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친구 '로봇'을 만드는 그녀 [강홍민의 굿잡]

유혜란 도구공간 로봇 디자이너

△유혜란 도구공간 로봇디자이너.


‘내 소원을 조건 없이 들어주는 로봇친구가 있다면···’ 어릴 적 도라에몽을 보면서 떠올렸던 생각이다. ‘내가 만약 진구였다면 어떤 소원을 부탁했을까’라는 상상으로 잠 못 이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도라에몽과의 만남을 꿈꾼다. 아직 소원을 이뤄주는 로봇이 개발되진 않았지만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고 빈 접시를 치우는 서빙로봇이나 산업현장에서의 순찰로봇은 이제 더이상 어색하지 않은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 로봇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가운데 로봇공학자, 엔지니어 등 로봇과 관련된 직업군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로봇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봇 디자이너는 인간과 서로 공존하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로봇의 외형을 디자인하는 직업이다. 지능형 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도구공간’에서 친근한 모습으로 인간이 하기 어려운 역할을 수행해내는 로봇 ‘이로이’를 디자인한 유혜란 로봇디자이너를 만났다. 그가 바라보는 로봇 디자이너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로봇 디자이너’는 로봇의 외형을 만드는 직업인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습니다. 로봇 디자이너는 로봇의 생김새를 만드는 일이에요. 로봇은 다들 아시겠지만 구동시스템에 각종 센서들을 조화롭게 장착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인데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할 로봇인지를 정하면서 로봇 디자인도 정해지는 형태예요.”

직접 디자인한 로봇이 아주 귀엽네요. 어떤 로봇인가요.
“‘이로이’라는 친구예요. 이로운 일을 하는 로봇이라는 뜻의 한글이름인데, 제가 지었어요. 로봇뿐만 아니라 여느 제품을 디자인할 때도 주문을 먼저 받아요. 이를 테면,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주문이죠. 로봇의 경우, 팔 다리가 있을 수도 있고, 머리가 없을 수도 있겠죠. 이로이는 자동차 부품 공장부터 문화센터 같은 곳에 출근하고 있어요. 앞으론 병원이나 더 다양한 곳으로 갈수도 있고요.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이로이를 접했을 때 거부감이 들지 않는, 친근한 외형으로 디자인하자는 게 주문이었죠.”

이로이의 기능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여러 기능들을 탑재했어요. 우선 카메라가 전후좌우 탑재돼 있어 360도를 관찰할 수 있고, 모니터링이 가능하죠. 그리고 자율주행이 가능하고, 화재감지나 환자 및 긴급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산업 현장에서 화재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고를 인지하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제센터에 전송해주는 역할도 가능해요. 또 문화센터나 병원에서는 동영상 재생 및 지도 찾기 등 안내 역할도 할 수 있고요. 로봇이라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넓어지죠.”

어떻게 보면 ‘이로이’는 여러 가지로 활용 가능한 로봇으로 디자인되었네요. 그럼 디자인할 때도 여러 활용범위를 고민해야했겠는데요.
“그렇죠. 이로이는 순찰부터 방역·안내 역할을 할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로봇 디자인은 로봇의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로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머리를 없애거나 일자 형태로 변환해 물건을 실을 수 있도록 말이죠.”


“리서치-아이데이션-스케치-모델링-랜더링 순으로 로봇 디자인 진행
디자인은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할 아이디어를 내는 전 과정을 의미“




로봇 디자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 리서치-아이디에이션-스케치-모델링-랜더링 순으로 진행돼요. 이로이 역시 디자인에 앞서 레퍼런스 리서치를 했는데, 현재 출시된 로봇 그리고 큰 가전제품들의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대형 가전제품의 사이즈가 로봇과 비슷하고 여러 기능들이 탑재돼 있어 도움이 됐죠.”

디자이너가 직접 자료 리서치를 하는 경우가 많나요.
“큰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엔 리서치를 하는 팀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가 꼭 체크해야할 부분이에요. 디자이너는 리서치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점을 마련해 디자인에 적용시키는 역할이에요. 문제를 풀어나가고 아이디어를 내는 모든 과정이 디자인이라고 보는 거죠.”

보통 리서치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사용자 조사부터 작동성에 관한 데이터 수집 등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리서치 기간이나 양의 차이가 있어요.”

일반 제품과 로봇의 리서치 방식이 다른가요.
“제 경우엔 제품 디자인을 할 땐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줘야 하는 리서치 자료를 만들었어요. 하나의 제품 디자인을 위해 이만큼의 데이터를 준비했다는 걸 어필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문서화하는 거죠. 반면 도구공간에서는 내부에서 활용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리서치 프로세스는 비슷하지만 로봇을 직접 만들 팀원들과 저 스스로가 잘 이해하기 위해 준비한 거라 조금은 차이가 있어요.”

스케치 단계에 들어간다는 건 기술적으론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건가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즉, 로봇의 사양은 정해져 있는 상태예요. 기구 설계 파트는 외형이 어느 정도 나와야 가능하고, 전기 장치 파트는 디자인과 함께 개발이 진행돼요. 전기 장치 파트는 로봇의 기능이 추가될수록 아주 복잡한 회로가 설계될 수밖에 없어요. 이로이의 경우에도 수 대의 카메라와 PC 두 대를 운용해야하기 때문에 내부는 아주 복잡하죠.”


