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닥, 한 가닥이 아쉽다” 4조원 규모 탈모 시장
‘탈모 샴푸-경구약-모발 이식’ 1000만 탈모인의 전투 방식
#. A 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보면서 머리가 벗겨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머리다. A 씨도 언제 탈모가 시작될까 늘 우려했다. 이 우려는 군대 전역 후 현실이 됐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M자 탈모가 시작됐다. 만나는 친구마다 머리숱이 없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미용실에서 볼륨 펌도 해봤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여자를 만날 때도 두려움이 앞섰다. 살은 노력으로 뺄 수 있지만 유전적 탈모는 답이 없다. A 씨는 급기야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 B 씨는 머리숱이 너무 많은 것이 고민이다. 머리숱이 많아 옆머리가 붕 뜨는 것이 걱정이어서 수시로 다운 펌을 해야 했다. 아침마다 고데기로 정리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정리해야만 했다. 굵은 머리카락과 강력한 모근으로 할 수 있는 머리 스타일도 많지 않다. 주위 친구 중 몇몇은 탈모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하지만 B 씨는 오히려 그들이 부럽다.
A 씨와 B 씨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A 씨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탈모로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큰 고민인 반면 B 씨는 너무나 풍성한 머리숱에 외출 준비 시간이 길어 걱정이 많다.
이들을 두고 인터넷에서 자조적인 신조어가 등장했다. A 씨의 경우는 ‘민두노총’이다.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말로 미용업계에서 쓰는 대머리 마네킹 ‘민두’에 노총을 합했다. 사람 얼굴의 측면을 상징화한 민주노총 로고에 머리가 벗겨진 사람을 합성한 로고도 등장했다.
대머리는 한 국가의 권력자에게도 놀림거리였다. 로마의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젊은 나이에 탈모가 시작돼 병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도 탁발승 시절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황제가 된 후 빛 광(光)의 사용을 금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표적인 탈모인이다.
머리숱이 많은 B 씨와 같은 이들을 빗댄 단어는 ‘수북청년단’이다. 이들도 B 씨처럼 나름대로 고충은 있지만 민두노총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는 외모 전성시대다. 과거 개인의 능력과 실력이 평가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외모도 사회생활에서의 핵심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만의 이슈가 아니다. ‘그루밍족’이란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남성 역시 외모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핵심은 모발이다. 머리숱의 풍성함이나 관리 여부가 사람의 평가 기준이 됐다. 대머리라는 이유로 채용이 거부된 사례도 있다. 현재도 민두노총은 언제 빠질지 모르는 머리카락에 대한 고민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유전·스트레스 탈모인 1000만 시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적 탈모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탈모로 고통 받는 셈이다. 관련 시장은 4조원 규모다.
탈모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나타난다. 노화나 유전 등 선천적 요인과 각종 환경 오염, 업무 스트레스, 식생활 변화에 따른 호르몬 분비 이상 등 후천적 요인 등이다.
그중 취업 및 업무 스트레스로 탈모를 호소하는 MZ세대가 크게 늘고 있다. 탈모 환자의 절반 정도가 MZ세대라는 조사도 있다. 이들은 매일 빠지는 머리카락을 하루라도 더 길게 붙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탈모 치료는 증상에 따라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탈모 샴푸 등을 통한 미용 관리 △경구약 △이식 시술 등이다.
탈모 인구의 증가로 관련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특히 탈모 샴푸와 관리 제품, 기기 등의 시장이 커졌다. 탈모는 생리적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이다.
모발은 ‘생장기(3년)-퇴행기(3주일)-휴지기(3개월)’의 성장 주기를 가진다. 휴지기에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탈락되는 자연 탈모 외에 발열성 질병과 임신,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생장기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휴지기에 많이 빠지는 비정상적 현상이 탈모로 구분된다.
모발 성장은 일반적으로 15~30세 사이에 가장 활발해 40~50세에 점진적으로 퇴보한다. 50세 이상이면 노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탈모가 나타나기 시작해 70세 이후부터는 탈모가 빨라진다. 70세 이후 하루에 보통 50~100가닥이 빠지는 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시기가 더욱 빨라졌다. 20대 중·후반부터 탈모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은 본인에게 탈모가 시작됐다는 것을 부정한다. 일시적으로 빠지는 것에 불과하다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이로 인해 천천히 진행되던 탈모가 급속도로 빨라진다.
이 시기가 되면 주위에서 ‘머리숱이 부족하다’, ‘머리가 가늘다’ 등의 평가가 계속돼 인터넷으로 탈모 관련 정보를 찾기 바빠진다. 가장 간단한 대응 방법인 탈모 샴푸부터 사용한다. 대한모발학회에 따르면 탈모를 경험한 390명 중 259명이 샴푸를 통해 탈모 치료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탈모 샴푸로는 개선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체 탈모의 80~95%를 차지하는 유전성 탈모는 탈모 샴푸로 치료가 어렵다.
