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 경영 시작되며 ‘후계자 병역’ 이슈로
SK·LG·한화·코오롱 ‘걱정 없다’
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최대 리스크는 멤버 7명의 병역 문제다. BTS의 입대를 두고 공정·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가요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하이브의 주가와 BTS의 병역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리오프닝 수혜주로 고공 행진하던 하이브의 주가는 BTS 멤버들의 병역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요동치고 있다.
병역 문제는 하이브만의 고민은 아니다. 경영 승계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재계에서도 일부 후계자의 병역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그룹도 하이브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신동빈 회장의 장남
국적·병역 문제 해결 과제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 씨가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 상무로 부임하면서 롯데가 3세 경영 체제 준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신 상무는 1986년생으로 올해 37세다. 일본 게이오대, 미국 컬럼비아대 MBA를 거쳐 2008년 노무라증권 싱가포르지점에서 근무했다. 2020년 말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인 일본 롯데·롯데홀딩스에 입사해 부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1분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동경지사 영업·신사업 담당 미등기 비상근 임원(상무보)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 상무는 신 회장과 동일한 경영 수업 코스를 밟고 있다. 신 회장은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미국 컬럼비아대 MBA를 거쳐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일본 롯데상사를 거쳐 35세 때인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한국 롯데그룹에 입성했다. “남 밑에서 고생해 봐야 사회를 배울 수 있다”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재계에선 신 상무가 그룹의 중심축인 롯데케미칼에 합류한 것을 두고 3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신 상무는 아직 한·일 양국 롯데에 지분이 없는 만큼 한국 롯데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 상무가 신 회장처럼 한국 롯데그룹에 입성하기 전 해결해야 할 민감한 이슈가 있다. 국적과 병역 문제다. 신 회장은 일본과 한국의 이중 국적 상태에서 일본 국적을 포기했지만 신 상무는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국적 회복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일본에서 나고 자란 만큼 한국어에 서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만 38세부터 병역이 면제되기 때문에 올해 37세인 신 상무는 이르면 2025년 한국에 귀화해 3세 경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 국적을 갖고 있던 신 회장은 41세 때인 1996년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당시 병역법에서는 만 40세부터 병역이 면제됐는데 신 회장이 일본 국적을 포기한 시기는 그가 한국 법 기준으로 병역 의무를 막 벗어난 때와 맞물렸다. 신 회장은 병역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1997년 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딸도 최전방 근무하는 SK그룹
병역을 충실히 이행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오너 일가도 있다. SK그룹 3세들 중 최태원 SK 회장의 둘째 딸 최민정 씨가 대표적이다. 최 씨는 재벌가 딸로는 이례적으로 해군에 자원 입대해 최전방 근무를 마쳤다.
그는 여성으로 병역 의무가 없음에도 2014년 해군사관학교 후보생으로 자원 입대해 2015년 청해부대 소속으로 아덴만에 파병됐고 2016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근무 후 2017년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 중국 투자회사를 거쳐 SK하이닉스에서 주요 인수·합병(M&A)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전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은 재계에서는 드물게 최 전 회장에 이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최 전 회장은 자식들에게 패기를 강조한 최종건 SK그룹 창업자의 권유로 1973년 해병대에 입대해 제2사단에서 근무했다. 장남인 최 사업총괄이 중국 푸단대를 졸업한 뒤 귀국해 2006년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 입대한 데는 부친인 최 전 회장의 영향이 컸다.
재계에서 소문난 해병대 예찬론자인 최 전 회장은 SKC 회장 재직 시절 임직원들과 함께 해병대 극기 훈련에 참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내 변화를 위해 나부터 변하겠다”며 1998년 임직원들에게 해병대 극기 훈련을 처음 제안했고 본인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LG그룹과 범LG가는 오너 일가의 병역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병역 의무를 비교적 충실히 이행하는 편이다. 구본무 선대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X그룹 회장, 구본식 LT그룹 회장, 구자열 LS 의장 등 대부분이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구광모 LG 회장은 국내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3년 동안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며 병역을 마쳤다. 최근 별세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현대가 3세인 정기선 HD현대·한국조선해양 사장은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13기)에 이어 학생군사교육단(ROTC·43기)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한화 김동관·현대重 정기선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화그룹은 병역 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그룹 중 하나다. 한화그룹의 모태가 화약류 제조를 위해 설립한 한국화약으로 방산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병역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김승연 회장의 지론이다. 실제 한화그룹 3남 모두 병역과 관련해 잡음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부친의 뒤를 이어 2006년 공군사관학교 후보생 117기로 입대했다. 김 사장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통역장교로 선발돼 국방부 장관 직속 통역을 맡다가 2009년 공군 중위로 복무를 마쳤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도 공군 중위로 제대했다. 3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전략실장은 17세 때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 승마 역대 최연소 국가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코오롱 4세 이규호, 레바논 파병 자원
코오롱그룹 4세인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 들어와 육군에 현역 입대해 6포병여단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복무 당시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인 동명부대에 자원해 해외 파병을 다녀왔다.
이 부사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다. 복수 국적 취득이 가능했으나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아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군대에 보낼 것”이라고 강조해온 만큼 병역 의무에 대한 평소 신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명예회장은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최전방 근무를 자처해 3년 동안 비무장 지대(DMZ)에서 복무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장남 정해찬 씨는 1998년생으로 올해 25세다. 정 씨는 지난해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현재 군 복무 중이다. 정 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2018년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인턴 근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단독] 정용진 장남, 작년 11월 육군 현역 입대…“군 복무 중”)
병역 면제로 리스크를 해결한 기업도 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부친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같은 유전병을 이유로 2013년 병역을 면제 받았다.
최태원 회장의 장남 최인근 씨는 1995년생으로 올해 28세인데 병역 의무 이행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인턴십을 거쳐 2020년부터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돋보기]
‘해군 장교 복무’가 후계자 필수 요건인 발렌베리 가문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를 졸업할 것. 자력으로 해외 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며 스웨덴 대표 기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필수 요건이다.
발렌베리 가문이 160여 년간 5세째 세습 경영을 해오면서도 온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 힘쓴 덕분이다.
발렌베리 가문이 후계자 양성 원칙 중 하나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내세운 것은 해군 장교 생활을 통해 자기 절제력, 극기력, 리더십과 위기관리 능력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