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한 심리학자는 낙천적인 사람과 낙관적인 사람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애초에 스트레스를 잘 느끼지 못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이를 잘 해소하는 사람이다.”
낙관을 끄집어낸 것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나라가 잘될 거야”란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실제 한국 사회는 양극화, 일자리 및 인구 감소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끊임없이 발전했습니다.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도 이런 경제 성장의 토대 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회의와 절망 속에서도 한국 사회는 낙관이 지배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성장을 가능케 한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중 ‘사람과 시대의 만남’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외에 있던 뛰어난 인재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산업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가발과 다람쥐가 수출 품목 최상위에 있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정규 교육을 받은 인재들은 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관료가 되고 관변 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가 주도 성장’이라는 모델을 만드는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계획 경제를 무기로 한국은 중화학·전자·자동차 산업을 하나하나 일궈 냈습니다. 고도 성장기라고 부르는 1970년대와 1980년대입니다.
인재들이 갈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기업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산업의 판을 흔들 학번이 등장합니다. 1986년 대학에 입학한 86학번. 그중 일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바꿔 놓을 세상을 미리 봤습니다. 줄줄이 벤처를 창업했고 2000년대 초 버블 붕괴를 이겨 냈습니다. 생존한 자에게 돌아간 선물은 광활한 시장이었습니다. 지배자가 됐습니다. 네이버의 이해진, 다음의 이재웅, 카카오의 김범수, 얼마 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넥슨의 김정주 창업자 등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이들 86학번들의 퇴장을 다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고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으로 부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국민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해준 기여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하지만 86학번의 퇴장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들이 이끄는 기업은 골목 상권 침해, 스톡옵션의 과도한 행사 등 각종 논란을 일으켰고 정치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최근 논란에 대해 “공대생들의 생각은 복잡하지 않다. 좋은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이롭게 하는데 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기업 규모는 사회와 대화해야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업만을 생각한다는 얘기였습니다.
86학번 스타 창업자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노하우와 자금을 지원하며 창업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대는 물거품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낙관의 얘기로 돌아갈까 합니다. 1990년 한국에서 공대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의대의 시대가 왔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에 몰려든 지 30년이 돼 가는 듯합니다. 창업에 나서는 의대생과 의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바이오산업의 미래가 밝은 이유이고 실제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성장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 성공하려면 대학을 잘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문화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K-팝·웹툰·드라마·게임·영화 등 영역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인재들이 공간이 열리자 자신의 끼를 발산한 결과입니다. 이런 경쟁력은 당분간 꺾이기 힘들 것이라는 게 낙관의 또 다른 근거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무겁습니다. 과거 고시와 제조업, 정보기술(IT) 산업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역동성을 상실했습니다. 몇 년 전 래퍼들의 성공 스토리를 본 한 경제 관료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과거 고시에서 쇼미더 머니로 바뀌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계층 이동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산업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닫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낙천적인 사람과 낙관적인 사람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애초에 스트레스를 잘 느끼지 못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이를 잘 해소하는 사람이다.”
낙관을 끄집어낸 것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나라가 잘될 거야”란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실제 한국 사회는 양극화, 일자리 및 인구 감소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끊임없이 발전했습니다.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도 이런 경제 성장의 토대 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회의와 절망 속에서도 한국 사회는 낙관이 지배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성장을 가능케 한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중 ‘사람과 시대의 만남’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외에 있던 뛰어난 인재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산업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가발과 다람쥐가 수출 품목 최상위에 있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정규 교육을 받은 인재들은 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관료가 되고 관변 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가 주도 성장’이라는 모델을 만드는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계획 경제를 무기로 한국은 중화학·전자·자동차 산업을 하나하나 일궈 냈습니다. 고도 성장기라고 부르는 1970년대와 1980년대입니다.
인재들이 갈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기업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산업의 판을 흔들 학번이 등장합니다. 1986년 대학에 입학한 86학번. 그중 일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바꿔 놓을 세상을 미리 봤습니다. 줄줄이 벤처를 창업했고 2000년대 초 버블 붕괴를 이겨 냈습니다. 생존한 자에게 돌아간 선물은 광활한 시장이었습니다. 지배자가 됐습니다. 네이버의 이해진, 다음의 이재웅, 카카오의 김범수, 얼마 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넥슨의 김정주 창업자 등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이들 86학번들의 퇴장을 다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고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으로 부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국민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해준 기여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하지만 86학번의 퇴장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들이 이끄는 기업은 골목 상권 침해, 스톡옵션의 과도한 행사 등 각종 논란을 일으켰고 정치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최근 논란에 대해 “공대생들의 생각은 복잡하지 않다. 좋은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이롭게 하는데 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기업 규모는 사회와 대화해야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업만을 생각한다는 얘기였습니다.
86학번 스타 창업자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노하우와 자금을 지원하며 창업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대는 물거품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낙관의 얘기로 돌아갈까 합니다. 1990년 한국에서 공대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의대의 시대가 왔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에 몰려든 지 30년이 돼 가는 듯합니다. 창업에 나서는 의대생과 의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바이오산업의 미래가 밝은 이유이고 실제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성장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 성공하려면 대학을 잘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문화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K-팝·웹툰·드라마·게임·영화 등 영역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인재들이 공간이 열리자 자신의 끼를 발산한 결과입니다. 이런 경쟁력은 당분간 꺾이기 힘들 것이라는 게 낙관의 또 다른 근거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무겁습니다. 과거 고시와 제조업, 정보기술(IT) 산업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역동성을 상실했습니다. 몇 년 전 래퍼들의 성공 스토리를 본 한 경제 관료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과거 고시에서 쇼미더 머니로 바뀌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계층 이동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산업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