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시장 지표 급락하고 거래량도 80% 줄어…인터넷 초기 단계 보면 아직은 ‘성장통’에 무게
최근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둘러싼 논쟁이 예사롭지 않다. NFT는 2021년 영국 콜린스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NFT에 대해 유수의 언론들은 연일 비관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잡지인 포천은 NFT 거품론을 제기하고 나섰고 미국 블룸버그도 NFT 시장이 본격적으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유명 인사들도 이러한 NFT 거품 논란에 합류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견했던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NFT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설립자 자오창펑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열풍과 2000년대 닷컴 버블을 비교하면서 NFT 시장에 대한 거품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NFT 광풍 이후엔 거품론 부상널리 알려졌듯이 NFT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을 말한다. 이미지·비디오·텍스트와 같은 디지털 파일의 소유권을 기록하는 암호화 자산이다. NFT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컬러코인’이 만들어진 것은 2012년이지만 NFT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다. 이더리움에서 대체 불가능하다는 개념이 도입된 토큰인 ERC-721 등장과 함께 라바랩스의 ‘크립토펑크’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 2017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NFT가 광풍이라고 일컬으며 투자 열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2021년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의 역사적 첫 트위터 캡처 파일이 290만 달러(약 36억8000만원)에 낙찰되고 디지털 예술 작가 비플의 ‘매일 : 첫 5000일’의 NFT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약 880억원)에 팔린 것이 2021년 3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은 NFT의 해라고 할 만큼 NFT 관련 보도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왜 올해 들어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는 것일까. NFT 거품론을 촉발한 것은 최근 발표된 NFT 관련 시장 지표 때문이다. NFT 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넌펀저블 자료에 따르면 NFT의 평균 판매 가격은 2022년 1월 6900달러(약 880만원)에서 3월 현재 2000달러(약 254만원)로 하락했다. 하루 누적 매출도 1월 1억6000만 달러(약 2004억원)에서 3월 2600만 달러(약 330억원)로 떨어졌다.
가장 큰 NFT 시장인 ‘오픈시(OpenSea)’의 매출은 1월 거의 50억 달러(약 6조4000억원)에서 2월 약 25억 달러(약 3조2000억원)로 반 토막 났다. 오픈시의 하루 거래량도 2월 2억4800만 달러(약 3150억원)를 기록한 후 3월 약 5000만 달러(약 635억원)로 80% 급감하면서 NFT 거품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NFT의 가격 조정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은 NFT 하락 조짐이 사실 작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넌펀저블에 따르면 NFT의 평균 판매 가격은 2022년 3월 약 2500달러(약 320만원)로 2021년 11월 5000달러(약 640만원)에서 50% 이상 하락했다. 290만 달러(약 36억8000만원)에 판매됐던 도시 창업자의 역사적 첫 트윗 NFT도 오픈시에서 1년 만에 280달러(약 36만원)로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2021년 2만6000% 성장한 NFT 판매량 이러한 NFT 관련 지표 하락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과도한 투기와 NFT 시장 포화로 인해 가치 조정 중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NFT 시장을 보면 2021년 3분기부터 엄청난 자금이 NFT에 유입되면서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데이터 업체인 댑레이더(DappRadar)에 따르면 2020년 NFT 판매량은 9490만 달러(약1200억원)인데 비해 2021년에는 무려 250억 달러(31조 7000억원)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무려 2만600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대내외적으로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금리 인상, 증권거래위원회(SXC)의 NFT 규제 조사 강화 등이 NFT의 시장 전망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투명성과 고유성 등 NFT의 핵심 가치에 타격을 주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NFT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래와 절도 및 자전 거래로 인한 NFT 가치 뻥튀기 등은 NFT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최대 NFT 거래소인 오픈시에서 무료로 발행된 NFT의 80% 이상이 표절 작품, 가짜 컬렉션, 스팸이라고 한다. 최근 도시 창업자의 트윗을 경매에 최초로 부친 NFT 거래소 ‘센트’도 지난 2월 불법 복제와 표절 문제로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비록 센트는 사용자나 매출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NFT 플랫폼이지만 가짜와 불법 콘텐츠 문제는 센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NFT 시장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2021년에는 유명한 거리 예술가 뱅크시를 사칭한 판매자가 만든 NFT가 33만6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판매된 바 있다. 또 ‘지루한원숭이들의요트클럽(BAYC)’의 좌우 반전 형태인 미러링 NFT ‘PAYC’와 ‘PHAYC’가 오픈시에서 발행됐다가 거래가 금지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로 인해 분산형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웹 3.0의 철학을 담은 오픈시, 나아가 NFT의 정체성과 이미지에 대해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NFT의 핵심 가치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NFT가 독점 및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리서치 분석가인 메이슨 나이스톰은 비싼 NFT 수집품 구매자는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의 게이트 채널, 사교 모임, 파티에 초대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며 “NFT의 핵심 가치가 독점”이라고 단언하고 나섰다.
사실 암호화폐 시장과 마찬가지로 NFT 시장도 소수의 대기업 또는 소위 ‘고래’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체인널리시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월 말과 11월 사이에 36만 명의 NFT 소유자가 총 270만 개의 NFT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중 약 9%인 3만2400개의 지갑이 전체 NFT 시장 가치의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NFT 거품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더 나아가 블록체인의 분산된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NFT를 발행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비돼 지속 가능 경영의 핵심인 친환경 추세에도 위배된다고까지 한다.
실제로 최근 구글 검색 트렌드 자료에 따르면 단일 이더리움 NFT 거래의 에너지 사용량이 미국 평균 가정의 4일 전력 사용량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NFT 거품론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우선 NFT 옹호론자들은 NFT 거품론으로 지목되는 시장 지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거품론의 증거로 제기되는 지표가 시장에 따라 동일한 시기에도 증가세와 하락세가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댑레이더의 발표에 따르면 NFT 버블론이 나오는 와중에 BAYC와 크립토펑크 NFT의 판매는 3월 전후로 각각 59%와 1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NFT로 출시된 래퍼 스눕 독의 2022년 최신 앨범은 단 5일 만에 4000만 달러(약 5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댑레이더의 분석가 페드로 헤레라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3월 NFT 거래량은 전반적으로 감소했지만 고유한 거래자 수와 판매 수로 측정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며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NFT 거품론의 증거로 거론되는 대부분이 예술품에 대한 것이라는 것도 논란거리다. 예술품은 개별 아이템의 거래 금액이 크지만 거래 횟수 측면에서는 다른 시장에 비해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반면 NFT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게임 분야는 거래가 지속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따라 NFT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최근의 NFT 거품론은 일시적이고 새로운 진화 단계로 가면서 겪는 성장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NFT 거품론에 대한 논란을 볼 때 어느 쪽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라고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NFT는 아직 초기 단계이고 디지털 자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새로운 창작 시장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보면 메타버스의 부상으로 최근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NFT는 새로운 가상 세계에서 엄청난 혁신을 촉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동안 플랫폼 경제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수익 기회를 줌으로써 건전한 가상 세계 생태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면에서도 미래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도 초창기에 거품이 터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비플’ 작가 마이크 윈켈만의 말처럼 NFT 시장의 성장 과정을 좀 더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