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없는 인스타·‘나쁜 기업’에 투자하는 ETF가 떠오른 이유
입력 2022-05-04 06:00:01
수정 2022-05-04 06:00:01
‘진짜 일상’ 공유하는 비리얼, 미국·유럽에서 인스타그램 대항마로 떠올라
‘자랑이 없는 소셜 미디어’, ‘죄악주만 모아 놓은 ETF’, ‘성장주가 성장하지 않을 때 오르는 펀드’까지…. 여기, 대세를 거스르는 청개구리들이 있다. 이들은 기존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개념을 내세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기존 소셜 미디어는 멋지고 빛나는 인생의 순간을 자랑하는 공간이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지난 몇 년간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각국 투자자들의 돈을 그러모았다. 자율주행·블록체인·메타버스 등 혁신 기술을 내세운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이었다. 하지만 기존 대세를 거스르는 신흥 강자들이 등장하며 이 같은 관념을 뒤집고 있다. 예쁜 사진보다 누워 있는 사진이 더 많은 소셜 미디어 첫째 주자는 인스타그램의 ‘라이벌’로 떠오른 소셜 미디어 ‘비리얼(Be Real)’이다. 비리얼은 꾸며진 ‘가짜 일상’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진짜 일상’을 내세워 이용자를 그러모으고 있다. 게시글은 하루에 한 번만 올릴 수 있고, 필터나 가식은 없다.
비리얼은 사용자에게 하루에 한 번 ‘비리얼 할 시간’이라는 알림을 보낸다. 사용자는 알림이 온 2분 안에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는 순간 전면 카메라와 후면 카메라가 거의 동시에 찍히기 때문에 구도를 꾸미거나 예쁜 표정을 짓기도 어렵다.
비리얼 알림을 받고 앱을 켜는 순간 타이머가 작동하기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급해진다. 인스타그램처럼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전시하기는 불가능하다. 틱톡처럼 특정 필터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찍기 위해 여러 번 연습하며 촬영할 수도 없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전시하지 않으니 인플루언서도 없다.
예쁜 카페와 유명 맛집, 사진 찍기 좋은 여행 명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비리얼 속 대부분의 게시글은 침대에 누워 찍은 천장이나 수업을 듣는 도중 찍은 책상 사진, 걸어가다가 찍은 일상 속 풍경이다. 물론 ‘주어진 2분’을 놓치면 사진을 늦게 게시할 수도 있지만 얼마나 늦게 촬영된 사진인지 모두에게 공유된다. 뭔가를 꾸미려다가 자칫 망신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외신들은 비리얼을 ‘인스타그램의 라이벌’이라고 평가한다. 이용자 수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비해 턱없이 적지만 10대와 20대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비리얼은 미국·영국·프랑스의 모바일 앱 다운로드에서 인스타그램·스냅챗·핀터레스트에 이어 소셜 미디어 순위 4위를 차지했다.
미국 IT 전문지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비리얼은 현재까지 767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다운로드의 65%가 2022년 이뤄졌다. 영국 타임지는 “인스타그램과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 거물 플랫폼이 젊은 세대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비리얼은 온라인상에서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젊은 세대를 해방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0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내부 게시판을 통해 '인스타그램은 10대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들며 강박이나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유출된 연구는 ‘최고의 순간만을 공유하려는 경향, 완벽해 보이려는 압박, 중독성 있는 제품이 10대들을 섭식 장애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감각 그리고 우울증으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리얼은 이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10대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블룸버그는 비리얼이 페이스북의 첫 ‘서식지’였던 대학에 집중하는 전략에 주목했다. 비리얼은 실제로 대학생 홍보 대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입소문을 통해 앱을 홍보하고 있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연구원은 “주류에 싫증 난 사람들이 비주류를 찾으면서 비주류가 다시 트렌드로 떠오르는 경향은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며 “비리얼은 아직까지 이용자 수가 많지 않아 ‘비주류’보다는 ‘재야’에 가깝지만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티 돈나무’·‘안티 ESG’ 증시에 등장
대세를 거스르는 추세는 증시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투자 기관을 중심으로 기업의 ESG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됐다. 기업들은 유행처럼 ‘ESG 경영’을 내걸기 시작했고 금융 투자업계에서도 ESG를 잘 지키는 기업에 주목했다.
하지만 지난해 ‘ESG의 허상’을 꼬집으며 뉴욕 증시에 ‘안티 ESG’를 테마로 삼은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했다. 종목 이름은(티커)은 BAD ETF다. 말 그대로 나쁜 이미지를 가진 죄악주를 추종한다. 도박, 주류, 의료용 대마초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투자 시장에서 외면받아 온 회사들이 BAD 포트폴리오에 담겨 있다.
BAD는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ESG 수준이 높은 기업에 자금이 몰리면서 ESG가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탄생했다.
BAD ETF를 출시한 배드인베스트먼트 토미 맨쿠소 대표는 블룸버그에 “좋은 투자를 결정할 때 사회적 낙인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며 “아직 ESG 상품들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BAD’는 업계에서 소외돼 있지만 일상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착한 기업’이 곧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 27일 기준 BAD ETF는 연초 대비 13.1% 하락했다. ESG 대표 ETF인 뱅가드의 ESGV(-11.3%), 블랙록이 운용하는 ESGU(-14.3%)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서학개미’들에게 ‘돈나무 언니’로 잘 알려진 글로벌 투자자 캐시 우드의 명성에 도전하는 ETF도 등장했다. 이른바 '안티 아크' 펀드다. 안티 아크 펀드는 아크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아크이노베이션 ETF(ARKK) ' 하락에 베팅한다. ARKK가 올해 47% 폭락할 때 ‘안티 아크’를 테마로 한 '터틀 캐피털 쇼트 이노베이션 ETF(SARK)'는 58% 급등했다.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먼트는 한때 높은 수익률을 내며 서학개미들의 장바구니를 차지했다. 아크인베스트가 운용하는 ARKK는 그동안 성장주 투자의 대표 주자로 꼽혀 왔다. ‘파괴적 혁신’을 테마로 미래 성장성이 큰 기업에 투자해 온 이 ETF는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100달러를 웃돌았다.
하지만 올해 기술주가 일제히 폭락하면서 주가가 반 토막 났다. ARKK는 4월 27일 기준 연초 대비 마이너스 4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테슬라·줌비디오·로블록스·코인베이스 등이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다.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종목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캐시우드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반면 ARKK를 역으로 따라가는 SARK ETF는 58% 급등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