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Fed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한국은행의 역할
입력 2022-06-25 06:00:07
수정 2022-08-03 09:52:02
[EDITOR's LETTER]
얼마 전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쏠 수 있는 일곱째 나라가 됐습니다. 뿌듯함과 동시에 미국인들은 벌써 50여 년 전에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처음 달에 착륙시킨 미국의 아폴로 11호 얘기입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은 1969년 7월 21일이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한국도 그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함께 축하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달 착륙이 경이롭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의 나라가 우주선을 쏜 것이 그 정도로 흥분할 일이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아폴로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해 확산된 눈병은 아폴로 눈병으로 불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아폴로란 이름의 식당도 곳곳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또 지금은 불량 식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폴로라는 이름의 간식이 출시된 것도 1969년입니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정식 제품으로 2010년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아폴로는 좀 억울하겠지만 여하튼 미국에 대한 관심과 동경,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동경은 줄었지만 미국의 대중적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주식입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장’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이 관심은 자연스럽게 인물로도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주변에 이주열은 몰라도 파월은 안다는 애들이 많아”라고 했습니다. 그럴 듯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제롬 파월과 지난 5월까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이주열. 한국 언론에 파월 기사가 더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익숙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주식하는 인구가 1000만 명으로 늘어난 영향도 큽니다. 파월의 한마디에 미국 주가가 출렁이고 다음날 한국 주가에 곧장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Fed와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다뤘습니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 선택은 좀 망설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미 Fed의 실패를 다룬 것도 선택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정리하고 가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JP모간 소유의 지킬섬에서 기획되고 그 계획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되자 대통령 선거에까지 개입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킨 끝에 만들어진 Fed의 탄생 스토리는 이후 온갖 음모론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공황이 끝난 줄 알고 너무 일찍 금리를 올려 더블 딥을 불러온 중대한 실책도 있었습니다.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한다고 해서 ‘그린스펀 풋(put)’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잉태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앨런 그린스펀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다’라는 금언을 무시하고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쳐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비판을 받는 요즘의 Fed까지…. 대략 이런 얘기들을 다뤘습니다.
부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폴 볼커 전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립니다. 금리를 20%까지 올리며 1970년대 미국을 괴롭힌 스태그플레이션을 잠재운 인물이지요. 그는 민주당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선임했지만 다음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은행과 볼커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장기적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가 앨런 그린스펀이라고 답했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제롬 파월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미쳤다(gone crazy)”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금리를 인상하며 버텼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타협했지만…. 이런 Fed의 스토리는 넘칩니다. Fed 목표인 물가 안정과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한국은 좀 다릅니다.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한국은행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화제였습니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면서 한 말입니다. 한국은행의 독립, 사회적 존경 등은 한국에서는 아직도 먼 얘기인 듯 합니다.
미국 시장에는 “Fed에 맞서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거스르면 투자에 실패한다는 얘기겠지요. 시장은 침체돼 있지만 투자는 계속돼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드는 Fed 스토리를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얼마 전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쏠 수 있는 일곱째 나라가 됐습니다. 뿌듯함과 동시에 미국인들은 벌써 50여 년 전에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처음 달에 착륙시킨 미국의 아폴로 11호 얘기입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은 1969년 7월 21일이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한국도 그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함께 축하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달 착륙이 경이롭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의 나라가 우주선을 쏜 것이 그 정도로 흥분할 일이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아폴로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해 확산된 눈병은 아폴로 눈병으로 불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아폴로란 이름의 식당도 곳곳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또 지금은 불량 식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폴로라는 이름의 간식이 출시된 것도 1969년입니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정식 제품으로 2010년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아폴로는 좀 억울하겠지만 여하튼 미국에 대한 관심과 동경,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동경은 줄었지만 미국의 대중적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주식입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장’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이 관심은 자연스럽게 인물로도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주변에 이주열은 몰라도 파월은 안다는 애들이 많아”라고 했습니다. 그럴 듯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제롬 파월과 지난 5월까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이주열. 한국 언론에 파월 기사가 더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익숙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주식하는 인구가 1000만 명으로 늘어난 영향도 큽니다. 파월의 한마디에 미국 주가가 출렁이고 다음날 한국 주가에 곧장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Fed와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다뤘습니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 선택은 좀 망설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미 Fed의 실패를 다룬 것도 선택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정리하고 가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JP모간 소유의 지킬섬에서 기획되고 그 계획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되자 대통령 선거에까지 개입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킨 끝에 만들어진 Fed의 탄생 스토리는 이후 온갖 음모론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공황이 끝난 줄 알고 너무 일찍 금리를 올려 더블 딥을 불러온 중대한 실책도 있었습니다.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한다고 해서 ‘그린스펀 풋(put)’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잉태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앨런 그린스펀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다’라는 금언을 무시하고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쳐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비판을 받는 요즘의 Fed까지…. 대략 이런 얘기들을 다뤘습니다.
부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폴 볼커 전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립니다. 금리를 20%까지 올리며 1970년대 미국을 괴롭힌 스태그플레이션을 잠재운 인물이지요. 그는 민주당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선임했지만 다음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은행과 볼커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장기적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가 앨런 그린스펀이라고 답했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제롬 파월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미쳤다(gone crazy)”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금리를 인상하며 버텼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타협했지만…. 이런 Fed의 스토리는 넘칩니다. Fed 목표인 물가 안정과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한국은 좀 다릅니다.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한국은행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화제였습니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면서 한 말입니다. 한국은행의 독립, 사회적 존경 등은 한국에서는 아직도 먼 얘기인 듯 합니다.
미국 시장에는 “Fed에 맞서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거스르면 투자에 실패한다는 얘기겠지요. 시장은 침체돼 있지만 투자는 계속돼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드는 Fed 스토리를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