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위안화 가치…‘환율 조정’ 차차 손 떼는 중국 [글로벌 현장]

인민은행, 외화 지준율 처음으로 내려…무역 비율 낮추고 외국인 투자 늘면서 ‘금융 선진화’ 추진

[글로벌 현장]

중국 베이징의 인민은행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안화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4% 가까이 올랐다. 환율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면 외국인 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갈 수 있다. 중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환율이 단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올해 월간 위안화 환율은 1월 0.08% 올랐고 2월 0.8% 내렸다. 3월 0.5% 정도 오르더니 4월 4.2%나 뛰었다. 월간 단위로 환율이 이렇게 많이 변동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중국은 환율을 달러당 8.2위안으로 고정하는 고정 환율제를 쓰다가 2005년 시장 원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했다. 이후 위안화 강세(환율 하락)가 상당 기간 이어졌다. 2013년부터 크게 6~7위안 이내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환율이 달러당 6.3위안에서 6.6위안으로 4% 정도 움직이는 것은 큰일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속도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민은행이 기준 환율 결정
글로벌의 환율 기준은 달러다. ‘기축통화’의 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예컨대 원화와 위안화 간 환율은 원화와 달러, 달러와 위안 사이의 상대적 가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위안화가 약세가 된다고 해도 원화까지 달러 대비 약세가 되면 위안화와 원화 간 환율은 큰 변동이 없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외환 시장에서 시장 원리, 수요와 공급에 따라 환율이 결정된다. 정부가 환율에 개입한다고 해도 갖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풀거나 아니면 사거나 하면서 방향을 유도하는 식이다.

중국은 아주 독특한 환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위안화 시장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상하이 역내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홍콩 역외 시장이다. 홍콩 역외 시장은 시장 원리로 운영된다. 하지만 역내 시장 환율도 있으니까 완전히 자유라고 하기는 어렵다.

역내 시장은 매일 장 시작 전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기준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기준 환율에서 위아래로 2%씩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환율은 하루에 1%만 넘게 움직여도 폭등·폭락이라고 하니 2%라는 범위는 상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민은행이 기준 환율을 결정한다는 시스템 자체에 있다.

인민은행은 기준 환율을 최근 역내·역외 시장 환율과 주요국 통화 가치의 묶음인 통화 바스켓을 바탕으로 결정한다. 통화 바스켓은 달러·유로·원화 등 24개 통화로 구성된다.

중앙은행이 기준 환율을 내놓는다는 것은 정부가 환율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2005년 환율 제도를 개혁하면서 그전까지 달러당 8.27위안이었던 고정 환율을 풀고 바스켓 제도를 도입했다.

그 이후에도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4~2015년 중국 금융 시장 붕괴 위기 당시 등 두 차례 달러 페그제로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두 차례 페그제를 시행했던 것은 위안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 다시 말하면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

흔히 중국이 수출을 잘되게 하려고 환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는 환율이 높아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를 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페그제라고 하면 고정 환율제와 약간 다르다. 정부가 갖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풀었다 사들였다 하면서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주는 방식이 페그제다. 대표적으로 홍콩이 달러당 7.8홍콩 달러를 유지하는 페그제를 쓰고 있다. 보유 외화가 워낙 많아 이런 식의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 시장 개입 줄이는 중국
최근 위안화 환율 관련해 의미 있는 정책이 나왔다. 인민은행이 외화 지급 준비율을 5월 15일부터 기존 9%에서 8%로 인하하기로 한 것이다. 외화 지준율을 내리면 시중에 달러가 더 많이 풀린다. 현재는 ‘달러를 사고 위안화를 파는’ 시장 참가자들이 많아지면서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은 오르는 상황이다. 외화 지준율 인하는 달러를 풀어 위안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방어하려는 시도다.

인민은행이 외화 지준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4년 3%로 결정한 이후 2006년, 2007년 각각 1%포인트씩 올렸다. 이후 14년 만인 작년 7월과 12월 두 차례 2%포인트씩 올렸다.

그동안 지준율을 인상하기만 했다는 것은 환율 하락 내지는 위안화 강세를 막아 보려는 시도만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14년 동안 유지하다가 작년에 변동시켰다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이 지준율을 조정하면서 외환 시장에 개입하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는 외환 시장 개입을 계속 줄여 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는 기준 환율에 방향성을 좀 주는 방향으로 통제했는데 이제는 그런 인위적 조정을 줄였다는 얘기다.

인민은행은 예전에 기준 환율을 결정할 때 경기 대응 요소라는 변수를 하나 더 넣었다. 14개 시중은행에서 받은 자료로 경기 대응 요소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반영해 기준 환율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시장의 예상보다 기준 환율이 높거나 낮게 나오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인민은행은 2020년 하반기에 경기 대응 요소를 뺐다. 경기 대응 요소가 언제나 있었던 것은 아니고 2017년 5월 공식 도입했다가 2018년 1월 폐지했고 다시 2018년 8월 도입했다가 뺀 것이다. 경기 대응 요소를 추가하던 당시 상황은 모두 위안화 절하, 환율 상승 국면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던 시기였다. 이번에도 경기 대응 요소를 추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년과 올해 모두 그 대신 지준율 조정이라는 1회성 조치를 한 것이다.

그동안 위안화 강세 국면을 중국 당국이 용인한 측면도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때문에라도 경제 성장의 중심축을 수출에서 내수로 이동시키고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소비를 확대하려면 수입이 늘어야 하고 그러려면 위안화 강세가 유리하다. 위안화 강세를 유지하는 게 외국인 자본 유치에도 유리하다.

중국 내에서도 환율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내에서 환율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시장 경제 원리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한다는 집단이 있고 또 통제 내지는 국가 주도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경제 측면에선 중국에서도 장기적으로 자본주의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들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 중국은 내수가 부진한 상황이어서 수출이 경제를 뒷받침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출 증가와 외국인 자금 이탈을 따져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

중국은 작년 사상 최대인 6700억 달러(약 850조원)의 무역 흑자를 냈다. 그런데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34%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은 이 비율이 69%에 달한다.

중국도 2000년대 중반까지 이 비율이 60%를 넘었는데 자체 GDP가 워낙 커지면서 2015년부터 40%를 밑돌고 있다.

반면 중국 자본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이 시장 개방을 확대하면서 외국인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장을 열라는 압력도 많지만 중국 스스로도 금융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외국인 참여가 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에 세계 최대 은행들이 있지만 계획 경제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도 100개가 넘는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에 비하면 영세한 수준이다. 중국 금융회사들이 외국 금융사들에 선진 금융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는 게 당국의 구상이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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