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경제 위기 극복의 열쇠, 획기적 ‘규제 완화’에서 찾을 때

정부 개입을 통한 성장은 한계에 도달…자본주의 새 패러다임은 민간 투자 유인을 통한 성장

[머니 인사이트]


‘위기의 시대’다. 인플레이션은 잡히지 않고 블록화는 더 깊어지는 회색빛 미래를 예언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긴축과 탈세계화가 불가피하다면 투자자의 시계는 더욱더 암울하다. 종말론적 예언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닥쳐 왔던 위기를 극복하고 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산업혁명을 통해 자리 잡았던 초기 자본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기존 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대체될 때마다 경제학자들의 해설은 이를 뒤따라 쫓아갔을 뿐이다.

자유 방임의 한계를 드러낸 대공황 이후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 경제학이 등장했다.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경제학이 자리 잡게 된다.이 둘의 차이를 하나만 뽑자면 시장의 자유와 인플레이션에 관한 논쟁이다.

순서로 보면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시대가 가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대가 됐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당연히 시장 개입이 정당화됐다. 하지만 또 상황이 변했다. 경기가 침체를 향해 가고 있음에도 돈을 풀 수도, 정부의 개입을 키울 수도 없다. 유동성을 줄여도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유동성 줄어도 잡히지 않는 CPI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정부 개입은 너무나 당연했다. 경제가 흔들리면 정부가 지출하고 중앙은행은 돈을 풀었다. 어느 순간부터 경기가 좋지 않아지는 신호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이 정부의 인프라 투자라든지, 중앙은행의 돈 풀기 등을 바라보는 구도가 형성된 배경이다. 지극히 케인스적인 사고방식으로 과거 대공황과 같이 수요가 모자란다면 어떡하든 수요를 회복시키면 경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이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2008년의 금융 위기를 넘기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또다시 기존의 허물을 벗고 탈피 중이지만 아직 새로운 생산 양식이 어떤 형태가 될지를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경제학자건, 투자자건 하나의 주제에 몰입해 있다. 이미 시작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과연 제어될 수 있을지다. 공급망 이슈와 지정학적 갈등, 즉 수요가 아닌 공급 요인에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고민거리지만 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경기가 악화되고 있지만 더 이상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기 힘들다는 것이다.

통화량이 너무 늘어나 있고 정부 부채도 부담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 등으로 시장이 위태로울 때 가격 하락을 막아 주는 이른바 ‘페드 풋(Fed put)’의 재현을 기대하지만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일정 수준에서 긴축을 멈추거나 자산 가격의 방어를 위해 적당한 정책 스탠스를 취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경기의 둔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금융 시장이 흔들리면 Fed의 정책도 후퇴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여전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Fed의 목표는 물가 안정과 실업률의 하락이다.

Fed 역시 경기가 좋아지길 바랄 것이다. 실업률이 높아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경기보다 실업률이 우선이다. 물가가 치솟고 고용 시장에서 인력이 부족하다면 Fed는 물가가 원하는 수준으로 내려갈 때까지 긴축 정책을 변화시킬 이유가 없다.

원하는 수준이 목표로 하는 2%냐는 질문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긴 시간 동안 Fed는 긴축적인 정책을 펼칠 각오가 필요하다. 경제가 다소 훼손돼도 긴축을 이어 가는 것이라면 주가가 흔들려도 Fed가 섣불리 나서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주가가 빠지면 Fed가 정책 방향 전환을 고려할 것이라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하는 이유다.

반복해 강조하지만 지금 모든 경제 문제의 출발점은 물가이고 이 때문에 Fed는 긴축을 이어 갈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이슈로 인플레이션이 시작됐지만 정책 당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제한적이다. 유동성 회수다. 케인스적 처방이 아니라 프리드먼의 부활이다.

인플레이션 기대 제어 집중여기저기에서 1970년대를 소환하고 있다. 아마도 1973년 10월에서 1974년 1월까지 이어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으로 유가가 배럴당 4배 올랐던 사례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가 폭등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유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1960년대의 확대 통화 정책으로 인한 후유증과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무리한 ‘신경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처방은 1970년대 내내 고실업률과 고물가라는 조합을 풀지 못하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의해 해결됐다. 1970년대가 소환된 이유는 아마도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통화 관리를 엄격히 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번역 출판된 니컬러스 웝숏의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20세기 두 위대한 경제학자의 18년간의 논쟁을 다룬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프리드먼의 자유지상주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투자의 시계를 2~3년으로 좁혀 생각한다면 큰 정부와 세금에 반대하는 정서가 점점 더 강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은 더더욱 그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인생의 책으로 제시했다. 정부냐 시장이냐의 두 선택지에서 신정부는 시장을 낙점했다.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도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가 주된 정책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교과서의 한 문장을 떠올리고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1960년대 확장적 통화 정책의 결과였다면 이후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정부의 힘으로 돈을 찍고 인프라 투자를 하는 그림을 당분간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케인스적 처방의 기본 가정이 ‘통화량의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이기 때문이다. 공급적인 요인이든, 통화적인 요인이든 이미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발생했다. 물가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인정하지 않는 경제 정책이 채택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추론이다.

