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낯설지만 가장 사적인 공간, 왜 그들은 호텔로 향할까
입력 2022-05-14 06:00:14
수정 2022-08-03 10:02:22
[EDITOR's LETTER]
스타벅스는 한국 커피 시장의 지배자입니다. 왜 스타벅스에 갈까 자문해 봤습니다. “책 보러 가고, 글 쓸 때 가고, 사람들 만날 때 가고, 지칠 때 잠시 퍼지러 가고, 사람들과 대화하러 가고, 회의하러 가고….”
모두 공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3의 공간을 제공하라’는 스타벅스의 전략이 성공한 대표적 나라가 한국입니다.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사무실, 제3의 공간이 스타벅스란 얘기지요. 좁은 방에서 사는 대학생, 사무실이 없는 작가, 온갖 수험생, 직장인 등이 스타벅스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제 성장으로 입고 먹는 것을 해결한 사람들은 공간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공간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 ‘제3의 공간 전략’은 그렇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요즘은 또 하나의 공간이 탄생한 듯합니다. 호텔입니다.
가끔씩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을 찾습니다. 긴 글을 쓸 때나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2~3일 정도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체크인 합니다.
얼마 전에도 집에서 멀지 않은 비즈니스 호텔에서 며칠 지냈습니다. 집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피신이라고 설명했지만 ‘비겁한 탈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침 재택근무 기간이었습니다. 눈 뜨면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습니다. 커피 한 잔 사 들고 들어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잠시 일을 하면 점심시간입니다. 인근 맛집을 찾아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에 일하고 저녁에는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 그리고 맥주 한잔. 또 푹신한 이불, 잠시 나갔다 오면 깔끔하게 정돈된 방까지 더해집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묘한 만족감을 줬습니다. 무언가에서의 해방 또는 자유라고나 할까….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호텔을 다뤘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힐튼호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의 숙소였던 그랜드 하얏트 서울,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라마다르네상스 호텔 등이 모두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한국 호텔 산업이 변곡점을 맞는 시기인 듯합니다.
더 중요한 주제는 호텔의 또다른 주인, 이용자도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를 피해 숙박했던 당시 호텔 로비는 체크인·체크아웃하는 사람으로 매일 북적거렸습니다. 로비에 앉아 사람들을 가만히 봤습니다. 가족·연인·친구·직장인 등 다양했습니다. 술집 영업시간 제한이 있던 때였습니다. 못다 마신 술을 마시기 위해 체크인하는 사람들도 흔하게 발견했습니다. ‘호텔의 주인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호텔의 고객이 부자·관광객·비즈니스맨이었다면 지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변화로 호텔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단어였던 관광객은 고어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호텔은 일상이 됐고 제3의 공간이 된 듯합니다.
여기서 잠깐, 공간은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공간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인구는 급증하는 데 땅덩어리는 좁아 아파트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아파트에서 각 식구들의 개인 공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체의 30%에 육박하게 된 1인 가구 가운데 만족스러운 공간에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왜 주식 투자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돈 벌어서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답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간 부족에 시달려 온 사람들이기에 부동산에 집착하고 부동산 정책 때문에 정권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공간에 대한 갈증은 한국 사회 정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호텔 얘기입니다. 호텔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라고 합니다. 낯설다는 말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해방,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익숙하지만 불편한 사람들, 앉아 있지만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 사무실, 무언가 무거운 것으로 꽉 차 있는 듯한 머리. 이런 느낌이 드는 직장인들이라면 하루쯤 낯설지만 가장 사적인 공간을 찾아 나서 보면 어떨까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웨스턴 모텔’이란 그림 한 편 정도를 감상하면서 말이지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스타벅스는 한국 커피 시장의 지배자입니다. 왜 스타벅스에 갈까 자문해 봤습니다. “책 보러 가고, 글 쓸 때 가고, 사람들 만날 때 가고, 지칠 때 잠시 퍼지러 가고, 사람들과 대화하러 가고, 회의하러 가고….”
모두 공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3의 공간을 제공하라’는 스타벅스의 전략이 성공한 대표적 나라가 한국입니다.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사무실, 제3의 공간이 스타벅스란 얘기지요. 좁은 방에서 사는 대학생, 사무실이 없는 작가, 온갖 수험생, 직장인 등이 스타벅스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제 성장으로 입고 먹는 것을 해결한 사람들은 공간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공간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 ‘제3의 공간 전략’은 그렇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요즘은 또 하나의 공간이 탄생한 듯합니다. 호텔입니다.
가끔씩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을 찾습니다. 긴 글을 쓸 때나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2~3일 정도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체크인 합니다.
얼마 전에도 집에서 멀지 않은 비즈니스 호텔에서 며칠 지냈습니다. 집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피신이라고 설명했지만 ‘비겁한 탈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침 재택근무 기간이었습니다. 눈 뜨면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습니다. 커피 한 잔 사 들고 들어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잠시 일을 하면 점심시간입니다. 인근 맛집을 찾아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에 일하고 저녁에는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 그리고 맥주 한잔. 또 푹신한 이불, 잠시 나갔다 오면 깔끔하게 정돈된 방까지 더해집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묘한 만족감을 줬습니다. 무언가에서의 해방 또는 자유라고나 할까….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호텔을 다뤘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힐튼호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의 숙소였던 그랜드 하얏트 서울,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라마다르네상스 호텔 등이 모두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한국 호텔 산업이 변곡점을 맞는 시기인 듯합니다.
더 중요한 주제는 호텔의 또다른 주인, 이용자도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를 피해 숙박했던 당시 호텔 로비는 체크인·체크아웃하는 사람으로 매일 북적거렸습니다. 로비에 앉아 사람들을 가만히 봤습니다. 가족·연인·친구·직장인 등 다양했습니다. 술집 영업시간 제한이 있던 때였습니다. 못다 마신 술을 마시기 위해 체크인하는 사람들도 흔하게 발견했습니다. ‘호텔의 주인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호텔의 고객이 부자·관광객·비즈니스맨이었다면 지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변화로 호텔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단어였던 관광객은 고어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호텔은 일상이 됐고 제3의 공간이 된 듯합니다.
여기서 잠깐, 공간은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공간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인구는 급증하는 데 땅덩어리는 좁아 아파트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아파트에서 각 식구들의 개인 공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체의 30%에 육박하게 된 1인 가구 가운데 만족스러운 공간에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왜 주식 투자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돈 벌어서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답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간 부족에 시달려 온 사람들이기에 부동산에 집착하고 부동산 정책 때문에 정권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공간에 대한 갈증은 한국 사회 정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호텔 얘기입니다. 호텔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라고 합니다. 낯설다는 말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해방,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익숙하지만 불편한 사람들, 앉아 있지만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 사무실, 무언가 무거운 것으로 꽉 차 있는 듯한 머리. 이런 느낌이 드는 직장인들이라면 하루쯤 낯설지만 가장 사적인 공간을 찾아 나서 보면 어떨까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웨스턴 모텔’이란 그림 한 편 정도를 감상하면서 말이지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