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훼손하는 뜨내기 후보들[홍영식의 정치판]

“‘586’ 기득권 내려놓자”며 총선 불출마 선언 송영길, 지역 연고 없는 서울시장 출마 논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3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지난 1월 “586 기득권을 내려놓자”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송 전 대표는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당내 논란이 크다. 연합뉴스


지방자치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그 지역을 잘 알고 지역 발전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렇지 않다. 지역 연고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거나 지난 대선에서 쓴맛을 본 후보들이 정치적 재기 디딤돌 쯤으로 여기고 있다. 지방 선거가 낙선자 이벤트냐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지역 비전을 위해 경쟁해야 마땅한데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선 후보 공천을 놓고 친문(친문재인)-친명(친이재명) 계파 싸움과 ‘명심(이재명 마음)’ 논란이 일고 있고 국민의힘에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핵심 측근)’ 시비로 시끄럽다. 중앙 정치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 끼어드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과 경기지사가 그렇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를 꼽을 수 있다. 송 전 대표는 1월 15일 대표 시절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선배가 된 우리는 이제 다시 광야로 나설 때”라며 “자기 지역구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젊은 정치인들이 도전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동일 지역구 국회의원 연속 3선 초과 금지 조항의 제도화 추진도 약속했다. “고인물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물이 계속 흘러들어오는 정치, 늘 혁신하고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도록 굳건한 토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요컨대 ‘586 기득권 내려놓기’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당시 약세를 보이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불출마 선언 자체는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586 용퇴론에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이 때문에 총선 불출마 선언은 용퇴론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됐다. 송 전 대표는 “운동권 동우회 기득권을 타파하자”며 다른 586들의 용퇴 압박까지 했다.

“누구에게 용퇴 강요한 바 없다” 말 뒤집어

그랬던 그는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뒤 “누구에게 용퇴를 강요한 바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또 “세대는 이미 희석됐다”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학생운동을 했던 586세대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 내정자도 학생운동을 했던 586세대다. 사람마다 정당마다 차이가 있다”고 항변했다. 결국 ‘나만 빼고 용퇴’를 주장한 꼴이 됐다. “대선 때 이기기 위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불출마 선언을 정략 차원에서 나왔고 그의 ‘더 큰 욕심’을 위한 디딤돌로 삼은 것을 인정한 셈이다.

더욱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한 달도 안 된 마당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는 서울과 정치적 인연이 전혀 없다. 그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대학(연세대 경영학)에 들어오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의 정치적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 계양에서 국회의원 5선을 했고 인천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공직선거법상 60일 이상 해당 지자체에 거주해야 출마할 수 있다는 공직선거법 규정 때문에 지난 4월 1일 부랴부랴 서울 송파구로 주소를 옮겼다. 그는 페이스북에 “당과 지지자들의 선택 폭을 넓혀드리기 위해 주소를 서울 송파구로 옮겼다. 누가 서울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당과 당원과 지지자들이 판단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지난 4월 8일 중앙당 광역단체장 후보자 공모에 등록했다.

그의 출마는 계파 힘겨루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출마 배경엔 친명계의 권유가 있었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성호·김남국 의원은 대선 패배 후 경북 영천의 한 사찰에 머무르던 송 전 대표를 찾아가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당후사(先黨後私)’로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 광역단체장을 친명계가 차지해야 이 고문의 대선 재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이 고문은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서울 최대 현안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 이재명 상임고문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살리면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경험이 있는 후보는 송 전 대표뿐”이라고 쓴 글에 ‘좋아요’를 눌러 여러 해석을 낳은 바 있다.

이런 송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당내 반발이 거세다. 같은 586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은 “하산 신호를 내린 기수가 갑자기 나 홀로 등산을 선언하는 데서 생기는 당과 국민의 혼선을 정리해 줄 의무가 있다”고 정면 비판했고 송 전 대표의 오랜 친구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바깥에 있는 참신한 분이 그 당의 유력한 당 대표가 딱 앉아서 경선하자고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오느냐”며 “송 전 대표의 출마 선언이 여러 카드를 무산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도종환·홍영표 의원 등 친문계의 ‘민주주의 4.0’ 소속 의원 13명도 송 전 대표의 출마를 공개 비판했다. 중앙 정치의 산물이 지방자치제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후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는 어린 시절 경기도와 인연은 있다. 초등학교 때 사업을 하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자랐다. 이후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시)로 강제 이주 당해 천막 속에서 생활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지난 3월 31일 성남시 단대동에서 출마 선언을 하며 경기도와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중·고교와 대학 모두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공직 생활도 주로 기획재정부 등 중앙 부처에서 하는 등 경기도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유승민 후보도 인연 하나도 없는 경기도 출마

유승민 경기도지사 국민의힘 후보도 이른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후보다. 그의 성장 배경이나 경력 어느 하나 경기도와의 인연을 찾을 수 없다. 고교 때까지 대구에서 보냈고 대학 시절부터 서울에서 줄곧 생활했으며 국회의원 4선 모두 대구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인연이 없는 경기지사 출마에 대해 “히딩크 전 국가대표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축구 월드컵 4강을 만든 게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곧바로 경기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5년 뒤 대선의 징검다리로 삼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많다.

충북지사 선거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김영환 국민의힘 후보는 충북 괴산이 고향이나 정치적 기반은 줄곧 수도권이었다. 그는 경기도 출마 선언을 했다가 충북으로 바꿨다. 이 때문에 현지에선 이들의 출마를 반대하는 화한 수십 개가 도청 담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고향을 등졌다가 이제 와서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충북을 찾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청와대 참모진에게는 다주택 문제를 해소하라고 권고해 놓고 정작 자신은 ‘똘똘한 한 채’로 평가받는 서울 반포 아파트 대신 지역구였던 충북 청주의 아파트를 매각해 비판을 받은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충북지사에 출마하려는데 대해서도 당내 시선이 곱지 않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송 전 대표와 노 전 실장을 겨냥, “민주당을 다시 패배의 늪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국민의힘에서 김태흠 의원의 충남지사 출마, 김은혜 의원의 경기지사 출마를 두고 윤석열 당선인의 의중에 따른 이른바 ‘윤핵관’ 논란을 낳고 있는 것도 지자제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영식 대기자 및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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