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27명 줄퇴사·신의직장도 탈출러시 2030 이직의 시대

직장인 10명 중 8명 “이직 생각 있다”…연봉·기업 경쟁력 양극화 우려



#A홈쇼핑에서는 올해 ‘엑소더스’급 퇴사가 발생했다. 4개월도 안 돼 27명이 퇴사했다. 대부분이 사원에서 대리급이었다. 퇴사 이유는 이직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이커머스업계와 정보기술(IT)업계로 자리를 옮겼다. A홈쇼핑의 올해 신입 사원의 초봉은 5000만원 수준이다. ‘연봉도 적지 않고 안정적인 대기업을 왜 나갈까.’ 임원들은 의아해했다. A홈쇼핑에서 IT업계로 이직한 20대 직원은 말했다. “회사에 불만은 없었지만 업계에서 대우해 줄 때 옮겨 보자는 마음이 컸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국은행에서도 매년 탈출 러시가 이어진다.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한국은행을 중도 퇴직한 직원은 311명이다. 매년 30여 명이 한국은행을 떠난 셈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311명 중 135명이 20대와 30대였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민간 금융 기업 대비 낮은 연봉에 회의감을 느낀 젊은 직원들이 짐을 쌌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재 쟁탈전이 전 산업계로 번지면서 이직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한창인 금융업계와 유통업계는 물론 스타트업과 제조업계도 인재 쟁탈전에 뛰어든 결과다.

개발자 위주였던 연봉 인상 경쟁이 전 직군으로 확대된 것도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 자금이 풍부한 기업들이 높은 연봉을 내세워 인재 채용에 나서자 젊은 직원들은 과감히 이직을 택하고 있다.

IT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5년 차 직장인 A 씨는 지금까지 5번 이직했다. 1년에 한 번꼴로 회사를 옮긴 셈이다. A 씨는 “연봉 3000만원으로 시작했지만 이직을 통해 연봉을 7000만원까지 끌어올렸다”며 “옛날에는 잦은 이직이 ‘사회 부적응자’처럼 비쳐졌지만 지금은 ‘이직도 능력’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직을 알선하는 헤드헌팅 업체들은 ‘높은 회전율’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인 10명 중 8명 “이직할 것”
평생직장이 통하지 않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이직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남녀 직장인 4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5.8%가 ‘현재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44.5%는 ‘당장은 아니지만 좋은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이직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봉이었다. 응답자 중 43.7%가 ‘연봉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앞다퉈 연봉 인상 행렬에 동참하는 이유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발자 초봉 6000만원 시대’라는 기사가 신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 직군에서 역대급 연봉 인상이 이뤄졌다”며 “그동안 개발자 쟁탈전에서 IT 기업에 비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전통 대기업들도 물가 상승을 고려하고 인재를 붙잡기 위해 연봉 인상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은 대기업(금융업 제외)은 지난 1년 사이 두 배로 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등기이사를 제외한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 이상인 기업은 21곳이었다. 매출액 상위 100대 비금융업 상장사 중 사업보고서가 공개된 8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스타트업과 금융업을 포함하면 ‘연봉 1억원 클럽’ 기업은 더 많아진다. 평균 연봉 1억원인 기업은 2019년 8곳, 2020년 10곳에서 지난해 두 배로 늘었다.

한경연은 올해도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대기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봉 인상이 대기업과 두둑한 투자금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위주로 이뤄지자 노동자들은 높은 연봉을 위해 회사를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발자가 전통 대기업 탈출하는 이유
인재 확보전과 연봉 인상의 불을 지핀 IT업계의 상황은 더 치열하다. 연봉을 높여도 IT 인력의 구인난은 여전하다. 사람인이 기업 38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2%가 IT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잠재적인 이직 수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자를 빨아들이는 IT 대기업들의 연봉은 올해 더 파격적으로 올랐다. 카카오는 올해 임직원 연봉 총액을 15% 인상할 방침이고 네이버 노사 역시 평균 10% 인상에 합의했다. 게임업계 역시 지난해 연봉 인상 체계를 파격적으로 개편했고 가상화폐 거래소 등 신흥 연봉 강자들도 등장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임원을 제외한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6000만원이다. 이들은 빠른 성장 속도만큼 많은 인력 채용으로 이직 시장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대기업 시스템 통합(SI) 계열사에서 가상화폐 거래소로 이직한 개발자 B 씨는 “개발자들은 전통 대기업보다 성과와 보상이 확실한 플랫폼 기업을 더 선호한다”며 “대기업에서는 개발자 개인의 역량을 펼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B 씨처럼 연봉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기 발전 욕구 역시 이직의 이유가 되고 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20대 직장인들은 ‘일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해 이직하고 싶다’는 의견이 28.6%로 ‘연봉 불만족’ 다음으로 높았다. 30대는 ‘현재 회사는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와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아서 이직을 계획한다’는 의견이 이직 사유 2위였다.

