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보다 ‘경제 우선’ 내세운 윤석열 정부 과제는[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

경고등 켜진 ‘스태그플레이션’…국가 채무·개방화 위기·자본 공동화·중진국 함정 넘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초 서울 종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가 다음달 출범한다. 출범 초부터 남북 관계 개선에 최우선 순위를 둔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경제 우선 원칙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출범 전부터 한국 경제와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위기론을 어떻게 극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기와 관련된 기존의 한국 경제 위기론은 경착륙과 디플레이션 등이 주로 거론돼 왔다. 경착륙은 경기 순환상 성장률이 빠르게 떨어져 경제 주체들이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성장률 자체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하는 현상이다. 모두 인플레이션과는 무관한 위기론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최대 현안으로 등장함에 따라 경기와 관련된 위기론도 변하고 있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플레이션과 성장률 둔화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슬로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또 성장률과 실업률 간 오쿤 계수가 떨어지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간 필립스 관계가 우상향으로 전환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까지 나온다.

부채와 관련해 가계 부문은 항상 거론돼 왔지만 최근 국가 부문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국채 위기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37%였던 국가 채무 비율은 불과 4년 만에 51%로 급증했다. 2026년에는 70%에 달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는 추세에 맞춰 한국 정부도 대외 부문의 빗장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개방화 위기론이 제기됐다. 당시 경제 발전 단계에 비해 개방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다. 1990년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이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개방화 위기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정반대 상황으로 바뀌었다. 갈라파고스 함정은 중남미 에콰도르령인 갈라파고스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에 빗대 세계 흐름과 격리되는 폐쇄형 위기를 말한다.

정부의 빠른 개방화와 달리 민간 차원에서는 기업이 조금만 해외로 나가도 산업 공동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다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해외로 떠난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펴면서 이 우려는 줄어들었다. 리쇼어링 정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강화되는 추세다.


한때 ‘동방의 등불’이었던 한국

산업 공동화는 주춤해졌지만 그 대신 자본 공동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2017년 14억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 주식 투자액은 지난해 218억 달러로 급증했다. 한국처럼 외환 위기 경험국의 자본 공동화는 국부 유출로 인식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대외 경제 위상과 관련해 고질적인 문제로 인식됐던 중진국 함정(MIT) 우려도 나온다. 2006년 세계은행이 처음 사용한 MIT는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처럼 신흥국이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선진국 문턱에서 어느 순간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다가 신흥국으로 재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한국은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를 제외하면 선진국에 속한다.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선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함정이 우려되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정치와 행정 규제, 국가 부채, 글로벌, 젠더 등 5개 분야의 후진성 때문이다. 한국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 경제는 한때 ‘동방의 등불’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 받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5대 위기론이 거론될 만큼 추락했다. 국가 살림을 최근 5년 동안 사상 최대 규모로 풀었지만 시장 경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콘택트 추세가 급진전되면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지구촌 사회에서 세계를 주도하지 못하는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세계 흐름에 동참하는 길뿐이다. 한국처럼 수출로 압축 성장한 국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선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사례가 많았다. 다른 국가들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했다. 거시 경제 목표로 정부가 크게 개입하는 소득 주도 성장을 제시했고 비우호적 기업 정책도 펼쳤다.


세계 흐름과 동떨어졌던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국가 경제를 어렵게 했다. 여당과 각 경제 부처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조차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금리를 올렸다. 결과적으로 모든 정책이 경기를 어렵게 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점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채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높아질 정도로 재정을 많이 지출했지만 성장 기여도는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의 경제 활동에 부담이 될 정도로 많이 걷어 재정 수입이 늘었지만 공무원 대거 채용 등으로 재정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과거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국정 운영의 목표와 틀을 다시 짜야만 한다. 시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 내내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남북 문제에 쏠려 있는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경제로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선회가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경제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어젠다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인 혁신 성장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이어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소득 주도 성장 실천 과제는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서 미국과 중국처럼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국가의 기본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 기업 정책부터 세계 추세에 맞춰야 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는 현재 여건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출범 전부터 경제 우선 원칙을 내건 새 정부의 성공 여부는 5대 위기론을 이겨낼지 여부다. 한국 경제가 새 정부에서 부활하지 않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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