝다.
그러면 애플이 비트코인으로 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잭 맬러스 CEO가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이고 수수료가 비싼 비트코인으로 반드시 커피를 사 마셔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라이트닝 네트워크(비트코인 즉석 결제 솔루션) 전문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애플은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의 개인 지갑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옛일이다. 그러므로 아이폰이 비트코인 지갑을 탑재하고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을 보내고 받게 한다는 것으로는 뉴스가 되기 어렵다. 그것은 이미 갤럭시와 아이폰에서도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폰이나 갤럭시는 스마트 계약의 담보물로서 신용카드 회사와 금융회사를 생략하고 글로벌 소비자 금융의 허브가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 받는 암호학자 닉 사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1994년 ‘스마트 콘트랙트’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사법부나 금융회사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계약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논리적 상상이었다. 그는 자동차의 키를 예로 들었다. 자동차 할부금을 내지 않았을 때 전자적 형태인 자동차 키의 제어권이 은행에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사법부나 금융회사의 도움 없이 계약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최종성을 갖는 변제의 수단과 함께 전자적 형태로 가치물을 통제할 수 있는 담보물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최종성을 갖는 결제 수단이자 전자적 형태로 통제할 수 있는 담보물로서 스마트 콘트랙트의 전제를 모두 만족시킨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바로 비트코인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 거래가 빈번한 이들 간에 비트코인 블록체인과는 별도의 장부를 만들어 수수료를 절감하면서 서로가 상대의 배신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결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로 이용하는 회사 앞의 카페 주인과 공통의 지갑을 만들 수 있다. 이 지갑에 담긴 비트코인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둘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담보로서 비트코인을 넣어 놓고 매일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다. 커피 값만큼 비트코인은 카페 주인에게로 이동하지만 아직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올리지 않기 때문에 수수료는 없다. 외지로 전근을 가게 되면 더 이상 그 카페를 이용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 상태에서 최신 장부를 블록체인에 올리고 컨펌을 받는다. 이때 수수료를 한 번 내면 되기 때문에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수수료가 거의 제로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논문으로 제시되는 순간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가장 많은 비판은 빈부의 격차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비트코인을 담보로 삼을 수 있는 부의 차이로 야기되는 중앙화 문제였다. 어떤 사람은 100명의 사람과 라이트닝 네트워크 채널을 만들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한 명과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암호를 사용하는 스마트 계약이다. 직접적으로 채널이 없는 사람들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연결선을 이어 수수료가 거의 없이 거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과 채널을 만든 당사자가 신뢰의 허브가 될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탈중앙화라는 이념을 버릴 수 없는 비트코인이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뢰의 허브라는 거대한 중앙들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다만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신뢰의 허브를 중심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반드시 비트코인의 탈중앙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암호화폐 거래의 ‘허브’ 될 스마트폰
어찌 됐든 현실적으로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현재 1억4922만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이 예치됐고 노드 수도 3만5000을 넘었다. 결제 처리 속도는 비자의 1660배에 이른다.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성장이야말로 단지 투자를 위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사용을 위해 비트코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전 지구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의 갤럭시에 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는 평생 은행 계좌를 만들지 않는 이들이 절반이 넘는다. 신용카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형태가 됐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이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재산이다.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바로 소유자들과 일대일로 라이트닝 네트워크 채널을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 가장 큰 허브가 되는 셈이다. 사용자는 소량의 비트코인을 스마트폰에 예치하고 결제에 사용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변동하므로 두 회사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가로 동결하거나 매번 시가에 맞추는 선택권을 줄 수 있다. 동결하면 사용자는 변동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가격이 오르면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수익을 취하면 되고 가격이 내리면 회사의 손실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많으면 이는 통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회사로서는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아무튼 아이폰이나 갤럭시는 어떤 은행보다 많은 예치금을 보유한 금융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 더구나 닉 사보가 30년 전에 상상한 전자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이상적인 담보 자산에 가깝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기와 같은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그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암호화폐의 비밀 키 자체가 인증이므로 사용자의 정보를 스마트폰에 두느냐, 신용카드 회사의 서버에 두느냐를 놓고 규제 당국까지 합세한 씨름에서 자유롭다. 즉 삼성페이를 만들 때 설득해야 했던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모두 생략된다.
과연 애플과 삼성전자 중 누가 이 의미를 빨리 깨닫고 실행할 수 있을까. 실행 단계에서는 기술적 장애가 적지 않겠지만 기존 금융 생태계를 설득하면서 모바일과 결합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할 수밖에 없다. 두 회사의 경영진이 비트코인과 스마트 계약, 모바일의 결합이 가져올 의미를 깨닫고 나면 기존 금융회사들은 쓰나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금융망에서 소외됐던 20억 명 이상의 인구가 스마트폰이라는 간편한 은행을 하나씩 소유하게 될 것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신뢰의 허브와 허브 간 고속도로의 연결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그 허브가 한국 기업이었으면 하는 것이 한국 비트코이너들의 소박한 바람일 수밖에 없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