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 첨단 사이에 생기는 틈, 바로 아이디스의 사냥터” [인터뷰]
입력 2022-05-11 06:00:09
수정 2022-05-11 10:33:53
‘영상 AI의 선구자’ 김영달 아이디스홀딩스 회장…2022년 계열사 매출 1조 낸다
[편집장 인터뷰]‘공항에 수상한 가방이 오래 방치돼 있으면 경보기가 울린다.’ ‘마트에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을 분석해 결제 부수를 시간대에 따라 조절한다.’ ‘주차장에 차량이 들어오면 카메라가 차량 번호를 인식하고 어느 자리에 주차했는지 정보를 저장한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사람 눈을 대신하는 영상 인공지능(AI) 덕분이다. 경기도 판교 아이디스 본사에서 영상 AI의 선구자 김영달 회장을 만났다.
1968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달 아이디스홀딩스 회장. 공부에 재능이 있던 그였지만 집이 가난해 대학 갈 형편이 안 됐다. 그러던 어느날 고등학교 1년 선배인 박성동 쎄트렉아이 의장이 학교에 찾아와 한 대학교를 소개했다. 숙식이 제공되고 마음껏 0과1을 공부할 수 있는 곳. 카이스트다.
김 회장의 선택은 운명적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이 처음 들어와 소프트웨어를 모국어처럼 배울 수 있었던 카이스트. 김 회장은 갈고닦은 소프트웨어 실력으로 학부 시절부터 방학 때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표준연구원 등에서 알바를 하며 1억원을 모았다. 당시는 삼성전자의 월급이 60만원이던 시절이다.
괴짜 천재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을 은사로 만나게 된 것도 김 회장에겐 행운이었다. 1995년 이 총장을 따라 창업의 본고장인 실리콘밸리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사업가의 꿈을 꿨다. 목표는 기술 기반의 글로벌 제조 기업. CCTV 영상 처리업 세계 강자 아이디스의 시작이다. “교수님의 평소 지론이 ‘논문이든 사업이든 한 분야에서 대가가 돼라’였다. 같은 랩실에 있던 정주(넥슨 창업가)와 제가 사업할 수 있게 힘이 돼 주셨다.”
하지만 당시 김 회장은 사업에 대해 전혀 몰랐다. 무모한 도전인가. 아니다. 그의 도전엔 어떻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자신감은 결과로 나타났다. 창업 4년 만인 2001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영업이익률 50%를 넘겼다. 10년 만에 미국 칼라텔, 영국 DM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보안 장비 시장 빅 3로 등극하는데 성공, 2012년에는 전 세계 점유율 15%를 차지하며 세계 1위에 올랐다. 25년이 지난 2022년 현재, 김 회장은 아이디스홀딩스를 중심으로 4개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아이디스와 아이디피는 직접 설립했고 영수증을 출력하는 소형 프린터 제조사 빅솔론과 카지노 모니터 세계 1위 코텍을 인수했다. 작년 매출은 5500억원. 그중 해외 수출 비율이 80%다. 올해는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뒀다.
김 회장은 아이디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첨단으로 갈수록 첨단과 첨단 사이의 간격이 넓어진다. 우리는 그 간극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왜 제조업이었습니까.
“1990년대 후반엔 소프트웨어 기반 창업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기술 기업을 만들고 싶었어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해 세계적인 회사를 일구는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물론 사업 아이템 선정은 신중하게 했죠. 가장 많이 고려했던 부분은 틈새 시장을 찾는 것이었어요. 대기업(첨단)이 하지 않는 틈새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죠.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경비실에서 CCTV 영상을 비디오테이프에 일일이 녹화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녹화 테이프를 쓰지 않는 디지털 보안 장치를 개발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측은 맞아떨어졌어요. 창업한 지 10개월 만에 ‘디지털 영상 저장 장치(DVR)’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세계 보안 영상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시켰다고 자신합니다.”
