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6개 작품 연속 100만 장 판매…2차 가공물이 케이팝 글로벌 인기 가속화
[비즈니스 포커스]그룹 세븐틴 멤버들이 어린이날 특집으로 운동회를 열었다. 운동회의 규칙은 멤버 준이 준우승해야 멤버 전원에게 선물이 주어지는 것. 멤버들은 준 몰래 경기를 진행해야 했지만 대놓고 상의하며 승부를 가렸다. 멤버들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한 준은 운동회 자체를 즐거워했고 이를 본 멤버들은 “대놓고 말해도 모른다”며 “너무 귀엽다”고 웃었다.
세븐틴 멤버들의 운동회가 담긴 영상은 카메라 구도와 타이밍을 맞춘 자막까지 TV 예능 프로그램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는 5월 11일 오후 9시 세븐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고잉 세븐틴(GOING SEVENTEEN)’의 ‘준우승 운동회 #2’ 에피소드다. 고잉 세븐틴은 2017년부터 세븐틴이 자체 생산하는 웹 예능 시리즈물이다. 이 콘텐츠는 올해 초 기준 누적 조회 수 3억 회를 기록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선 아이돌이 나오는 경우가 줄고 있다. 고정 멤버가 있는 예능에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이 나가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도 과거와 달리 굳이 방송사 예능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글로벌 팬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기획사들의 핵심 시장도 한국에서 해외로 옮겨졌다. 아이돌 음악 소비의 핵심 팬덤층은 1020인데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한국의 1020 인구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오디오·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케이팝의 청취율은 2018년 이후 미국에서만 107%, 전 세계적으로는 230% 늘었다. 전 세계 월평균 케이팝 스트리밍 횟수는 전년 대비 약 27% 증가해 약 80억 회를 기록했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아이돌
“요즘 아이돌은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자신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답은 ‘아니다.’ 내수에 의존했던 음반 시장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아이로니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요즘 아이돌을 잘 모른다. 히트곡 없는 밀리언 셀러(100만 장 판매)들이 나타나게 된 배경이다.
세븐틴은 지난해 한국의 대표 음원 차트인 멜론 연간 톱 100에 올린 곡이 없었다. 하지만 2019년 9월 발표된 정규 3집 ‘언 오드(An Ode)’를 시작으로 6개 작품이 연속 밀리언 셀러에 올랐다. 최근 발매된 4집 ‘페이스 더 선(Face the Sun)’은 예약 판매 1주일 만에 174만 장이 팔렸다. 4집은 필리핀·브라질 등 22개 국가에서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일본 아이튠즈 앨범 차트 다운로드 부문에선 종합·K팝 장르 모두 1위를 기록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와 스트레이키즈 등 저년차 그룹은 2020년 40만 장의 벽을 뚫었다. 2019년 이전엔 ‘40만 장’이란 기록은 상징적이다. 최소 1개 이상 히트곡이 있고 한국에선 해당 그룹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박다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믹스(NMIXX)도 유튜브 구독자 내 한국인 비율이 4%밖에 안 되는데 히트곡도 없고 오디션 프로를 거치지 않았지만 50만 장에 가까운 앨범 판매를 기록했다. 이 배경에는 글로벌 팬덤 인지도가 높은 4대 기획사 소속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며 “아이돌 음악 소비자 내에서 한국 음악 소비자의 파이가 줄어든 반면 글로벌 팬덤의 영향력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SNS 영리하게 활용한 케이팝
디지털 컨설팅 업체 케피오스(Kepios)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으로 SNS 이용자는 46억2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58.4%다. 디지털에 익숙한 Z세대의 부상과 비대면 활동을 가속화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가 맞물렸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으로 정보와 일상을 공유한다. SNS 계정의 ‘팔로워 수’, 게시물의 ‘조회 수’가 인기와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됐다. 케이팝 스타들이 SNS에서 각종 콘텐츠를 선보이는 이유다.
케이팝 문화가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데는 무한 생산되는 2차 콘텐츠의 역할이 컸다. 과거 팬들이 음악을 소극적으로 듣기만 했다면 요샌 케이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안무와 퍼포먼스 댄스를 직접 따라하며 2차 가공물을 만든다. ‘경험 소비’다.
최근 틱톡이 이 같은 케이팝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는 모습이다. 틱톡은 최대 10분짜리 짧은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동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아티스트들은 팬들과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창구로 틱톡 ‘챌린지’를 활용한다. 챌린지는 플랫폼이 특정 주제를 제시하면 이에 맞춰 유저들이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는 형식이다. 최근 유행은 전소미의 ‘지글 지글(Jiggle Jiggle)’ 챌린지다.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제니‧리사도 세븐틴의 디노도 영상을 업로드하며 챌린지에 동참했다. 반면 일반인이 직접 만든 댄스 챌린지로 해당 곡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룹 엔하이픈의 ‘폴라로이드 러브’ 등이다.
성공적인 사례는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다. ‘아무노래’는 틱톡의 댄스 챌린지 인기로 2020년 멜론 연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엔 가수 싸이의 ‘댓 댓(That That)’ 챌린지가 총 조회 수 7억6500만 뷰를 돌파하며 국내외 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다. 정규 9집 ‘싸다9’의 타이틀곡 ‘댓 댓’은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최신 차트(5월 28일자) 가운데 세계 200여 개국의 스트리밍과 판매량을 집계해 순위를 내는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 66위,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100에선 61위에 진입했다. 한국의 음악 방송에서도 총 6관왕에 올랐다.
박 연구원은 “틱톡 이용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이런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추천받으며 음악을 ‘청취’ 대상이기보다 콘텐츠 (재)창작을 위한 ‘재료’로 활용한다”며 “틱톡은 미국‧영국에선 사용자당 체류 시간을 기준으로 이미 유튜브를 넘어섰다. 케이팝이 틱톡을 디딤돌 삼아 또 한 번 도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돋보기
3단계로 나눠 본 케이팝의 세계화
케이팝의 세계화를 3단계로 나눠보자. 우선 케이팝 세계화 1.0 단계. 케이팝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넘어 해외로 뻗어나간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보아(2000년), 동방신기(2003년) 등이다. 2007년엔 소녀시대·원더걸스·카라 등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했다. 당시 원더걸스가 미국 시장에서 단기적 성과를 거뒀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지는 못했다.
다음 케이팝 세계화 2.0 단계. 케이팝의 글로벌 경쟁력은 해외 국적의 가수를 영입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예컨대 트와이스에는 미나·사나·모모·쯔위가, 블랙핑크에는 리사가 있다. 해당 멤버의 국가에서 각종 뮤직 비디오(MV) 조회 수 등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 현지 가수와 합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작은것들을 위한 시’에서 팝 가수 할시가 피처링하고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에 할리우드 스타 셀레나 고메즈가 피처링을 한 것도 넓은 범위에서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엔 현지인들로만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나왔다. 케이팝 세계화 3.0 단계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과 손잡고 일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한 니쥬와 중국인 또는 중국계로 구성된 SM엔터테인먼트의 웨이션브이(WayV) 등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