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급등, ‘제2의 외환 위기론’ 모락모락[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

원화 약세보다 달러 강세가 원인…위기 대비할 때지만 ‘시장 경제 원칙’에 맞게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4월 25일 오후 원·달러 환율이 12499원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60원마저 넘어섰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4월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상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처럼 보인다.

美 출구 전략에 출렁이는 원·달러 환율

원‧달러 환율의 최근 급등은 원화 약세보다 달러 강세에 기인한다. 1년 전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인플레이션 쇼크 이후 달러 인덱스는 14%, 원·달러 환율은 15% 올랐다. 전 세계 통화 중 달러 가치가 유일하게 약세를 보인 통화는 중국 위안화뿐이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펀더멘털) 요인과 마스(정책) 요인으로 결정된다. 지난해 4월 이후의 달러 강세는 머큐리 요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5.7%다. 유럽(5.2%), 한국(4%), 일본(1.6%)보다 높았다. 격차가 줄어들 수 있지만 올해도 이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올해의 달러 강세는 머큐리가 아닌 마스 요인에 의해서다.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금리 인상→양적 긴축’이라는 출구 전략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의 출구 전략 추진 과정을 보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후 양적 긴축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7개월로 단축될 수 있다.

Fed가 성장 훼손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급진적 출구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는 위험 수위를 넘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난 3월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인 8.9%는 목표선인 2%를 4배 이상 웃돈다. 질적으로도 생활 물가 중심으로 올라 미국인이 느끼는 경제 고통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시장에선 총수요 대책인 출구 전략 추진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제롬 파월 Fed 의장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은 최근의 인플레이션이 총공급 요인에 기인한 만큼 출구 전략 추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의 성격을 ‘일시적’이라고 고집할 당시부터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 강세를 허용했다. ‘제2의 루빈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옐런 독트린’이란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옐런 독트린 시대가 전개되면 달러 가치와 원‧달러 환율이 지금 수준보다 한 단계 더 뛸 것으로 관측된다.

루빈 독트린이 전개됐던 1990년대 상황을 되돌아보면 1985년 플라자 협정 체결 후 10년 동안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267엔대에서 79엔대로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 국면에 빠졌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은 일본 경제를 살리는 것이 미국 경제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엔·달러 환율을 달러당 148엔까지 끌어올렸다. 이것이 루빈 독트린이다.

루빈 독트린의 실체를 이해하면 옐런 독트린이 전개될지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다만 루빈 독트린은 ‘강달러·수출 주도국 통화 약세’를 통해 한국·일본 등의 경기를 살리기 위한 공생적 목적이 강하다.

반면 옐런 독트린은 강달러를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성격이 짙어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모든 국가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달러 가치 부양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최후의 버팀목은 경기가 될 공산이 크다. Fed의 계량 모델인 ‘퍼버스’가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0.7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최근 달러 강세에 편승한 옐런 독트린이 전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IMF식 100% 못 미치는 외환 보유액

한국에선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에 제2의 외환 위기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러시아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달러 결제망 배제와 국가 신용 등급 추락,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 탈락, 금융 거래 금지 등 모든 국제 금융 시장으로의 접근도가 막히면서 모라토리엄 선언 직전 상황에 몰렸다.

최고통수권자가 중앙은행까지 장악해 포퓰리즘적 통화 정책을 추진해 왔던 터키의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외국 자본 이탈에도 기준금리를 500bp(1bp=0.01%포인트) 내렸던 후폭풍으로 추가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악순환 고리다.

중국의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계획 참여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려 왔던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 상환 계수로 평가해 보면 이미 외환 위기에 빠져 있다.

이 상황에 한국에서는 적정 외환 보유액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학계를 중심으로 외환 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어느 교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권유대로 외환 보유액이 지금의 두 배 수준인 9000억 달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환 보유액이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 외환 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과거 경험에서 잠재적인 외화 지급 수요를 예상 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과 외환 보유액의 수요 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 보유액 수요 함수에서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 등이다.

하지만 이들 접근 방식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롭게 제시한 개념에 밀려 뒷전이 됐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방식도 IMF의 개념이다.

금융 위기 방지에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계기로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과 기타 투자 잔액의 15% 등을 합한 자금의 100∼150%를 쌓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개념으로 보면 한국은 2020년부터 100% 밑으로 떨어져 외환 보유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외화를 좀 더 쌓아야 하는 시점은 맞다. 하지만 외화를 쌓기 위해 정부 주도의 움직임이 나타나선 안 된다. 자유 시장 경제의 원칙에 맞게 균형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