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욕망을 파는 마케팅, 그 정점에 있는 도시의 공간들

[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멋진 카페가 있는 최고의 미술관이 아닙니다. 멋진 미술관이 있는 최고의 카페입니다.”

1988년 영국 런던에 있는 100년 역사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이런 광고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문화·예술이 소비자 경험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광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즘 상황을 생각해 보면 하나의 암시처럼 느껴집니다. 미술관 같은 레스토랑과 카페의 등장, 전시장과 결합해 레스토랑 자체가 볼거리가 되는 현상 말입니다.

한 도시나 지역을 상징하는 공간은 대형 건물이나 구조물입니다. 파리의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런던아이 등…. 서울은 N서울타워나 경복궁쯤 될까요? 이들을 도시의 아이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요즘 뭔가 좀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도시의 주인공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도시를 찍습니다. 대형 건물이 아니라 골목길·카페·레스토랑 등이 화제가 되면 그 동네의 아이콘이 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의 출점 전략으로 본 부의 지도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부동산이나 유통에 대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욕망에 대한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욕망이라는 언덕 위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그 욕망을 부채질하는 게 상품과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은 욕망에 영향을 주고 욕망을 이해하고 욕망을 앞서가며 욕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 곳곳에 들어선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는 철저히 이 정의를 따릅니다. 남들 다 다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곳 같은 느낌을 주도록 설계합니다. 그곳에 다녀왔다는 만족감을 줌으로써 과시적 욕망을 충족시킵니다.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점입니다. 과시는 소비의 근원인기도 합니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우리는 재산이나 지능·건강·매력 등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지위를 높이기 위해 상품을 소비한다”고 주장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고급 슈퍼마켓인 청담SSG마켓에 즐비한 전 세계에서 온 낯선 식자재와 향신료도 이런 과시적 소비를 자극하는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능에도 충실합니다. 비싼 레스토랑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구조는 안쪽 방에 큰 창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 인류의 조상이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위험한 무언가와 마주치지 않고 위험 요소를 빨리 발견할 수 있는 탁 트인 조망 말입니다. 인류의 고향인 사바나 초원은 이런 전망과 은신처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이 이 구조를 갖고 있고 사람들이 베란다가 있는 곳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품 브랜드인 샤넬과 브라이틀링이 한남동에 레스토랑을 연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왜 음식점일까. 음식은 가장 오래된 본능적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동물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칼로리를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매일 225번의 음식 관련 결정을 내리고 59번은 음식에 대한 구체적 결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본능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브랜드 안에서 해결하라는 마케터의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아, 또 하나. 한남동은 신흥 부촌입니다. 다른 부촌과 달리 젊음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명품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를 겨냥하기 딱 좋은 장소라는 얘기지요.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비하면 스타벅스 리저브나 파리크라상은 작은 욕망을 총족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떼기시장같지 않은 차분하고 널찍한 나무 색깔 공간 속에서 바리스타가 내려 주고 설명해 주는 커피 한잔, 빵의 본고장에서 온 밀로 만든 빵을 먹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말이지요.

얼마 전 대통령이 찾아 화제가 됐던 비싼 레스토랑을 기억하는지요. 오래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주한외국인 대사 부인들의 사교장으로 쓰인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어서인지 비싼 음식보다는 그곳에 다녀왔다는 경험 자체가 더 크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맺으려 하니 의문이 듭니다. 그런 품격 있는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다니는 또 하나의 부류가 있다면 한국의 정치인들일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의 말에서는 전혀 품격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도배질·개소리·철퇴·수박·똥파리 등 막말이 난무합니다. 레스토랑의 품격은 손님이 만들기도 한다는데….

잠깐 주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품격을 팔고 도시나 지역은 이들을 하나의 자산으로 추가하게 되는 셈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경험도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편한 사람과 먹는 설렁탕과 순댓국 한 그릇 그리고 어머니가 힘든 몸을 이끌고 자식들 왔다고 해주는 집밥 한 끼의 가치도 그에 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맺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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