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조 돌파’ LX그룹, M&A 본격 시동

반도체·원자재 경쟁력 확보 속도…세미콘, 텔레칩스 지분 투자 이어 매그나칩 인수전 뛰어들어



영업이익은 3배 늘었고 자산은 10조원을 돌파했다. 좋은 실적에 힘입어 출범 1년 만에 재계 순위 40위권에 안착했다. 구본준 회장이 이끄는 LX그룹이 LG에서 독립한 지 1년 만에 받아든 성적표다. 출범 후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홀로서기를 시작한 LX그룹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차질과 물류난 등 경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순조롭게 출발했다.

출범 2년 차인 올해는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한다. 기존 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인수·합병(M&A)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원자재 거래를 주업으로 삼는 LX인터내셔널과 시스템 반도체 설계 회사(팹리스)인 LX세미콘이 양 축이 돼 그룹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등 2차전지 원료와 신재생에너지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LX세미콘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에 치중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M&A에 나서며 팹리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신사업은 기업의 미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라며 사업의 질적 성장과 함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요구했다.

지난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입증한 LX그룹의 다음 과제는 LG 의존도 줄이기다. LX인터내셔널의 지난해 매출 중 57%가 LG그룹에서 나왔다. LX세미콘도 LG디스플레이·LG전자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태다.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가 친족 분리를 신청하면 최근 3년간 모기업 집단과의 상세 거래 내역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기 위해 분리가 완료된 후에도 3년간 거래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LX가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는 이유다. LG 의존도 줄이며 사업 다각화 집중

LG에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온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은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하고 조카인 구광모 LG 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다. 그리고 지난해 5월 LX인터내셔널(전 LG상사)과 LX하우시스(전 LG하우시스), LX세미콘(전 실리콘웍스), LX MMA(전 LG MMA), LX판토스(전 판토스) 등 5개 회사를 중심으로 LX그룹을 계열 분리했다.

지난해 LX의 정식 분할이 이뤄진 직후 LX그룹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앞서 독립한 GS나 LS처럼 그룹의 뚜렷한 색깔을 나타낼 캐시카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GS그룹은 정유·유통·건설이라는 든든한 삼각 편대가 있었고 LS그룹은 LS전선·LS니꼬동제련·E1을 구심점으로 삼아 성장했다.

두 그룹 모두 현금을 창출하는 ‘알짜배기’ 사업을 들고 나갔지만 LS그룹은 전자와 화학 등 LG의 주력 사업과는 거리가 먼 나머지 사업을 가지고 나가는 모양새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LX 계열 분리는 당시 LX의 성장보다 LG의 ‘선택과 집중’에 더 도움이 되는 결정처럼 보였다”며 “전자·화학·배터리를 중심으로 전략을 다시 짠 LG가 주력 사업과 동떨어진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LX가 출범 이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며 시장의 우려를 잠재웠다”고 평가했다.

출범 전인 2020년 5개 계열사 매출은 총 16조248억원, 영업이익은 4025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총 22조8099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3배 넘게 성장한 1조2591억원을 기록했다.

그룹의 몸집도 커졌다. LX그룹의 자산(별도 기준) 규모는 2020년 말 8조930억원에서 지난해 말 10조374억원으로 24% 정도 증가했다.

LX인터내셔널의 중국 네이멍구 요소비료 플랜트 전경.[LX인터내셔널]
‘용의 꼬리’에서 ‘뱀의 머리’로

그룹 내 맏형 격인 LX인터내셔널이 실적을 견인했다. LG그룹에서는 다른 계열사들에 가려져 존재감이 크지 않아 ‘용의 꼬리’ 역할을 하던 LX인터내셔널은 LX홀딩스 아래에서 ‘뱀의 머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10% 뛰었다. 지난해 석탄 가격이 급등하고 해운 운임이 상승하면서 LX인터내셔널 실적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에 나서자 오히려 관련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석탄 값을 자극한 ‘그린 인플레이션’의 영향이다.

지난해 LX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 대부분은 원자재와 팜유 등 자원과 트레이딩 부문에서 나왔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호주·중국의 석탄 광산에 투자하고 여기에서 생산한 발전용 유연탄을 해외에 판매한다. 또 팜 농장 투자와 운영 사업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원과 트레이딩 부문의 이익이 크게 늘었다.

LX인터내셔널이 인도네시아 MPP유연탄광에서 채굴 작업을 하고 있다.[LX인터내셔널]


올해도 실적은 순항하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1분기 영업이익이 245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17% 증가했다. 매출은 4조91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3.5% 증가했다.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사상 최대치다.

