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감소세로 인력난 심화…‘2차전지, 비상장’ 등 신성장 산업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
[비즈니스 포커스]“애널리스트 경력직 인재 채용합니다.”
리서치센터의 인력 수급난이 심화되고 있다. 각 증권사 리서치센터 간 뺏고 뺏기는 인재 경쟁은 물론 한 회사의 조직 간 내부 영입 경쟁, 스타트업이나 이종 산업으로의 인재 유출까지…. 한때 ‘증권사의 꽃’으로 불렸던 애널리스트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둥지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연구원 규모, 세 자릿수로 하락
애널리스트의 이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애널리스트업의 특성상 이직이 빈번하게 발생뿐만 아니라 이직 현황이 보고서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이직의 연구 대상’에 오른 적도 많다.
2012년 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애널리스트의 이직률은 11%가 넘는 수준으로, 미국 애널리스트 이직률인 3.8%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과거의 이직이 증시 활황기에 따른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으로 마치 지금의 ‘개발자 인재난’과 유사하다면, 최근 애널리스트의 인재난은 전체 인력 감소에 그 원인이 있다.
6월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한국 증권사 수는 총 59곳, 전체 애널리스트는 총 1029명이다. 2019년 1094명에서 2020년 1078명, 지난해 1040명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말부터 올 상반기 한때 세 자릿수까지 인원이 급감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 다시 1000명대의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감소하게 된 배경은 다양하다. 과거 증시 활황기엔 한국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수억원대의 연봉자가 나올 만큼 증권사의 꽃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증권사의 수익 구조가 브로커리지(주식 위탁 매매 수수료)에서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쪽으로 이동하면서 증권사 역시 IB와 WM부문 강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 금리 인상과 주식 시장 둔화로 거래 대금이 감소 추세를 보이면서 브로커리지 외 IB와 WM이 증권사의 미래 동력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법인 영업 지원 업무를 하는 리서치센터의 외형이 작아지고 있다.
업무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한 애널리스트는 “백조가 물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하게 발장구를 치고 있는 것처럼 애널리스트도 그렇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출근해 오전 미팅에 참여하고 시차가 다른 현지 관계자들과의 전화 회의도 이어진다. 기업체 방문이나 보고서 작성, 기관투자가나 펀드매니저와의 만남 등을 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금방 찾아온다. 주52시간 근무제로 PC에서는 종료하지만 법망을 피해 또 다른 PC로 연장 근무를 하는 일이 허다하다.
여기에 인력이 줄고 신산업이 늘면서 1인당 담당해야 할 분야도 많아졌다. 지난해 다른 업계로 전직을 선택한 한 애널리스트는 “연봉은 애널리스트일 때가 더 높았지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다”며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삶을 살다 보니 ‘아침이 있는 삶’이 온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대가 바뀌면서 직업의 선택지가 넓어진 것도 애널리스트가 급감한 이유다. 이전까지 주가를 움직이는 미다스의 손이자 투자 위험을 줄여 주는 증시 조언자의 역할이 애널리스트의 몫이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1인 미디어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장외’ 주식 투자 전문가들이 급증했다. 애널리스트 역시 유튜브 등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회사 소속일 때보다 스타 유튜버로서 더 큰 부와 명예를 얻기도 한다.
품귀 현상, 업무 재배치 등 고민 깊어져
전체 인원이 줄면서 애널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증권사 간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 신한금융투자에선 DS투자증권으로 애널리스트가 3명 이동했다. 신한금투에서 은행과 지주회사 부문을 담당하던 김수현 애널리스트가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둥지를 옮겼다.
김 센터장은 2008년부터 14년간 신한금투에 몸담았고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도 수차례 이름을 올렸다. 김 애널리스트와 함께 신한금투에서 비상장·스몰캡 부문을 담당하던 조대형 애널리스트와 금융·핀테크를 담당하던 나민욱 연구원이 DS투자증권을 선택했다.
앞서 신한금투에서 조선·기계·운송을 담당한 황어연 애널리스트는 노무라금융투자로 지난 4월 이직했다. 황 애널리스트 역시 신한금투 재직 당시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수차례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신한금투도 최근 대신증권의 이동헌 애널리스트가 신한금투로 옮겨 공석인 조선·기계·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도 최근 증권·보험 부문의 이홍재 애널리스트가 현대차증권으로 이직하면서 해당 분야 애널리스트 채용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각광받는 신성장 산업일수록 러브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리서치센터마다 하는 업무가 비슷하다 보니 연봉에 따라 둥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증권사 간 경쟁보다 더 치열한 것은 타 업종으로의 전직이다. 아예 핀테크나 스타트업으로 과감한 도전을 선택한 이들도 많다. 지난해 7월 이민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가 두나무로 옮겼고 올해 1월 노경탁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다날핀테크의 신설 조직으로 이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KB증권에서 매크로를 담당하던 김두언 애널리스트는 로보어드바이저인 두물머리로 이직했고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다이어트 및 간편 건강식 전문 플랫폼을 운영하는 푸드나무로 옮기는 등 스타트업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
잦은 이탈에 리서치센터를 이끄는 수장들의 고민도 깊다. 특히 업무 재배치에 고심 중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전통 산업의 비율은 낮추고 신성장 산업 쪽으로 애널리스트의 비율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광 받는 신성장 분야는 2차전지 섹터와 해외 주식과 비상장 주식, 디지털 자산 분야다. 산업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전문 애널리스트가 빠르게 분석해 트렌드를 좇아야 하지만 이 역시 인력 부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해당 분야의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