유전성 탈모는 남성 호르몬 안드로겐이 디하이드로테스테론으로 변하면서 모낭 세포를 위축시키고 모발 성장 주기를 단축시켜 발생한다. 이 과정을 막아야 탈모가 나타나지 않는데 탈모 샴푸의 대표 성분인 나이아신마이드(비타민3)와 바이오틴(비타민B7)은 디하이드로테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하지 못한다. 탈모 샴푸가 모발 건강에 일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탈모 치료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지루성 두피염 방지에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지루성 피부염의 일종인 지루성 두피염은 피지선의 활동이 증가된 부위에 발생하는 피부염이다. 높은 온도에 장기간 노출되면 피지 분기가 많아져 유분기가 증가하고 땀이 나 두피 노폐물과 땀이 섞이면서 염증이 발생해 머리카락이 빠지게 하기도 한다.
탈모 샴푸의 성분인 살리실릭애시드와 징크피치리온은 각각 향균과 곰팡이 성장 억제 효과가 있어 지루성 두피염 완화에 효과는 있지만 탈모 방지는 힘들다.
탈모 막으려면 피부과부터 찾아라
“탈모가 의심되면 우선 병원부터 찾아라.” 탈모인들에게 격언처럼 내려오는 말이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있음에도 피부과에 빨리 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비뇨기과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피부과에 빨리 가지 않는다. 본인이 탈모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임이석 임이석테마피부과 원장은 “매일 100개 이상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거나 모발이 가늘어지고 힘없이 주저앉는다면 탈모 증상이 의심되는 것”이라며 “지체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힘들게 피부과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의사에게 이 말부터 듣는다. “너무 늦게 찾아왔어요”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릅니다” 등이다. 또한 경구약을 처방 받는다. 가장 유명한 약은 △프로페시아 △아보다트 △미녹시딜 등이다.
탈모 환자에게 처방되는 전문 약은 피나스테리드 성분약이 많다. 프로페시아는 미국 제약사 MSD가, 아보다트는 영국 제약사 GSK가 제조한다. 한국의 탈모약 시장은 1300억원 규모인데 피나스테리드 성분 의약품이 1000억원에 달한다. 먹는 치료제가 아닌 바르는 외용제 미녹시딜은 100억원 규모다.
하지만 탈모 치료제의 부작용을 우려해 약 복용을 꺼리는 이들이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부작용은 성욕 감퇴와 발기 부전 등의 성 기능 장애다. 탈모는 남성 호르몬 과다로 나타난다. 탈모 치료제는 남성 호르몬인 디히드로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해 탈모를 치료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 호르몬이 억제돼 우려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모 치료제 복용에 따른 성 기능 감퇴 부작용은 1~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부작용이 모든 환자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와전돼 많은 이들이 치료제 복용을 기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는 한 번 시작되면 이전으로 회복되기 힘든 만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특히 탈모약은 전체 탈모 치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 기능 감퇴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부작용이 있더라도 첫 한 달 안에 나타난다. 한 달만 복용해 보면 부작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탈모약은 아보다트 기준 평균 1정당 1000원꼴로 6개월이면 18만원이다. 하지만 약국마다 조금씩 가격이 다르다. 처방전을 받는 피부과의 진료비는 비슷하지만 약값에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탈모인들에게 성지로 꼽히는 곳은 서울 종로 보령약국이다. 6개월치를 약 14만원에 살 수 있다. 1정에 777원 꼴이다. 탈모약은 혈압약처럼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만큼 보령약국 앞에는 오늘도 많은 탈모 환자가 줄을 서 있다. 지방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최후의 보루’ 모발 이식, 단 2번뿐인 선택
탈모 샴푸와 경구약 등은 탈모 치료보다 억제 및 예방이 목적이다. 탈모인들이 꿈꾸는 ‘풍성충’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모발 이식 시술을 받아야 한다. 탈모 치료의 마지막 단계이자 최후의 보루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모발 이식은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병행하던 작은 분야였다. 시술 결과나 중간 경과에 대한 케어도 부족했다. 탈모를 치료하기 위해 시술 받은 환자들의 니즈와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탈모 환자가 급증하면서 전문 모발 이식 병원이 많이 생겼다. 서울 압구정동에는 수십 곳의 모발 이식 전문 병원이 있다. 이제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모발 이식을 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발 이식은 탈모 안전 부위의 모발을 탈모 진행 부위에 옮겨 심는 시술이다. 쉽게 말해 ‘모내기’와 같다. 상대적으로 머리숱이 많은 뒤통수에서 모낭을 채취해 이마에 심는다. 크게 후두부 절개 여부에 따라 절개와 비절개 시술로 나뉜다.
