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굴러다니는 거대한 ‘보조 배터리’

[테크트렌드]
완성차와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 전부 아냐…충전 가능한 주차장 등 새로운 사업 분야 ‘주목’

사진=연합뉴스

독보적으로 탁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독보적으로 정보를 많이 안다는 뜻이다. 유능한 5성급 호텔 지배인은 호텔 앞에 택시가 도착하면 재빨리 미터기 요금부터 본다. 요금을 보면 대략 공항에서 온 것인지, 시내에서 온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짐이 많을지, 체크인 절차가 필요한지, 가벼운 미팅이나 식사 때문에 온 것인지, 고객이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미리 예측하고 이에 맞게 대응한다. 독보적으로 탁월하게 비즈니스를 하려면 이렇게 연결된 주변의 상황 정보를 잘 캐치해야 한다.

미국, 2030년까지 신차 판매 50%를 전기차로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발표했다. 미국의 연간 신차 판매가 보통 1700만 대이고 2020년 전기차 판매는 30만 대였다. 이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전기차 판매를 대폭 늘려야 한다.

더구나 미국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픽업트럭 같은 대형 차의 수요가 많다. 대형 차는 한 대당 들어가는 배터리 양도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많다. 테슬라 모델3는 75kWh가 쓰이지만 테슬라 사이버 트럭은 최대 200kWh가 필요할 정도다. 전기차 판매가 느는 데다 대형 차 비율까지 높아 필요한 배터리 양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폭발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기차 시대에는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가 전부일까.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만이 먹거리일까.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는 회사만 성공할까. 전기차 그 자체 말고도 전기차가 몰고 온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미 달아오른 먹거리 싸움을 살펴보자.

전기차는 다른 전자 기기에 전원을 제공해 주는 충전기가 되고 있다.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를 대용량 보조 배터리 개념으로 본다는 뜻이자 110v나 220v 등 일반 전원을 전기차 내·외부로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자 제품용 양방향 전력 공급, 비상 시 외부 전력 공급, 다른 전기차 완속 충전까지 전기차가 다 해낸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전기차는 스마트 충전을 통해 전력 피크 시간대를 미리 계산해 효율성과 수익성까지 챙긴다.

예를 들어 보자. 첫째, 가정용이나 건물용 전력 수요가 몰리거나 비상 전원이 필요한 시점에는 근처 주정차 중인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가 전력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기 가격이 낮은 시점이나 가정용 건물용 에너지가 초과 공급되는 구간에서는 반대로 전기차에 전기를 저장해 놓을 수 있다. 건물은 전기차에서 충전 받은 전기로 주차비를 대신해 줄 수 있고 다른 전기차들에 전기 이용료를 받는 서비스 사업도 할 수 있다.

둘째, 전기차 자체의 충전 시기도 관리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당장 급한 전기차 배터리의 20%는 급속 충전하고 나머지 80%는 전기료가 싸거나 여유분이 있을 때 충전하는 식이다. 오후 시간에는 집에 전기 쓸 일이 많으니 전기차 충전은 한밤중이나 새벽에 해두면 좋다. 당장 1주일 안에 이동 계획이 없다면 전기차 충전의 우선 순위를 뒤로하고 먼저 집에 전기를 공급하면 된다.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시점에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다시 전력망으로 흘려 보낸다. 반대로 전기차의 충전은 전력 수요가 없는, 전기료가 가장 싼 시점에 해둔다. 전기 가격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팔기도, 충전하기도 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이렇게 가정이나 빌딩에 전력을 상호 공급하고 활용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이는 환경 보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는 배터리 성능이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으로 떨어지면 주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성능이 저하된 배터리도 가정용 스토리지에는 적용과 재생이 가능하다. 통상 전기차 배터리 재생을 통해 배터리 수명이 최대 10년 연장된다. 폐전기차의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환경도 보호하고 에너지 유연성도 확보하고 비상 전원도 확보하고 보조 전원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코로나19 그리고 전기차 조합은 차박 열풍도 함께 몰고 왔다. 일부 전기차들은 아예 차박을 위해 최적화된 ‘유틸리티 모드’를 따로 제공해 전기차 그 자체가 차박용 제품들을 전해 주는 ‘충전소’가 된다. 차박할 때는 전기차 구동에 필요한 전원을 차단하는 대신 대용량 배터리로 냉난방과 220V 전기 콘센트를 차가 제공해 준다. 시동을 끈 차에서도 스마트폰, 노트북, 빔 프로젝터, 스피커, 조명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암스테르담의 미래형 전기차 충전소 스트리트플러그를 살펴보자. 60×30×46cm의 사이즈의 지하 매립형 전기차 중전소다. 3.7kw(230v 16A), 7.4kw(230v, 32A), 11kw(400v, 16A), 22kw(400v, 32A) 등 충전 용량이 다양해 여러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기차 충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원격으로 충전을 시작하거나 멈출 수 있고 비용은 자동으로 정산된다.

