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재활용 실시간 추적…폐기물 시장 디지털로 바꿉니다”

한국의 기후 기술 기업-리코

[ESG 리뷰]



‘WM’은 미국의 종합 환경 기업 웨이스트매니지먼트의 약자다. 김근호 리코 대표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미국 내 도시 어딜 가나 WM 마크가 있는 것을 보고 자랐다. 김 대표가 병역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정보기술(IT) 벤처기업에 근무할 때 폐기물 시장에서 WM과 같은 규모 있는 회사가 한국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대표가 폐기물 관리에 흥미를 갖게 된 배경이다. 이후 김 대표는 폐기물 회사에 짧게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산업 폐기물을 원스톱으로 처리해 주는 회사 ‘리코’를 창업했다. 리코는 자원 순환의 연결고리를 잇겠다는 의지를 담은 ‘리소스 커넥터(REsource COnnector)’의 준말이다.

WM은 건설 회사에서 글로벌 환경 기업으로 거듭난 SK에코플랜트의 롤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리코는 SK에코플랜트가 개최한 환경 관련 스타트업 경연 대회 ‘SK 에코 이노베이터스 Y21’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폐기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자원이 될 수도 있고 소각·매립하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폐기물이 자원이 되려면 현재 따로따로 분절된 고객과 공장 등 각 영역을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박스로 폐기물 측정 시작

김 대표의 타깃은 민간 폐기물 시장이다. 현재 한국 폐기물 시장은 공공이 30%, 민간이 70%를 차지한다. 공공은 가로변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처리하고 민간은 영리 활동을 하며 폐기물을 발생시킨 기업이 업체에 위탁해 처리한다. 김 대표는 민간 시장에서 기업의 페인포인트가 무엇인지 살펴봤다. 그 결과 민간 시장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데이터 트래킹이나 데이터 관리가 충분히 커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동안 폐기물 시장은 지역 단위 소규모 사업자들이 영위하는 시장이어서 기업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받는 경우가 없었다.

‘업박스’는 정확한 폐기물 측정을 위해 리코가 고안한 폐기물 박스다. 김 대표가 직접 보여준 업박스 축소 모형 내부에는 눈금이 그려져 있었다. 고객의 사업장으로 맞춤 제작한 용기를 보내 정확한 양을 측정한 다음 폐기물을 자가 물류 체인을 통해 네트워크 내 재활용 공장으로 운반하고 이 공장에서 최종 배출한 폐기물의 정확한 양과 재활용된 양을 측정하면 이를 데이터화해 관리 사업장별·월별·배출량별 데이터를 고객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해 준다. 즉 리코는 고객에게 △폐기물 배출 환경 진단 △수거함 설치 △종합 폐기물 배출 관리 △수거 용기 관리(고온·고압 세척)까지 원스톱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체중을 관리할 때 먼저 몸무게를 재듯이 제대로 된 관리를 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고객에게 폐기물은 재무적 비용으로만 인식됐고 저렴한 비용에 처리해 주기만 한다면 어디에 버리든 그리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폐기물은 재무적 비용이자 사회적 비용이기도 하다. 2020년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된 뒤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면 운반 업체뿐만 아니라 폐기물 발생 기업까지 처벌받게 됐다. 불법 폐기물을 마음대로 버리다 적발되면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는다. 여기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폐기물을 ‘잘’ 버리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기업이 발생시키는 탄소량에 대한 규제로 이를 저감하거나 상쇄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따라서 예전처럼 얼마만큼 버렸는지보다 어느 공장에서 얼마나 재활용돼 자원 순환에 기여했고 그 결과 탄소 저감을 얼마나 했는지도 중요해졌다. 즉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면서도 탄소 배출량 측정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산정하는 것이 최근 많은 사업자의 고민이다. 리코는 월별 폐기물 배출량과 함께 재활용한 자원량과 절약한 물, 줄인 온실가스 양을 대시보드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앞으로는 1년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게끔 만들 예정이다.

올해 1월 기준 리코와 함께한 사업장들이 줄인 온실가스량은 9710톤 CO₂e(탄소 환산량)에 이른다. 리코는 퇴비, 곤충 사료, 바이오 가스화 등 폐자원의 통합 관리 과정상의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업박스 임팩트 스코어(UBIS)지수도 제공한다. 김 대표는 “기업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바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데이터를 통한 폐기물 시장의 디지털 전환(DT : 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강조했다.

