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2022년 노키아의 몰락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2-06-18 06:00:08
수정 2022-08-03 09:56:38
[EDITOR's LETTER]
전자업계를 취재하던 2009년, 노키아는 넘사벽처럼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팔리는 휴대전화 두 대 중 한 대는 노키아 브랜드였습니다.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노키아는 핀란드의 상징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에도 당당히 살아 남았습니다. 삼성이 노키아의 절반을 팔면 잘했다고 칭찬받던 시절. 2011년까지도 판매 대수 기준으로 세계 1위였습니다. 하지만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화려한 시절을 마감합니다.
필름 카메라 시장의 지배자 코닥의 몰락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코닥은 일찌감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놓고도 출시를 미루다 파산했습니다. 노키아도 비슷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비밀리에 아이패드와 같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태블릿을 개발했지만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2002년에는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투자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경영진이 묻어 버렸습니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은 노키아 몰락의 예고편이었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속도입니다. “저러다 코닥이 망하지”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파산까지 8년 걸렸습니다. 반면 노키아는 세계1위에서 내려와 사업을 매각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 채 안 됐습니다. ‘한 방에 훅 갔다’는 표현을 이런 데 쓰는 것 아닐까요. 달리 표현하면 ‘변화는 서서히 물결처럼 다가와 순식간에 큰 파도로 변했다. 그리고 아이콘 기업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정도가 될 듯합니다.
노키아 휴대전화를 물량으로 제압하며 사업을 접게 만든 회사는 삼성전자였습니다. 판매량 기준 세계1위를 차지한 삼성이 왜 잘됐느냐고 하면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2등 하면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이라 위기”라고 했고 1등 하면 “모든 기업들이 삼성을 노리고 있어 위기”라고 했습니다. 잘하면 “자만심에 빠졌다”고 위기라고 했고 못하면 “이대로 가다가 망한다”고 위기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기업들이 닥친 상황을 조명했습니다. 기업 종말의 4대 기수란 표현은 1980년대 미국 경영학계에서 나온 표현에 따왔습니다. 기업을 위협하는 4대 변수. 전통적으로 경쟁이 없던 항공·금융·통신분야에서 일어난 탈규제, 증가하는 신기술, 자본 시장 자유화와 적대적 인수·합병(M&A), 세계화로 인한 경쟁 영역의 격화 등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방향은 다르지만 위협의 강도는 비슷해 보입니다. 닌텐도와 나이키가 경쟁자가 되는 예측 불가능한 경쟁 구도, 기술의 빠른 진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부상, 흔들리는 세계화,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소비 위축, 중국의 빠른 추격 등이 그렇습니다. 내부적으로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받지도 않을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도 과제입니다.
과거 위협은 비교적 간명했습니다. 대부분 유동성이 문제였습니다. 현금 보유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전기차의 부상과 같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래도 따라갈만 했습니다.
하지만 경쟁 구도, 비용, 기술, 환경, 조직 문화 등 기업의 전략 수립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실질적 위협이고 여기에 속도까지 더해졌습니다.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2020년과 2021년 주가 상승기 한국 시가 총액 상위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는 꽤나 미래 지향적으로 보였습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인터넷 게임 등. 주가 3000은 이를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 반도체는 비메모리 부문의 약점이 부각되고 바이오는 큰 진전이 없고 배터리는 소재 기업들에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됐습니다.
개별 그룹으로 보면 CJ 예를 들만 합니다. 저물지 않는 산업인 식품과 사료(CJ제일제당), 문화 콘텐츠(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화장품 유통(올리브영), 온라인 쇼핑 시대의 유망 업종 택배(CJ대한통운) 등. 몇 년 전만 해도 미래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중 문화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식상해져 있거나 미래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젊은 오너들이 전면에 서서 기업 종말의 기수들과 싸우는 것은 관료적 문화를 해체하고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잭 웰치의 말로 글을 맺습니다. “기업을 혁신한다는 것은 1~2년 전에 비해 얼마나 신속하고 강해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 세계에 비해 얼마나 신속하고 강인해졌는가를 부단히 자문자답하는 일이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전자업계를 취재하던 2009년, 노키아는 넘사벽처럼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팔리는 휴대전화 두 대 중 한 대는 노키아 브랜드였습니다.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노키아는 핀란드의 상징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에도 당당히 살아 남았습니다. 삼성이 노키아의 절반을 팔면 잘했다고 칭찬받던 시절. 2011년까지도 판매 대수 기준으로 세계 1위였습니다. 하지만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화려한 시절을 마감합니다.