도시 곳곳에 스트리트플러그가 설치돼 있다면 전기차 사용자들은 충전 걱정 없이 마음껏 도심을 오갈 수 있다. 지하에 충전소가 있으므로 지상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지하 매립형은 눈에 잘 띄지 않아 도심 미관을 해치지도 않는다. 오래된 건물과 유적지가 많아 도심 미관에 민감한 유럽 주택가에도 스트리트플러그 제품이 많이 진출했다. 까다로운 심미안을 가진 집주인이나 시민들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이 방식의 충전소는 고속도로 배송 트럭, 오토 캠핑장 같은 곳에서도 차용할 수 있다. 잠깐의 교대 시간에 신속하게 충전해야 하는 니즈, 안전해야 하는 니즈, 스마트폰과 연동돼야 하는 니즈, 충전소 설치 절차·시간·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니즈를 다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더 확충된다면 주차 슬롯마다 충전 시설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의 주차장은 기존 자동차의 주유소 기능을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충전 기계, 급속 충전, 전기차 관련 서비스 편의 기능이 주차장에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주차장 자체의 수요가 주는 것도 분명하다.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개인이 차를 소유하지 않으므로 개인 주차장이 아니라 버스처럼 특정 장소에 차가 대기하다가 출동한다. 개인 주차 공간, 개별 건물 안팎의 주차장이 불필요해진다. 남는 주차장 부지에서 어떤 사업을 할지가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수요가 줄고 있는 주차장으로선 경사가 너무 가파르거나 동선이 모호한 곳은 사용자들에게 점점 더 외면받게 된다. 주차 부스가 45도로 틀어졌거나 주차하기 쉬운 곳, 주차장의 사용성, 즉 사용자 경험(UX : User Experience) 면에서 전기차 충전이 수월한 것도 사용자가 주차장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조건이 된다. 사회적 기여를 위해 장애인의 접근성도 고려한 전기차 충전, 주차 환경 니즈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마이크로카, 르노 트위지를 보자. 이 전기차는 지붕이 달린 사륜 오토바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차는 한국 교통법상 경차로 구분되고 유럽연합(EU)에서는 정식 자동차가 아닌 사륜차로 구분된다. 경차로 구분된 차는 주차에 엄청난 혜택이 있다.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도 주차 때문에 빙빙 돌 필요가 없이 경차 전용 주차 구역에 바로 주차할 수 있다. 도시가 과밀화되고 공간 면적이 비싸질 때 이렇게 몸집이 가벼운 전기차들을 타깃으로 한 순환이 빠른 작은 주차장, 주차 서비스, 주차 운영 시스템이 새 먹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 인포테인먼트시스템이 탑재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2022년형 EQS의 내부 모습[LG전자]


테슬라, 기술 특허 200건 무료로 공개한 이유

많은 기업이 동일 기술을 사용하게 되면 그 기술의 사용자가 많아지고 개별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가 높아져 사용자들이 더 몰린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OS 전쟁에서 애플 iOS를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든 기업에 무상 제공되므로 애플을 제외한 전 세계 폰 제조 업체가 안드로이드를 채택했다.

구글은 스마트폰 초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사용자 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데 매진했다. 서드파티(3rd party) 안드로이드 앱 개발도 활발해져 다양한 개발자들이 앞 다퉈 안드로이드로 들어왔다. 결국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탄탄하게 확장됐다.

스마트 스피커 이야기도 해보자. 알렉사를 채택한 제품이 많아져야 알렉사의 가치가 증가한다. 알렉사에 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사기 전에 먼저 알렉사와 연동이 가능한지를 따져 보고 제품을 구매한다.

이런 식으로 업계에 널리 퍼진 ‘대세’가 되면 막강한 이득이 주어진다. ‘대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태계를 지배하려면 우선 생태계 몸집 자체를 키워야 한다.

테슬라는 2014년 자사의 전기 모터와 배터리 관련 기술 특허 200여 건을 무료로 공개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누구든 자사의 특허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을 왜 공개했을까. 전기차 출시 시장의 파이를 키워 살아남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타고 싶어도 구매를 꺼리는 이유는 충전소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게 대중화돼야 인프라 시설도 늘고 소비자도 는다. 특허 독점보다 이게 중요하다. 테슬라는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기술을 공개해 전기차의 파이를 키우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기차 생태계를 잡으려고 한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런 움직임을 많이 보인다. 도요타는 전기차에 사용되는 부품과 시스템을 외부 업체에 판매한다. 완성차 제조 업체이면서 동시에 부품 업체가 돼 외부에 모터·배터리 기술을 판매한다. 도요타는 2만 건이 넘는 전기차 특허를 무상으로 제공한다고도 밝혔다.

전기차 개발을 위한 기술 지원도 한다. 전기차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들에 도요타의 기술력을 폭넓게 전파하고 자연스럽게 시장을 주도하려는 의도다. 도요타의 이런 전략에 따라 더 많은 회사가 전기차 시장에 참여하면 기간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의 생산량이 늘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 보급이 가속화되면 도요타의 부품 판매와 전기차 판매 둘 다 날개를 달 것이다. 도요타가 노리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런 전략은 생태계를 장악하고 확장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점이 있다. 기술을 편하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 주면 다른 이들은 굳이 힘들게 그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고 더 연구해 고유한 기술을 따라잡고 더 나은 것을 개발할 이유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미래 위협이 될 경쟁자의 싹을 미리 잘라버린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들은 이 전략을 쓰기도 한다.

정순인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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