3000모 이식이 일반적이다. 가격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절개가 비절개보다 100만~200만원 정도 저렴하다. 절개 시술은 필요한 모낭 만큼의 후두부 두피 면적을 떼어내 앞부분에 심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로 10cm, 세로 1cm 정도를 떼어낸 후 봉합한다. 뒤통수에 실선 흉터가 남고 통증이 상당하다.
절개를 선택한 이들에 따르면 시술 당일 밤에는 잠을 잘 수 없다. 절개한 뒤통수에는 봉합을 위한 실밥이 있고 앞부분은 이식한 모발이 있어 제대로 누울 수 없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앉아서 잠을 청해야만 한다. 다만 경제적 부담이 적고 대량 이식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비절개 시술은 뒤통수 모발 사이에서 필요한 모낭을 하나씩 채취해 앞부분에 옮겨 심는다. 절개 흉터가 남지 않고 적은 통증과 빠른 회복이 장점이다. 하지만 모낭을 채취하기 위해 뒤통수 아랫부분의 머리를 싹 깎아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곧바로 직장 등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이다.
두 시술 모두 모발 이식을 한 후 이식모가 한 차례 빠진 후 다시 자란다. 이식 효과는 3~6개월 후 나타난다. 시술 후에도 지속적으로 탈모 치료제를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시술 받은 이들의 대부분이 결과에 만족한다.
이름난 병원은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하다. 1년 안에 만족할 만한 시술 결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또 빠진다면 재시술해 준다. 다만 모발 이식은 평생 2회라는 시술 횟수에 제한이 있는 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박재준 모제림성형외과 원장은 “탈모가 있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장애가 있거나 불편하지는 않다”며 “하지만 탈모 치료 시기를 놓친 젊은 환자들 중에선 우울감을 겪거나 심할 경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탈모가 의심될 때는 빨리 병원을 찾아가 상담해야 한다”며 “외면적 질환이 마음의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문가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아 초기에 빠르게 판단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탈모에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병원이 두렵다면…비대면 탈모 진료·약배송 서비스 활용
병원 방문을 두려워하는 탈모인을 위한 신개념 서비스가 등장했다. 비대면으로 탈모 진료와 약을 배송 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출시돼 보다 쉽고 편리하게 탈모에 대응할 방법이 생겼다.
‘모두약’은 탈모 전용 비대면 진료·약배송 서비스 앱이다. 실시간 영상 진료와 고정된 비용에 쉽고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제휴 약국을 통해 탈모 치료제의 가격을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실제로 서비스를 활용해 보니 상담 후 하루 후 치료제를 택배로 받을 수 있었다. 진료는 회원 가입 시 작성한 요청 정보를 토대로 진행된다. 전문의사와 영상·음성 전화로 비대면 진료가 진행된다. 상담으로 발급된 처방전으로 모두약과 제휴된 약국에서 약이 제조돼 택배로 배송 받으면 끝이다.
기본 진료비는 1만원이다. 지역 피부과에서 진료 받는 가격보다 저렴한 편이다. 또 지역 병원에서는 통상 6개월 정도의 처방전을 주는데 반해 모두약은 최대 1년까지 가능하다. 매번 피부과를 찾아가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탈모 치료제를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해결된다.
[돋보기2] 4조원 탈모 시장의 주요 상장사는 어디
탈모 시장이 매년 커지면서 주식 시장에 상장된 관련 기업도 많다. 이들 기업은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건강보험으로 탈모약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주가가 급등하며 한때 시장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탈모 관련 대표 상장사는 현대약품·메타랩스·TS트릴리온·JW신약 등이다.
현대약품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이다. 4월 20일 기준 시가 총액은 1699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순위 681위다. 미녹시딜 성분으로 한국 임상 시험을 마친 탈모 치료제 ‘마이녹실’을 판매 중이다. 일반 의약품으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외용제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70~80%에 달한다.
메타랩스도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이다. 당초 메타랩스는 여성 의류 전문 기업이었지만 2019년 한국 1위 모발 이식 관련 병원인 모제림의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탈모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는 TS트릴리온은 한국 탈모 샴푸 시장에서 부동의 1위인 ‘TS샴푸’를 제조·판매한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마케팅으로 관련 제품이 큰 인기를 얻으며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바이오 신약 개발 기업인 JW신약은 2003년 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탈모 치료제인 모나드정과 네오다트정, 바르는 탈모 치료제 로게인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