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재건축 잠룡’ 여의도, 60층 초고층 아파트 숲 잰걸음
입력 2022-06-21 06:59:47
수정 2022-06-21 06:59:47
시범·한양·삼부아파트 신통기획으로 재건축 추진…공작아파트는 정비구역 지정 노려
‘재건축 잠룡’ 여의도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아파트가 60층 높이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나섰고 여의도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역시 일찌감치 시범아파트와 함께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했고 최근 여의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삼부아파트도 재건축 대열에 동참했다. 인근 공작아파트는 정비구역 지정에 도전한다.
5년간 꽉 막혔던 여의도 재건축의 물꼬를 튼 것은 서울시의 정비 사업 패스트 트랙 정책인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개발과 재건축을 부동산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자 여의도 정비 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서울시가 주거용 건축물의 층고 규제인 ‘35층 룰’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시장에서는 한강변 스카이라인 개벽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오 시장 1기 시절 ‘한강 르네상스’ 정책에 따라 건립된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56층)’,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47층)’ 이후 50층 아파트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22개 중 16개가 노후 아파트
여의도 내 22개 아파트 단지 중 16곳은 모두 준공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다. 이미 재건축 연한 기준 연한인 30년을 넘어선 지 오래다. 여의도에 가장 먼저 들어선 시범아파트는 준공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서울의 대표적 노후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1979년)와 잠실 주공5단지(1978년)보다 나이가 많다.
시범아파트는 여의도 내 재건축 단지 중 현재까지 사업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르다. 지난해 하반기 신통기획 참여 단지에 선정되면서 여의도 랜드마크 단지로 조성될 계획이다. 신통기획은 민간 주도 개발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서울시가 정비 계획 수립 초기 단계부터 각종 계획과 절차를 지원하는 제도로, 작년 오 시장이 정비 사업 정상화를 위해 도입했다. 서울시는 지상 최고 13층, 1578가구인 시범 단지의 용적률을 400% 이하로 끌어올려 최고 60층으로 짓는 계획안을 마련했다. 현재 3종 주거지역인 용도를 준주거나 상업 지역으로 상향해 용적률을 높일 계획이다. 서울시가 이런 계획을 적용하면서 1584가구는 2400여 가구로 재건축된다. 조망권을 고려해 한강변과 가까운 동의 층고는 30층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1975년 지어진 한양(588가구)도 시범과 비슷한 속도로 신통기획을 통해 용적률 600% 이하, 지상 최고 50층짜리 1000여 가구 이상 대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구체적인 기부채납(공공 기여) 방식 등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하반기 주민 공람 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한양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신통기획안 간담회를 열었다. 서울시가 마련한 여의도 아파트 정비 계획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신통기획에 합류한 삼부아파트는 여의도에서 시범아파트 다음으로 가구수가 많다. 1975년 준공됐고 15층 10개동 866가구 규모다. 여의도초, 여의도중, 여의도고가 도보 10분 이내에 있어 학군 수요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여의도 아파트지구 11개 단지를 8개 특별계획구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반주거지역인 이들 단지에 기부채납을 전체 면적의 최대 40%까지 받는 대신 용적률을 대폭 끌어올리는 안이었다. 다만 소규모 단지 간 통합이 전제 조건이었다.
단지 간 통합 재건축 논의는 삼부·목화에서 가장 먼저 이뤄졌다. 앞서 서울시는 866가구 규모의 삼부아파트와 327가구 규모의 목화아파트를 통합 재건축하고 한강변인 목화아파트 부지 전체를 수변 문화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목화아파트 주민들은 한강 조망권을 포기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발한 이후 사업이 답보 상태였다.
삼부아파트는 단독으로 신통기획을 추진하겠다며 지난해 서울시에 신청서를 냈지만 보류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16일 신통기획 신청이 보류된 단지 중 처음으로 재검토를 거쳐 다시 선정됐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을 위해 안전진단 등 규제가 완화되면 재건축 시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본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여의도는 주거환경이 악화됐음에도 그동안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사업이 딜레이 돼 왔다"며 "여의도는 신통기획을 추진하지 않고 재건축 지구로만 지정이 되면 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을 따지는 과정에서 신통기획에서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직주근접·상권·교통을 모두 충족한다. 여의도 업무지구는 광화문·강남과 함께 서울 3대 업무지구로 꼽힌다. 금융권이 몰려 있고 방송국과 기업들이 여의도에 모여 있다. 강남이나 광화문 업무지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권이다. 여의도는 그동안 ‘유통 불모지’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백화점 ‘더 현대 서울’이 개장하면서 달라졌다. 더 현대 서울은 개장 첫 주말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연 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교통 역시 여의도의 강점이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에는 다양한 버스 노선이 지나간다. 차로도 서울 전 지역으로의 이동이 수월하다. 위로는 강변북로가 지나고 아래로는 올림픽대로가 이어 강남과 강북 어디로든 이동하기 쉽다.
9호선으로 강남과 연결되고 5호선으로 광화문과 연결되는 여의도에는 올해 또 한 번 교통 호재가 있었다. 최근 서울대입구역과 여의도를 연결하는 신림선이 개통했다. 2025년에는 안산과 여의도를 잇는 신안산선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 무엇보다 서울 노른자위 땅의 제1 원칙인 ‘한강변’이다. 여의도가 ‘재건축 잠룡’으로 불리는 이유다.
천지개벽 ‘한강 르네상스’ 재연될까여의도 재건축 대장 아파트인 시범·한양·삼부아파트가 재건축에 속도가 붙으면서 인접한 다른 단지들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근 목화·삼익·은하·장미·화랑·대교 등 다른 단지들도 모두 1971~1978년에 지어져 준공 40년이 넘었다. 이 중 목화·미성·수정 등 3개 단지는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았고 대교·진주·공작·삼익·은하·장미·서울·화랑·초원 등 10개 단지는 추진위 미승인 상태다.
인접한 ‘화랑·장미·대교’ 역시 통합 재건축 논의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공작아파트는 노후 아파트 단지 가운데 첫째로 정비구역 지정에 도전한다. 올해로 준공 47년 차를 맞은 공작아파트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8년 서울시 심의에서 두 차례나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공작아파트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화 상정을 요청하면서 영등포구청에 정비계획안을 올렸다.
현재 서류를 검토 중인 서울시는 여의도 금융지구에 속해 있는 공작아파트의 정비계획안이 상위 계획인 ‘여의도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과의 정합성이 인정되면 도계위에 상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제출된 정비계획안대로라면 현재 최고 12층 373가구 규모인 공작아파트는 최고 49층 555가구 규모로 탈바꿈한다. 일반상업지역에 자리한 만큼 아파트뿐만 아니라 금융업무·지식산업센터와 판매 시설 등도 함께 들어설 계획이다. 현재 여의도 16개의 노후 단지들 중에서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계위를 통과한 사례는 없다.
여의도 재건축이 처음 공론화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오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를 추진하면서 여의도 정비 사업이 탄력을 받았지만 부동산 침체와 정권 교체로 무산됐다. 2018년에는 박 전 시장이 여의도와 압구정을 ‘통개발’하기 위해 단지 단위의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이후 집값이 급등하면서 잠정 보류됐다.
하지만 오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재건축 활성화에 나서면서 5년 만에 여의도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이번 6·1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과 시의원이 대거 당선되면서 ‘오세훈표’ 부동산 정책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