“여러 버전의 디자인 샘플을 만드는 스케치 단계···각 샘플의 장단점을 비교해 최적의 모델 선정
디자인으로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게 가이드 해주는 역할이 디자이너“




스케치 단계에서의 특징은 뭔가요.
“우선 로봇의 디자인 콘셉트를 몇 가지 안으로 만드는 게 스케치 단계인데요. 각각 다른 스케치 안을 만들어 놓고 아이데이션 단계로 넘어가게 되죠. 예를 들어, 10개의 스케치 안을 두고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면서 우리가 생각한 로봇의 역할과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그 안에서 세 가지 정도 추려 모델링 작업으로 넘어가게 되고요. 모델링 작업을 거치게 되면 스케치와는 달리 훨씬 입체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디자인의 시각화 작업인거죠.”

모델링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기다리고 있나요.
“그렇게 디자인이 결정되면 목업 과정을 거쳐요. 실제 운용은 안 되지만 실사 느낌의 샘플을 만드는 거죠. 그 이후에도 수정 반복을 거쳐 완성품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로봇을 만드는 데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 보이네요.
“가전제품도 마찬가지겠지만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에요. 그들에게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 같아요.”

10년의 경력 중 산업디자인을 오래 하셨어요. 로봇디자인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산업디자인과 비슷하지만 로봇은 제품과 달리 하나의 인격체처럼 인간과 교감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요. 기능적인 면, 심미적 표현 외에도 문화, 감성적인 융·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죠.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양산 개념이 달라요. 로봇은 아직 대중적으로 안정화된 제품이 아니다 보니 테스트 이후 업데이트 주기가 상당히 짧아요. 새로운 시도나 융합적인 구조에 흥미를 느낀다면 로봇디자인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을 표현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표정이에요. 로봇의 표정. 사실 처음 이로이를 디자인할 때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작업하면서 표정이 중요하다고 느껴졌고, 누군가 이로이를 봤을 때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첨엔 눈을 깜빡거리게 만들었는데, 무섭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좀 더 다양한 표정들을 추가했죠.”

산업디자인에서 로봇 디자이너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적부터 로봇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었어요. 어릴 땐 정말 도라에몽과 같이 사는 게 꿈이었거든요.(웃음) 디자인 전공 후 로봇 분야의 발전을 늘 관심 있게 보던 중에 도구공간을 알게 되면서 도전하게 됐어요.”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분야, 용어 등 디자인 업계와 분위기 달라···
기술과 디자인이 접목되는 새로운 분야, 로봇 수요가 늘어나면서 로봇 디자이너 가치도 동반 상승"


분야를 옮기면서 어려웠던 부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많았죠. 첨엔 로봇을 예쁘게 만들 생각만 했었는데, 센서나 카메라 위치, 로봇의 크기 등 아주 세밀하게 계산해 만드는 과정을 보고 놀랐어요. 그리고 쓰는 용어가 완전 달라 애를 먹기도 했죠. 저희 회사엔 박사님들이 많은데, 첨에 왔을 때 논문을 주제로 애기하는 걸 듣는데 난감하더라고요. 지금부터 공부를 한다 해도 저들의 대화에 못 낄 것 같은, 잠깐이라도 끼면 번아웃이 올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영 못 알아들으면 안 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접근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서로 미팅하면 용어는 다 알아들어요.(웃음) 디자이너 중에 이 분야로 오신다면 개발 용어를 미리 파악하고 오시는 걸 추천해요.”

각자의 업무파트가 달라서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일부일 수 있겠지만 디자이너는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엔지니어들은 숫자나 기술 기반으로 표현을 많이 하죠. 그래서 여기에선 추상적인 헛소리를 좀 덜하게 돼요. 개인적으론 서로 다른 용어를 써서 그런지 신선하고 배울 점이 있어 좋아요.”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군이 존재하는군요. 도구공간의 근무환경, 분위기는 어떤가요.
“자율적인 편이에요. 소통하는 일이 많은데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고, 반대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스킬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죠. 서로 소통하고 제안하면서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이 디자인회사와의 차이점이라 볼 수 있어요.”

연봉은 어느정도인가요.
“제가 알기론 아직 로봇 디자이너의 특정 연봉이 존재하진 않은 것 같아요. 반면에 제품 디자이너처럼 능력이나 포트폴리오에 따라 차이는 있어요. 분명한 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로봇 분야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고, 타 분야에 비해 지루함이 빨리 오지 않는 곳이기도 해요.”

이 직업의 매력을 꼽는다면요.
“로봇이라는 지능형 존재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없던 생명체를 창조해냈다는 뿌듯함과 보람이 있고요. 사람들이 로봇을 얘기할 때 이름을 불러주고, 어린이들도 친근하게 인사하고 만져줄 때 묘한 감동을 받기도 해요.”

로봇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은 물론,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 중에서도 이 분야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경험자로서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나요.
“디자인 전공자나 현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단, 로봇을 좋아한다면요. 로봇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삶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삶의 관심은 어떤 의미일까요.
“살면서 겪는 사소한 불편함이나 궁금증, 호기심들이 많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봇은 불편한 부분을 해소해주거나, 상상만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잖아요. 삶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다 보면 누군가에 꼭 필요한 로봇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로봇에겐 하나의 인격체가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그런 관점에서 로봇디자이너는 로봇의 외형뿐만 아니라 로봇이 가질 캐릭터까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성격을 가진 로봇을 만들지 디자이너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죠.”

로봇 디자이너의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나요.
“로봇 분야를 경험할수록 포괄적인 면을 이해하고 센스 있는 디자이너가 꼭 필요한 분야라 생각돼요. 점점 로봇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세분화되는 추세라 로봇 전문 디자이너의 수요도 늘어날 것 같아요. 특히 앞으로는 목적에 맞는 로봇들이 늘어나 더 많은 기능과 교감능력이 탑재된 도라에몽, 베이맥스, 윌-E 같은 친구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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