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폭주·국민의힘 무능이 합작한 ‘검수완박’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2-05-01 12:47:49
수정 2022-05-01 12:47:49
피의자들이 주도하는 ‘셀프면죄법’ 코미디…경찰 과부하로 수사 적체되면 국민만 피해
홍영식의 정치판온 나라를 들쑤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은 건국 이후 70여 년에 걸쳐 형성된 형사 사법 체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것이다. 수사-기소권 분리라는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물론 과잉 수사, 제 식구 감싸기 등 검찰 수사의 고질적 병폐는 고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걸 빌미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검수완박법의 목적지는 다른 곳에 있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만 빼고 모두 반대에 나선 이유다.
검수완박법안에 따르면 검찰에 남은 6대 중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중 부패와 경제만 빼고 4대 범죄는 4개월 뒤 경찰에 넘어간다. 검찰에 남는 2대 범죄와 경찰 이관 4대 범죄도 이르면 내년 말 출범할 중대범죄수사청(가칭)이 모두 맡는다. 당분간 경찰의 과부하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초 1차 수사권-기소권 분리 이후 검찰이 지난 1년간 보완 수사를 요구한 데 대해 경찰의 답이 없는 사건이 3800건이 넘을 정도로 수사 지연이 심각한 마당이다.
“전문 수사 기법 필요한 증권·금융 범죄 활기 띨 것”
여기에 4대 중대 범죄까지 대책 없이 떠넘기면 민생 등에 대한 수사 적체는 더 심화될 게 뻔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당장 수사 지연에 따른 변호사 비용 급증이 우려된다. 경찰의 중대 범죄 수사에 대한 역량도 미덥지 못한 게 현실이다. 고도의 전문 수사 기법이 필요한 증권·금융 범죄가 활기를 띨 것이라는 걱정이 나온다. 경찰의 과잉·부실 수사는 누가 견제하고 중립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위헌 논란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엔 영장 신청 주체를 검사로 규정하고 있는데 검찰 수사권을 전제로 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법안이 통과되면 줄 잇는 위헌 소송으로 인한 혼란이 극심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권력형 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검찰이 수사해 온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과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수사 범위가 넓어 4개월 내에 끝마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로 넘어가면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문재인·이재명 보호’를 외쳐 온 민주당으로선 시간을 벌 수 있다.
공소 시효가 6개월밖에 되지 않고 정치권 외압이 강한 선거사범 수사를 경찰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이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래서 국민 피해는 나몰라라 하고 정치인들에게만 든든한 ‘방패’를 쥐여 준 셈이다.
민주당이 지난해 초부터 시행한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제도가 시행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굳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검수완박을 추진한 배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찰 조직과 수사 관행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검수완박법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론에서 출발한다. 그 뿌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 한 것이 비대한 검찰 권력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다. 논란 끝에 지난해 초 검찰에는 6대 중대 범죄 수사권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경찰로 모두 넘겼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처리를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로 넘어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 검찰 인사에서 윤 당선인 라인의 검사들이 배치되고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앞에서 멈춰 선 대장동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몰아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법 신속 처리를 위해 법사위에 보임했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 인사들이)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 검수완박 안 하면 죽는다’고 말했다”고 한 데서 이들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검수완박법을 누가 주도하는지에 대해선 역시 양향자 의원의 발언이 주목된다. 양 의원은 “지금 상황은 ‘처럼회’가 곧 민주당”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가 ‘처럼회’ 소속 의원들에게 휘둘려 검수완박법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처럼회는 검찰 개혁을 목표로 초선 의원 1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용민·김남국·김승원·민형배·이수진·이탄희·장경태·최강욱·황운하 의원 등이다. 이들이 검수완박법을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원내대표 경선 때 처럼회 의원들의 지원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검수완박법을 심의하는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에 검찰 출신 송기헌 의원을 빼고 최강욱 의원을 넣었다. 법사위에서 역시 검찰 출신의 소병철 의원을 빼고 ‘위장 탈당 꼼수’의 주역인 민형배 의원을 배치했다. 그런 만큼 검수완박법은 민주당 지도부와 처럼회 의원들의 합작품인 셈이다.
김용민 의원은 검찰을 공소만 담당하도록 하는 공소청으로 바꾸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황운하 의원은 6대 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이수진 의원은 특별수사청 설치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들은 많은 논란과 문제점을 낳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청법(공수처법)도 주도한 바 있다.
고소·고발 당한 의원들이 법사위 소속, 이해 상충
어이가 없는 것은 이들 의원 중 상당수가 피의자라는 점이다. 황 의원은 2018년 울산경찰청장 재직 당시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가담자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 의원은 ‘채널A 사건’관련 허위 사실 유포 혐의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확인서를 허위 작성한 혐이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김남국 의원은 기부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 당했고 김용민 의원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바 있다.
더욱이 최강욱·김남국·김용민 의원이 검찰과 법원을 피감 기관으로 하는 법사위에 앉아 있는 것도 문제다. 입법권 사유화, 이해 충돌 논란이 나오고 있다. 이해 상충 논란이 있으면 스스로 제척(除斥)하는 게 마땅한데도 공직 윤리에 어긋나는 기본 상식조차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의 대응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큰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정교한 대책과 전략도 없이 여당에 질질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당내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덜컥 받아들인 것부터 그렇다. 중재안은 검수완박 시기만 늦췄을 뿐 사실상 민주당 주장에 가까운 법이다. 검수완박 자체를 반대해 온 국민의힘이 수용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권을 얻어 냈다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했지만 그 자체도 모호한 데다 설령 그렇더라도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재안 마련 과정에서 지도부 간 조율도 없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여론이 악화하자 재협상을 주장했다. 당초 중재안에 긍정 반응을 보였다가 태도를 바꾼 이준석 대표의 책임도 크다. 윤석열 당선인도 중재안에 별말이 없다가 “취임 이후 헌법 가치 수호 책임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여당 강행 처리의 빌미만 제공한 꼴이다. 곧 여당이 될 정당으로서 자격을 갖췄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