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삼성전자는 리즈 시절의 다이내믹스를 되찾을 수 있을까
입력 2022-04-30 06:00:17
수정 2022-08-03 10:03:57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리즈 시절’은 익숙한 단어가 됐습니다. 영국 프로 축구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나온 말입니다. 리즈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린 후 오랜 기간 하위 리그를 전전했습니다. 1990년대에도 잠깐 빛을 봤지만 다시 암흑기를 맞습니다.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국가 경제에도 리즈 시절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한국의 고도 성장기가 그랬습니다. 물론 정치·사회·문화를 빼고 성장률로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연평균 성장률은 10%가 넘었습니다. 이 기간 한국인의 평균 연령은 20대였습니다. 젊은 국가였지요. 1991년은 상징적인 해였습니다. 평균 연령이 20대였던 마지막 해, 한국 경제도 마지막으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1998년 외환 위기의 기저 효과로 11% 성장한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연령은 43세가 조금 넘습니다. 국가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성장률은 올해 2~3%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리즈 시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를 들여다봤습니다. 2010년 삼성전자 직원 중 20대와 30대는 16만8000명, 40대 이상은 2만2000명 정도였습니다. 20대가 55.7%, 40대 이상이 11.6%.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때는 분위기도 젊었습니다.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졌습니다. 슬로건은 ‘창조의 삼성’이었습니다. 관리의 삼성, 전략의 삼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에너지가 넘쳐 났습니다. 사내에서는 다이버시티 매니지먼트, 복장과 근무 시간 자율화 등 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 낼 문화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소니 등에 다니던 현지 인재들이 삼성으로 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삼성이 두렵다는 기사를 써댔습니다. 애플의 유일한 경쟁자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요즘 삼성을 보면 리즈 시절의 빛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 품질과 고객 만족 하면 삼성이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투자 발표를 해도 삼성전자의 미래는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시장은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연일 52주 신저가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습니다. 500만 명의 주주들은 애가 탈 따름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다뤘습니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좋은 실적, 다양한 비전 발표에도 주가가 부진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삼성전자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삼성도 지난 10년간 나이를 먹었습니다. 절반이 넘던 20대의 비율이 2020년 37.2%로 줄었습니다. 반면 10% 조금 넘던 40대 이상은 23%로 늘었습니다. 물론 직원의 평균 연령이 절대적 변수일 수는 없습니다. '젊은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삼성을 보면 연령도 기업의 다이내믹스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전자에서 희미해져 가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신뢰’입니다. 삼성은 좋은 장비, 좋은 부품을 써서 높은 신뢰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갤럭시22 성능 논란은 이런 신뢰에 금이 가게 했습니다. 원가 절감에 집중한 결과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내부적 신뢰의 문제도 있습니다. 블라인드에는 직원들의 불만이 넘쳐납니다. 한 직원은 요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모든 조직원들이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불신이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좋은 재무 구조에도 ‘6만전자’라는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것은 젊음과 신뢰를 상실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기업에는 나이가 없다.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면 다시 젊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면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어쩌면 삼성전자의 다이내믹스를 회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젊음과 신뢰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