리코의 업박스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리코 제공

쿠팡 로켓 배송처럼 사진 ‘찰칵’

지난 3월 기준 리코의 고객은 1200곳에 이른다. 호텔·복합몰·식품공장·물류센터 등 업종은 매우 다양하다. 폐기물이 발생하는 모든 곳은 잠재적 고객이다. 종이·캔·병·비닐 등 다양한 쓰레기를 리코가 각각의 물류차로 보내 원스톱으로 처리해 준다. 리코는 고객 대상 접점 관리뿐만 아니라 물류, 차량 운전, 파트너인 폐기물 재활용 업체와의 협업까지 전 과정을 물 흐르듯 처리해야 한다. 김 대표는 물류와 차량 운반을 한다는 점에서 쿠팡의 로켓 배송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폐기물을 배송할 때 사진을 찍는 것도 로켓 배송과 비슷하다. 폐기물 양에 따라 비용이 산정되기 때문에 폐기물이 나오면 정확한 양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보내주는데 로켓 배송이 오면 물건이 잘 왔는지 사진을 보내주듯 사진을 찍어 주는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고객 신뢰를 쌓기 위한 일환이다. 비용 절감도 중요하다. 리코를 이용하면 기존보다 평균적으로 15% 정도 폐기물 처리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특별히 싸게 해서가 아니라 눈대중으로 반 통, 한 통 등으로 측정됐던 폐기물을 정확하게 측정해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리코는 폐기물 관리에 필요한 서류 행정 작업도 대신 해준다. 기업이 작성해야 하는 폐기물 관리 대장이나 폐기물 억제 및 처리 계획 신고서도 있고 기업이 처리해야 하는 인허가 업무도 있는데 자동화돼 있지 않다. 이른바 전사적고객관리(CRM)·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이 없다. 리코는 이를 솔루션에 내재해 업무의 자동화를 유도, 고객사가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소요된 시간을 기존 대비 90% 줄여 준다. 또 수십 개 지점의 폐기물을 예전에는 본사에 가져가 처리했다면 이제는 지점마다 수거하면서 앱으로 실시간 과정을 트래킹하고 본사 차원에서 관할 지점별 혹은 사업소별 폐기물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도 제공해 준다.

김 대표는 “리코 같은 서비스가 사회적 미션을 가지고 성장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고객이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페인포인트에 집중해 서비스를 만드는데 고객의 관점에서 친환경과 자원화뿐만 아니라 효율화·자동화·투명화를 함께 달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업박스를 통해 폐기물의 정확한 양을 축정하고 있다. 사진=리코 제공

물류 비효율 해결은 과제

2019년 설립된 리코의 투자 유치액은 156억5000만원이다. 지난 한 해 이례적으로 시리즈 A, B투자를 한 번에 받아 눈에 띄는 성과를 올렸다. 구독 서비스 기반으로 앞으로 손익 분기점은 2년 후 정도로 보고 있다.

큰 비용은 주로 폐기물 처리를 위한 물류와 차량 운반에 들어간다. 폐기물 시장은 시장의 성장보다 안정적 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모델로 진입하기에 장벽이 있는 편이다. 리코는 현재 폐기물 수거 운반 업체로 허가받아 물류를 하다 보니 폐기물관리법상 차량을 소유해야 한다. 전 차량을 리코가 자체 구매하면서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김 대표는 “차량이 100% 소유가 아니어도 사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폐기물을 한 번에 운반하는 방법이 법적으로 막혀 있다. 다양한 폐기물을 한 번에 운반하면 비용이 절감되는데 플라스틱·비닐·유리&금속·종이 등 각 폐기물마다 다른 차량으로 운반해야 한다. 기업이 그동안 4~5개 업체와 한꺼번에 계약해야 했던 이유다. 리코를 이용하면 이를 한 번에 해주는데 리코 역시 사실상 한 번에 4~5대 차량을 운영해 폐기물을 따로따로 각각 다른 곳에 운반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있다. 김 대표는 “힘들지만 많은 투자를 하면서 물류 비효율을 감내하고 있다”며 “책임 관리의 소재 같은 것이 중요하다 보니 법상 의도는 공감하지만 투명하게 데이터화해 트래킹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제공된다면 더욱 효율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앞으로 꿈은 폐기물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진출까지 성공시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드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구체적으로 루비콘글로벌이라는 미국 스마트 폐기물 기업이 벤치마킹 모델이다. 루비콘글로벌은 올해 상장을 계획하고 있고 2조원 정도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만 루비콘글로벌이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라면 리코는 소프트웨어에 물류를 더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김 대표는 리코에 대해 ‘폐기물을 로켓 수거해 주는 쿠팡’에 비유했다. 그만큼 고객의 관점에서의 편리함을 강조한 네이밍이다.

김 대표는 “전 세계 기준 폐기물 처리 면에서 한국은 선진국이 맞다. 섬과 같은 지형적 특성에 따른 필요와 세분화된 폐기물 분류, 시민의식 등에서도 그렇다”며 “이런 곳에서 대표 서비스를 만들고 새로운 기준을 세우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84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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