개발자들 역시 이직 시 개발 주도성과 자기 발전을 중요시했다. 한경비즈니스가 최근 대기업에서 IT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개발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개발자들은 삼성·SK·LG·롯데 등 전통 대기업을 선호하지 않았다. 대기업이더라도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노후화된 전통 대기업은 기피하는 추세였다.

실력 좋은 개발자들이 대기업으로 가면 SI나 시스템 유지·보수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SI 자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최근 플랫폼 기업으로 이직한 C 씨는 “개발자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원가 절감’”이라며 “원가 절감이 핵심 경영 전략인 전통 대기업에서는 개발자의 인건비도 ‘원가’에 포함된다. 주로 하청 업체를 끼고 일하면서 정규직은 프로젝트 매니저(PM)로서 개발 인력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의 목적이나 기준도 다르다고 말했다. C 씨는 “대기업에 있을 때는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의 목적이 ‘원가 절감’에 있었다면 플랫폼 기업에서는 ‘기술 경쟁력’ 강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전통 대기업도 소프트웨어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개발 역량이 당장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IT 기업과는 상황이 다르다. 주도적으로 개발 과제에 참여하거나 개발 역량을 높일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도 개발자들이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이유다.

전통 대기업에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오래된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대기업은 자바 8(v1.8) 이전 버전을 사용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에서는 자바 8버전 이상을 사용한다. 개발 언어는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 향후 다른 기업으로의 이직도 쉽지 않다. 면접에서도 개발자가 어떤 버전을 활용해 시스템을 운영해 봤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대기업에서 이커머스를 담당하는 개발자 D 씨는 “다른 기업과 협업하고 싶어도 우리와 소프트웨어 버전이 달라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며 “회사에서도 소프트웨어 버전 업그레이드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서버 증축이나 교체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이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패권 전쟁에 나서고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조차 대기업 특유의 ‘현상 유지’와 ‘원가 절감’ 기조를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반면 IT 기업과 스타트업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보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고 사용자 환경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사용자 행동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더 주도적으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다.

대기업에서 IT 회사로 이직한 개발자 E 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많이 써 봤는지, 도전 과제를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대용량 트래픽을 얼마나 많이 경험해 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플랫폼은 기업과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어 기업 문화도 주도적이며 도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1억원vs3828만원' 인재영입 경쟁 양극화 우려
이런 상황에서 성과와 보상을 내걸며 인재를 그러모으는 기업과 인재를 뺏기는 기업 간의 ‘이직 시장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자본을 가진 기업이 인재를 그러모으고 인재를 기반으로 더욱 성장하는 구조다.

연봉 인상이 자금을 보유한 대기업 중심을 이뤄지면서 임금 격차와 인재 양극화 문제 역시 심화될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3828만원이었다. 올해 대기업들이 앞다퉈 연봉 인상률을 높이고 초봉을 올리면서 격차는 더 심해졌다. 연봉을 높인 기업들이 인재를 빨아들이고 인재를 기반으로 다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직 활성화에 따른 연봉 인상 경쟁이 가져올 나비 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인건비 지출 확대에 따른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네이버·카카오·엔씨소프트 등 IT업계는 직원의 이직을 막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고 인센티브를 확대했다. 네이버의 평균 연봉은 2년 새 52.7%, 카카오는 115% 증가하며 두 회사의 인건비 지출 규모는 1조원을 넘기도 했다.

강성호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는 “최근 기업들의 경쟁적인 임금 인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데 생산성을 끌어올릴 인재가 없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곧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부에서 다각도의 공동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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