당장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제어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기의 하락이 어느 정도는 용인될 것으로 보이지만 굳이 가능성을 꼽자면 스태그플레이션 발생과 뒤를 이은 경기 침체의 확대보다는 시장 예상보다 빠른 물가 하락의 확률을 높게 보고 있다. 다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후 성장 모멘텀은 정부 개입보다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투자 유인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장기에 걸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기술 개발과 규제 완화에 집중하는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돈은 좀 줄어들고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어려운 시기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여기에 있다.

규제 완화는 경쟁을 촉진하고 경쟁은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고 혁신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생산성 향상이 매출과 이익 증가로 연결될 때 좋은 기업이 탄생한다. 좋은 기업이 늘어날 때 경제도 살고 투자자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위기 극복의 열쇠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쥐고 있다.‘MV=PY’ 공식으로 보는 인플레 위기론

학창 시절의 ‘경제 원론’ 수업 시간으로 기억을 되돌려 보자. 화폐 교환 방정식(‘MV=PY’)이라는 공식이다. 화폐 유통 속도(V)가 일정하다면 통화량(M)과 물가(P) 사이에 안정적 관계가 지속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경제 성장(Y)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렵게 보면 어려울 수 있고 쉽게 보면 쉬울 수 있는 공식인데, 이제 판단의 편의를 위해 이 공식을 조금 변형해 보자. 미분을 통해 변형하면 △M+△V(통화량의 증감+통화 유통 속도의 변화)=△P+△Y(인플레이션+경제성장률)가 된다.

‘△’은 변화다. 이 공식을 해석하면 통화량의 변화는 정부가 시장에 풀어놓는 돈의 양을 뜻한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돈을 많이 풀어 사람들에게 나눠 줬고 지금은 돈의 양을 줄이려고 한다. 통화 유통 속도는 정부가 풀어 놓은 돈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결국 △M+△V가 의미하는 것은 시장에서 움직이는 돈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P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가의 변화로 생각하면 되고 △Y는 국내총생산(GDP), 즉 경제의 성장률을 의미한다. 종합해 생각해 보면 시장에 돌고 있는 돈은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데 쓰이든지 아니면 남아서 가격이 오르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공식을 통해 상황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변화는 물가의 급격한 하락이나 경기의 급격한 하락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시장에 돈이 굉장히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결국 이 돈을 줄이면 △M이 감소하고 기준금리를 올려 대출을 줄이면 △V가 하락한다.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물가나 경제성장률 둘 중의 하나는 빠르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물가가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은 미국 중앙은행(Fed) 정책 이후의 주가 진입 시점을 노리고 경기가 빠르게 하락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스태그플레이션과 경기의 침체를 주장하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둘째, 생각보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 못지않게 통화량 감소(QT) 정책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제어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통화 유통 속도(돈이 도는 속도)의 상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너무 많이 찍어 낸 데 있다. 사람들은 현시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때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풀린 돈이 상당폭 회수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잡히기 힘들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이후 정책의 방향에서 QT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투자자들 역시 Fed의 대차대조표에 양적 완환 정책을 통해 지나치게 많이 쌓아 놓은 자산을 어떻게 줄여 가는지를 주시할 것이다.

다만 현시점에서 Fed가 드러내놓고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Fed의 QT 효과에 대해 시장이 가지는 기대감이 낮고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데 기준금리 인상이 훨씬 강력한 도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 등 Fed는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강한 코멘트를 하는 동시에 시장이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통화량 감소를 지속적이고 강하게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QT보다 자이언트 스텝으로 달려가는 기준금리 인상에 모든 시선에 쏠려 있다. 하지만 QT가 기준금리 인상에 더해 1.25% 정도에 해당하는 숨겨진 금리 인상 효과가 점점 더 인플레이션 압력을 둔화시키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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