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훨씬 힘든 끝”…‘콩코드 효과’로 본 삼성·LG의 경영 방식
입력 2022-04-14 06:00:12
수정 2022-04-14 10:27:47
‘벤처 거품’ 꺼지자 ‘오너 뜻’에도 1년 만에 인터넷 사업 접은 삼성
‘과감한 결단’ 휴대전화 사업 정리한 LG
사업은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철수하는 게 더 어렵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주력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속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원자재·국제 상황 등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곤 한다.
주력 사업의 뒤를 잇는 신사업은 대부분 기업 오너의 제안으로 시작된다. 오너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면 조직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역량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기대는 사실 ‘꿈’에 불과하다. 만약 새로 시작한 사업의 성과가 전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적절한 시기에 철수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실제 기업 현장에선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에 계속해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 자금을 쏟아붓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경영학에선 이를 ‘콩코드 효과(concorde effect)’라고 부른다.
콩코드 효과는 최근까지 들인 수고와 투자 비용이 아까워 손해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계속해 사업을 진행하는 현상을 뜻한다. 남녀 관계에 비유하자면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신사업을 주도한 오너가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본인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집단에서도 콩코드 효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전·정보기술(IT)업계의 두 기둥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한때 콩코드 효과를 겪은 바 있다. 단, 두 기업의 차이는 ‘철수 타이밍’에서 났다. 삼성은 빠른 손절로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LG는 사업 철수가 지지부진하며 주력 사업까지 흔들릴 뻔했다.
‘주홍 글씨’면서도 ‘약’ 된 e삼성
e삼성.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주홍 글씨’다. e삼성은 이 부회장이 2000년 5월 삼성전자 상무로 근무할 당시 사재 500억원을 출연해 세운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다. 당시 이 부회장은 e삼성의 지분 60%를 보유했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 과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e삼성은 10년간 쌓아 온 경영 수업의 성과를 보여줄 기회였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만에 e삼성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인터넷과 벤처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e삼성은 1년 만에 1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을 주도한 이 부회장은 책임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빠른 결단을 내렸다. e삼성이 설립된 지 1년여 만인 2001년 7월, 제일기획과 삼성SDI 등 8개 계열사가 이 부회장이 보유한 e삼성 지분을 넘겨 받는 방식으로 관련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
이후 e삼성의 실패는 이 부회장의 ‘흑역사’로 꼽힌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사업 철수 과정에서 삼성은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았다. 빠른 의사 결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실패할 사업에 무리한 시간·자금을 투입하지 않아 ‘콩코드 효과’에 빠지지 않았던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e삼성의 실패로 이 부회장의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빠른 사업 철수로 그룹을 흔드는 위험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과거의 작은 실패가 현재의 삼성을 이끄는 리더십을 이끄는 기반이라고 판단한다면 약이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과감한 구광모의 결정이 이끈 LG 호실적
LG전자는 1995년 ‘화통(話通)’이란 브랜드의 휴대전화를 출시하며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에는 피처폰인 싸이언 라인업을 출시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늦어 삼성과 애플에 밀려 2010년부터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은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 3GS에 대항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갤럭시A를 팔다가 3개월 후 아이폰4가 출시되자 신제품 갤럭시S를 출시했던 역동적인 해였다. LG 역시 스마트폰 라인업 ‘옵티머스’로 반격에 나섰지만 늦은 준비와 시장 진입으로 고배를 마셨다. 결국 2010년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90% 하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까지 받았다.
시장에선 이 시기에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하고 가전 사업에 더욱 투자했어야 한다고 본다. 깨진 독에 물 붓기처럼 향후 10년간 LG는 스마트폰 사업에 목을 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5년 2분기부터 2020년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누적 적자만 5조원에 달했다. 실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에도 무리한 시간·투자가 소요된 전형적인 콩코드 효과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은 것은 구광모 LG 회장이다. 그는 2018년 회장에 취임한 후 3년 후인 2021년 휴대전화 사업을 철수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2018년 취임 당시 기업의 근본적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적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강한 뜻을 밝힌 바 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이 시작했던 휴대전화 사업을 아들 구광모 회장이 26년 만에 접은 것이다.
일각에선 이 타이밍에 철수한 것이 빠른 결단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에 좀 더 매달렸다면 주력 사업인 가전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아픈 손가락’인 스마트폰을 떼낸 후 LG전자는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관련 사업을 청산한 직후인 지난해 2분기에 영업이익 1조1128억원을 올렸다.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긴 것은 2009년(1조2438억원)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 철수는 열악한 사업 경쟁력과 미흡한 수익 구조 등을 감안하면 늦었지만 올바른 선택”이라며 “적자 사업을 정리하면서 전사적으로 수익 구조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돋보기] 콩코드 효과
콩코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로 1976년 상업 비행을 시작했다. 당시 콩코드는 미국의 보잉 여객기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하지만 많은 연료 소모와 비싼 요금, 이착륙 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 등으로 사업 전망이 밝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사업 실패를 예감했지만 장기간 투자한 비용과 시간이 아까워 돈을 계속 쏟아부었다. 총 190억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됐지만 결국 콩코드는 2003년 운항이 중단됐다. 콩코드 효과는 콩코드 여객기에서 탄생한 경제 용어다. 돈이나 노력, 시간 등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손실이나 실패로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부적절한 경제적 행동을 의미한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