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내 인생’과 좋은 헤어짐을 스스로 준비하세요"

김기석 하나은행 부행장·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
은행과 장묘 사업자가 손잡고 만든 ‘봉안플랜신탁’ 통해 장례 문화 혁신

[비즈니스 포커스]

김기석 하나은행 부행장(오)과 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 사진=김기남 기자


지난 2월 고인이 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자신의 인생을 ‘선물이었다’고 했다. 89세에 생을 마친 그는 ‘선물 같은 인생과의 헤어짐’을 준비하며 특별한 만남을 계획했다. 매주 화요일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 대화했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가득 채운 마지막을 보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모두가 ‘좋은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 ‘잘사는 것’을 바라는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잘 죽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생과의 ‘좋은 헤어짐’을 위해 장례 문화에도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재단법인 납골당인 용인공원 아너스톤과 한국 신탁 분야의 강자인 하나은행이 손을 잡았다. 지난 4월 신탁을 통해 고품격 장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봉안플랜신탁’ 상품을 선보였다. 생전에는 본인이 자금을 관리하다가 본인이나 가족의 유고 시 아너스톤에 장지비용을 납입하고 남은 금액은 법정 상속이 되는 구조다.

지난 5월 17일 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과 김기석 하나은행 부행장을 경기도 용인공원 아너스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용인공원은 여느 묘지와는 달랐다. 잔디밭과 통유리로 된 건물에 카페까지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추모하는 이 공간을 어두침침한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다. 이번 봉안플랜신탁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두 사람에게 한국 장례 문화의 변화를 위해 의기투합한 과정과 의의를 들어봤다.

-신탁 상품으로 장사를 지내고 장지 비용까지 납부하는 것은 한국에서 첫 시도입니다. 이와 같은 상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김기석 하나은행 부행장(이하 김기석) “하나은행은 2010년부터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인 ‘하나리빙트러스트’ 상품을 비롯해 치매안심신탁 등의 다양한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생애에 걸쳐 고객들의 상황에 따라 맞춤 자산 관리 플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봉안플랜신탁’은 이와 같은 생애 여정 플랜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만한’ 파트너를 찾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아너스톤과 협업하게 됐습니다.”

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이하 김동균) “용인공원도 마침 비슷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국은 특히 ‘죽음’이라고 하면 무거운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장례 문화 자체가 어둡죠. 그런 장례 문화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고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고객을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온 답이 ‘신탁’이었죠. 신탁이라는 것은 결국 살아 생전 자신의 사후를 준비하는 금융 상품이니까요. 자신의 죽음을 어둡고 무겁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장례 문화의 어떤 점을 바꾸고 싶었나요.

김동균 “사실 ‘장지’라는 것은 대부분 가족 중 누군가 돌아가시면 상중에 갑자기 준비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례 산업 자체가 음지에 머무르는 측면이 강했죠. 이 때문에 장례 산업을 양지화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장례 문화가 조금 더 ‘고인 중심’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장례는 갑작스럽게 고인이 떠나고 난 뒤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고인의 묻힐 곳을 포함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당사자의 뜻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이제는 살아 생전 자신의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될지 준비하고 자신이 묻힐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바꿔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장례식이 고인과의 이별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고인과 함께 나눴던 삶을 추억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김기석 “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 또한 피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요즘과 같은 100세 시대에서는 잘사는 것만큼이나 잘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에는 1인 가구·핵가족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가족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감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지금의 사회에서는 가족들에게 모든 짐을 지우기 힘든 구조입니다. 하나은행 또한 단순히 기존의 신탁을 통해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는 데서 한 발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웰 다잉’을 추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본인의 장례식을 직접 설계한다’는 게 파격적입니다. 상품 출시 후 반응은 어떤가요.

김동균 “사실 자식들은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오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가족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 다양한 반응이 오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자신의 죽음을 감당해야 할 자식들의 부담을 줄여 주는 일이기도 한 겁니다.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데 관심을 가져줄까 싶기도 했는데 반응은 생각보다 좋습니다. 지난 4월 출시 후 한 달여 만에 10건 이상의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고객들 중에는 40~50대 젊은층이 많다는 것 또한 예상외였습니다. 첫 고객은 이번 상품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했어요. 해외 생활을 하신 분이었는데 유럽만 하더라도 건강할 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상품이 다양한데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금융 상품이 생겼다고 반가워하더군요.”

김기석 “지난 3년간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자 이들이 늘고 있죠. 수요는 다양합니다. 자식 세대를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고령층부터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 두려는 중·장년층까지 관심이 많아요. 오히려 ‘죽음’과 관련한 상품이다 보니 우리 쪽에서는 우려가 있기도 했는데 고객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문의를하는 경우가 많아 놀라고 있습니다.”

사진=김기남 기자


-상품 출시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기석 “이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죽음은 20~30년 뒤 벌어질 일이기 때문에 그 시차에 대한 우려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30년 이후 용인공원 측에서 납골당이나 묘지의 초과 분양 혹은 이중 분양을 하는 등의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상품이 출시되기까지 상품위원회 등을 포함해 1년여 정도의 논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다른 상품들과 비교하면 1년이라는 기간은 사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죽음’과 관련한 금융 상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정하는 데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편은 아닙니다. 그만큼 고객들의 수요가 많았고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상품이라는 확신이 뒷받침이 됐습니다.”

김동균 “하나은행에서 우려했던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례 산업이 지금보다 더욱 양지로 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한국 업계 1위인 용인공원 또한 ‘장례’나 ‘죽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곳 용인공원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여는 등 축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너스톤의 고객은 물론 마을 주민들도 언제든 편하게 들러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사랑하는 가족을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회적으로도 ‘웰 다잉’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이와 관련해 계획 중인 사회 공헌이 있나요.

김기석 “최근에는 신탁 상품을 통한 기부에 관심을 두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조금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측면에서 하나은행 또한 VIP 고객을 중심으로 사회 공헌 사업을 선도하는 데 노력을 들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학교 동문인 VIP 고객들을 중심으로 학교 재단과 기부 협약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탁을 통해 자산을 맡긴 고객의 사후에 미리 협약을 맺은 학교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이어 가장 최근에는 이화여대와도 협약을 맺었습니다.”

김동균 “조손 가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어린 손자와 살아가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가장 큰 걱정이 ‘나 죽으면 우리 손자는…’이라고 해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손자들이 장례를 치르는 것도 걱정이지만 그 이후 돌봐 줄 사람도 마땅하지 않으니까요. 죽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 조손 가정이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와 같은 장묘 업체가 조손 가정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도와주고 또 하나은행과 같은 기관에서 어린 손자들에 교육을 지원해 주는 사회 공헌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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