‘제품이 시대를 앞서 나왔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사실 주전공이 AI입니다. 창업 멤버 5명 모두 카이스트 대학원 인공지능연구소 출신입니다. 아이디스(Intelligent Digital Integrated Security)란 사명에도 ‘지능적인(intelligent)’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죠. AI 전문가로 똘똘 뭉친 만큼 영상 저장 장치에 AI를 넣었어요. 시점과 조건에 맞게 자동으로 영상을 검색해 주는 기능이었습니다. ‘파격적이다’는 반응이 많았죠. 다만 당시엔 컴퓨팅 파워가 AI 기술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AI가 분석한 만큼 영상을 처리할 수 없었죠. 글자 하나 처리하기도 힘든데 무슨 레코딩을 하겠습니까. 그래픽도 뒤떨어졌고 빅데이터도 모으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그럼에도 아이디스 제품에 꾸준히 AI 기술을 적용했고 결국 보안 영상 분야 레코더 시장에서 세계의 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결국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전부 다루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제조업 기반이지만 소프트웨어도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한국의 기술 기업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리드하기 위해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특히 영상 보안은 AI가 적용되면서 활용 영역이 확대됐습니다. 예컨대 무인 점포에서 보안 카메라가 점원의 역할을 대신하고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교통 체증을 예측하는 것 등입니다. 현재도 AI 연구는 진행 중입니다. 7년 전부터 AI 부서를 따로 설치해 연구·개발도 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2010년 무렵부터 하이크비전 등 중국 영상 보안 업체들이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저가에 팔았습니다. 이들은 순식간에 전 세계 CCTV 제조 산업을 휩쓸었습니다. 아이디스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회사 창업 후 처음 겪는 위기였죠. 또 중국은 정부가 보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부 주도로 15억 인구의 빅데이터를 모았습니다. 중국이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유리했죠. 2012년 당시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5년 뒤가 안 보였거든요.”
위기를 느낀 후 무얼 시도했습니까.
“그동안 아이디스는 글로벌 보안 기업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해 왔습니다. 경쟁자는 많아지는데 우리가 납품하던 파트너사들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어요. 이때 아이디스 브랜드의 완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업체와 경쟁해 우위를 점하기 위해 DVR은 물론 카메라, 네트워크 주변 기기 등 주변 기기 기술을 모두 개발해 독자적인 브랜드를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또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코텍과 빅솔론도 인수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도 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2012년부터 전략이 바뀌고 마케팅과 세일즈를 강화하면서 이익이 줄었습니다. 급기야 2017년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5년간의 브랜드 개발이 결실을 냈죠. 그때부터 앞으로의 5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2년간 성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ODM도 여전히 중요한 수입원입니다. 브랜드와 ODM의 수입 비율은 7 대 3 정도 됩니다. 시장 상황이 급변한 것도 기회로 작용했어요. 미·중 무역 갈등으로 중국 기업들의 위세가 위축됐거든요. 코로나 시기 기초 체력이 약했던 경쟁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것도 있었죠.”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와의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멘토’입니다. 저보다 일찍 사업을 시작하셨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창의적이었습니다. 의사 결정 속도도 매우 빨랐어요.”
스스로 ‘기업인 김영달’을 정의해 보시겠습니까.
“‘사업을 즐기는 기업인’입니다. 프로젝트 과정 자체를 즐깁니다. 아이디스도 똑같습니다. 야성이 살아있는 직원들이 있고 그들이 가진 사고의 폭을 가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주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25년 업력의 중견기업이면 핫하다는 판교에서 자칫 나이 든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디스는 ‘젋은 회사’라고 자신하는 이유입니다. 화학 산업이 어느날 갑자기 주류로 떠오른 것처럼 제조업도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를 가슴에 새기며 기술 기반의 중견기업으로 정진하겠습니다.”
대담=김용준 편집국장, 정리=김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