필름 카메라 시장의 지배자 코닥의 몰락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코닥은 일찌감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놓고도 출시를 미루다 파산했습니다. 노키아도 비슷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비밀리에 아이패드와 같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태블릿을 개발했지만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2002년에는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투자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경영진이 묻어 버렸습니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은 노키아 몰락의 예고편이었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속도입니다. “저러다 코닥이 망하지”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파산까지 8년 걸렸습니다. 반면 노키아는 세계1위에서 내려와 사업을 매각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 채 안 됐습니다. ‘한 방에 훅 갔다’는 표현을 이런 데 쓰는 것 아닐까요. 달리 표현하면 ‘변화는 서서히 물결처럼 다가와 순식간에 큰 파도로 변했다. 그리고 아이콘 기업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정도가 될 듯합니다.
노키아 휴대전화를 물량으로 제압하며 사업을 접게 만든 회사는 삼성전자였습니다. 판매량 기준 세계1위를 차지한 삼성이 왜 잘됐느냐고 하면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2등 하면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이라 위기”라고 했고 1등 하면 “모든 기업들이 삼성을 노리고 있어 위기”라고 했습니다. 잘하면 “자만심에 빠졌다”고 위기라고 했고 못하면 “이대로 가다가 망한다”고 위기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기업들이 닥친 상황을 조명했습니다. 기업 종말의 4대 기수란 표현은 1980년대 미국 경영학계에서 나온 표현에 따왔습니다. 기업을 위협하는 4대 변수. 전통적으로 경쟁이 없던 항공·금융·통신분야에서 일어난 탈규제, 증가하는 신기술, 자본 시장 자유화와 적대적 인수·합병(M&A), 세계화로 인한 경쟁 영역의 격화 등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방향은 다르지만 위협의 강도는 비슷해 보입니다. 닌텐도와 나이키가 경쟁자가 되는 예측 불가능한 경쟁 구도, 기술의 빠른 진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부상, 흔들리는 세계화,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소비 위축, 중국의 빠른 추격 등이 그렇습니다. 내부적으로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받지도 않을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도 과제입니다.
과거 위협은 비교적 간명했습니다. 대부분 유동성이 문제였습니다. 현금 보유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전기차의 부상과 같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래도 따라갈만 했습니다.
하지만 경쟁 구도, 비용, 기술, 환경, 조직 문화 등 기업의 전략 수립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실질적 위협이고 여기에 속도까지 더해졌습니다.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2020년과 2021년 주가 상승기 한국 시가 총액 상위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는 꽤나 미래 지향적으로 보였습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인터넷 게임 등. 주가 3000은 이를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 반도체는 비메모리 부문의 약점이 부각되고 바이오는 큰 진전이 없고 배터리는 소재 기업들에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됐습니다.
개별 그룹으로 보면 CJ 예를 들만 합니다. 저물지 않는 산업인 식품과 사료(CJ제일제당), 문화 콘텐츠(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화장품 유통(올리브영), 온라인 쇼핑 시대의 유망 업종 택배(CJ대한통운) 등. 몇 년 전만 해도 미래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중 문화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식상해져 있거나 미래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젊은 오너들이 전면에 서서 기업 종말의 기수들과 싸우는 것은 관료적 문화를 해체하고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잭 웰치의 말로 글을 맺습니다. “기업을 혁신한다는 것은 1~2년 전에 비해 얼마나 신속하고 강해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 세계에 비해 얼마나 신속하고 강인해졌는가를 부단히 자문자답하는 일이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