LX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작년 1분기 톤당 평균 42달러였던 인도네시아산 석탄 가격은 1년 만에 82달러를 기록하며 2배 올랐다. 같은 기간 호주산 석탄 가격도 89달러에서 264달러로 3배 뛰었다. 인도네시아산 팜유 가격 역시 톤당 700달러에서 1085달러로 1년 만에 약 1.5배 상승해 자원 부문과 트레이딩 부문의 이익 증가를 견인했다.
물류 수송 시 높은 운임료 역시 호실적을 이끈 주요인이다. 해운 운임의 기준이 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작년 1분기 2774에서 1년 만에 4864로 오르는 등 고운임 추세가 이어지며 물류 사업 부문도 호실적을 냈다.LX인터내셔널은 M&A에도 공격적인 모습이다. LX인터내셔널은 3월 한국유리공업, 4월 포승그린파워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 3월 한국 판유리 시장점유율 2위 업체인 한국유리공업을 약 6000억원에 인수했다. 관계사인 LX하우시스의 인테리어 사업과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LX인터내셔널의 다음 목표는 니켈 광산이다. 니켈은 전기차 2차전지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다. 현재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광산 2~3개를 놓고 검토 중이고 올해 안에 광산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 LX판토스도 그룹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물류 호황 덕에 판토스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64% 늘어난 7조8177억원, 영업이익은 124% 증가한 3604억원이었다. 창사 이후 최고의 성적표를 올렸다.
‘못다 이룬 꿈’ 반도체 사업, 성장 궤도 진입 한국 최대 팹리스인 LX세미콘 역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2020년 8%에 불과했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9.5%까지 뛰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3696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 8988억원으로 2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LX세미콘의 주력 사업인 DDI 출하량이 크게 늘며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LX세미콘은 DDI에서 매출의 88%를 올리고 있다. TV·스마트폰·노트북·가전 등에 쓰이는 모든 칩의 DDI를 설계한다. 글로벌 DDI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55% 성장하면서 LX세미콘의 실적도 급등했다.

시장 조사 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LX세미콘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 순위 42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회사는 아니지만 한국의 대기업 집단 중 유일한 팹리스 회사다. 글로벌 팹리스 시장 순위는 13위다.

삼성전자 역시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를 두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영위하고 있는 종합 반도체 회사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LX세미콘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한국 팹리스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인 셈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LX세미콘은 투자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며 “LX세미콘이 지분 투자와 M&A를 통해 다른 사업부문의 경쟁력을 빠르게 흡수하면 삼성전자 등 한국의 파운드리 기업뿐만 아니라 디자인 하우스나 패키징 등 다른 팹리스 회사들과도 동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X세미콘의 성장은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못다 이룬 ‘반도체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반도체는 구 회장이 가장 관심을 두는 사업이다. LX홀딩스를 제외하고 계열사 중 유일하게 LX세미콘에만 구 회장의 집무실이 있다. 이곳에서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기며 LX세미콘의 성장에 힘을 싣고 있다는 후문이다. 구 회장은 1998년 LG반도체 대표이사를 맡으며 일찌감치 반도체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하지만 1999년 정부 주도의 ‘빅딜’로 LG반도체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넘겨야 했다.

구 회장이 직접 챙기는 LX세미콘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미래 성장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LX세미콘은 최근 차량용 반도체 설계 기업 텔레칩스에 지분을 투자했다. 267억원을 투입해 텔레칩스 지분 10.93%를 확보하는 투자였다. DDI에 치중된 매출을 차량용 반도체 시장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LX세미콘 측은 이번 지분 투자에 대해 “차량용 반도체 연구·개발(R&D)을 위한 지분 투자”라고 설명했다. 텔레칩스는 차량 운전자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용 칩을 개발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또 다른 팹리스인 매그나칩반도체 인수에도 나선다. LX세미콘은 최근 매그나칩 매각 주간사 회사인 미국 JP모간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또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재무적 투자자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그룹과 컨소시엄 구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그나칩반도체는 SK하이닉스가 2004년 10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기 위해 비메모리 부문을 정리하면서 분사한 업체다. 이후 미국 씨티그룹 벤처캐피털에 인수된 후 미국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매그나칩반도체는 LX세미콘과 마찬가지로 DDI와 자동차용 전력 반도체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LX세미콘이 DDI 시장 3위, 매그나칩이 2위다. LX세미콘은 매그나칩 인수를 통해 DDI 점유율을 확대하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본격적인 경쟁력 확보에 나선 LX세미콘은 지난해 LG그룹에 산재된 반도체 경쟁력을 흡수하기도 했다. LG이노텍의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소자 설비와 특허 자산을 인수했고 LG화학이 갖고 있던 일본 방열 소재 업체 ‘FJ컴포지트머터리얼즈’의 지분 30%(약 68억원)와 관련 유·무형 자산을 총 7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방열 소재는 제품이 가동되면서 발생하는 열을 외부로 방출하기 위한 소재로, 자동차 전장 부품과 전자 부품 등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쓰인다.

주력 계열사의 안정적인 재무 구조도 강점으로 꼽힌다. LX세미콘의 부채 비율은 65% 수준이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부채 비율을 24%포인트 떨어뜨렸다. 낮은 부채 비율은 공격적 사업 확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장남 2대 주주로…세대교체 가능성 제기승계 준비도 시작됐다. 구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전무는 LG전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LX홀딩스에 합류했다. 이후 11개월 만인 올해 3월 상무에서 경영기획부문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12월 구광모 LG 회장과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서로가 가지고 있던 상대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경영권을 정리했다.

구광모 회장과 특수 관계인 등 9인은 지난해 보유 중인 LX홀딩스 지분 32.32%를 구본준 회장에게 매각했다. 이 거래로 구본준 회장의 LX홀딩스 지분은 7.72%에서 40.04%로 늘었다. LX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한 구본준 회장은 2주 뒤 아들 구 전무와 딸 구연제 씨에게 자신이 보유한 LX홀딩스 지분의 절반가량을 증여했다. 이에 따라 구본준 회장의 지분율은 20.37%로 낮아졌다. 구 전무의 지분은 0.6%에서 11.75%로, 구연제 씨의 지분은 0.26%에서 8.78%로 높아졌다.

구 전무는 구 회장에게 LX홀딩스 지분을 증여받아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재계에서는 지분 증여를 승계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수년 내에 그룹 내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구 전무는 현재 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과 전략적 M&A 영역에서 주요 경영진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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