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 1년 만에 16위→10위로

세계 280개 도시 조사에서 첫 톱10 진입…자금 조달, 지식 축적 부문에서 높은 점수

[비즈니스 포커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전쟁 등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규제 강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거대한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시장에 역동성을 더하고 혁신을 이끌어 가는 첨병 역할을 도맡는 이들은 바로 ‘스타트업’들이다. 스타트업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 국가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지난 6월 14일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평가 기관인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2022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타트업 지놈은 이 보고서를 통해 2012년부터 해마다 ‘전 세계에서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전 세계 100개국 280개 도시를 조사한 결과 서울이 처음으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 ‘제2의 스타트업 붐’ 맞았다

올해 처음 10위권 내 진입에 성공한 서울은 지난해와 비교해 가장 많이 순위가 오른 도시들 중 하나다. 2019년 30위권 밖에 머물렀지만 2020년 20위, 2021년 16위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한번에 순위가 6계단 뛰어올랐다.

서울시의 스타트업 생태계 가치 평가액은 1770억 달러(약 233조원)를 기록했다. 2020년 39억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 새 4배 이상 시장이 성장한 셈이다. 스타트업 지놈은 특히 쿠팡을 포함한 5건의 대규모(10억 달러 이상) 자금 회수가 서울 스타트업의 생태계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은 지난해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하며 시가 총액 600억 달러(약 70조원)를 인정받았다. 이는 한국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 가치의 약 42%에 해당하는 규모다.

서울은 특히 6개 평가 항목(성과, 자금 조달, 지식 축적, 네트워크 연결성, 시장 확대, 인재 양성) 중 자금 조달(9점)과 지식 축적(8점)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스타트업 지놈은 최근 서울이 ‘제2의 벤처 붐’을 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과 벤처 투자 관련 건수가 해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2021년 벤처캐피털(VC) 펀딩은 77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2021년 한국의 스타트업에 대한 VC 투자는 전년 대비 78% 증가한 64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중 서울은 35억 달러로 전체 투자 금액의 56%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있는 18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중 15개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특히 2021년에만 7개의 유니콘 기업이 새롭게 탄생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두나무와 프롭테크 스타트업 직방, 푸드 스타트업 마켓컬리,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과 콘텐츠 플랫폼 리디 등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지놈은 서울이 특히 ‘자금 조달’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 등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 기관의 협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2년 2월 출범한 서울투자청(Invest Seoul)을 예로 들었다. 해외 기업과 투자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전담 기구로 2030년까지 외국인 직접 투자(FDI : Foreign Direct Investment) 규모를 2021년 179억 달러에서 연 3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창업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혁신 기업 육성을 위해 권역별 거점을 조성한 창업 정책 또한 서울의 창업 생태계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받는 주 요인으로 언급됐다. 서울은 바이오테크놀로지(홍릉), 인공지능(AI)·빅데이터(양재), 핀테크(여의도), 로봇(수서), 사물인터넷(G밸리) 등 7개의 주요 산업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딥 테크놀로지 허브’로 안착하고 있다. G밸리는 구로동·가리봉동·가산동 일대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별칭이다.

이와 함께 서울의 우수한 인력 수준 또한 장점으로 꼽혔다. 스타트업 지놈은 한국은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25~34세)가 가장 많은 국가이고 특히 서울에만 54개의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기술연수원인 서울소프트아카데미(SeSac·새싹)를 통해 2025년까지 4만 명의 디지털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5세대 이동통신(5G)과 무료 공용 와이파이로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고 있는 ‘혁신적인 도시’라는 점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요소다. 삼성·LG·현대 등 세계 최대 기업 브랜드 70% 이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글로벌 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에 따르면 서울은 2021년 과학 기술 분야에서 넷째로 활발한 클러스터에 선정된 바 있다. 2019년 한국은 연구·개발(R&D)에 10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다섯째로 많은 규모다.

스타트업 지놈은 서울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는 스타트업 분야로 AI와 빅데이터(AI&Big Data and Analytics), 생명과학(Life Sciences), 첨단 제조업과 로봇 산업(Advanced Manufacturing&Robotics)을 선정했다.

황보연 서울시 경제정책실장은 “서울시와 각 분야 창업 주체들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톱10에 진입할 수 있었다”며 “2030년까지 글로벌 유니콘 40개가 탄생할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글로벌 톱5 도시로 도약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돋보기> 부동의 1위 실리콘밸리, 중국 베이징은 순위 하락
스타트업 지놈이 발표한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 톱10’의 부동의 1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2012년 첫 조사를 시작한 이후 한 차례도 뺏기지 않고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를 평가하기 위한 6개 항목(성과, 자금 조달, 지식 축적, 네트워크 연결성, 시장 확대, 인재 양성) 모두 10점 만점에 10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 점유율은 2012년 25%에서 2021년 13%로 감소 추세다. 스타트업 지놈은 “초기 단계의 투자는 미래 기술의 성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실리콘밸리 외 나머지 지역들의 기술 발전이 실리콘밸리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2위는 런던과 뉴욕이 차지했는데, 이 두 도시는 특히 지식 축적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보스턴(4위), 로스앤젤레스(6위), 시애틀(9위)을 포함해 5개의 미국 도시가 10위권 내 이름을 올렸다. 2위에 오른 런던은 글로벌 금융 허브로 핀테크 스타트업 등이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조사가 시작된 이후 전통적으로 높은 순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베이징(5위)과 상하이(8위)가 순위에 들었다. 그중 베이징은 지난해 3위에서 순위가 2계단 하락했다. 스타트업 지놈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강력한 도시 봉쇄 조치가 취해진 데다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들을 옥죄며 규제를 강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가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트업 지놈이 평가한 올해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의 규모는 약 1조6500억 달러(약 2140조원)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만 1227개에 달한다. 하지만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가운데 상위 도시들의 비율이 높아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한 지역별 차이가 여전히 컸다. 스타트업 지놈에 따르면 톱5 도시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치의 총 합은 3조8000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상위 30개 도시 가운데 나머지 25개 도시의 가치의 총합인 2조3000억 달러 규모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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