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30대 0선(選)’, 18선 쟁쟁한 중진 제쳤을 땐 변화·열망 기대…지금은 분란 한복판에
[홍영식의 정치판]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6월 11일 대표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승리했을 때 당내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 ‘30대 0선(選)’의 이준석 대표가 나경원·주호영·조경태·홍문표 후보 등 모두 18선의 쟁쟁한 중진 의원들을 격파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준석 신드롬’, ‘세대교체 돌풍’, ‘파란’ 등 단어들이 신문 제목을 장식했다.
물론 당 한쪽에선 ‘0선의 정치 초년병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 가사 중 일부를 인용했다.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자신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대표에 취임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그에게 걸었던 기대를 충족하고 있을까. 평가는 엇갈린다.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둔 데는 그의 힘이 컸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2030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의 지지를 끌어와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당원도 80만 명 정도 늘어났다.
이 대표 등장 이전만 해도 대선판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현 민주당 의원)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간 경쟁이 크게 주목받은 반면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대통령)이 아직 대선판에 등장하지 않아 경선 흥행이 일지 않은 데다 국민의힘은 노쇠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지율도 민주당에 비해 크게 뒤졌다. 하지만 이 대표의 등장은 정치 판도를 서서히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2030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의원) 등 바깥 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당내 움직임과 맞물려 국민의힘은 여론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다만 윤 전 총장의 입당 문제 등을 놓고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의 밀당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 측면도 있었지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측의 힘 겨루기로 인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민주당에 쏠린 국민의 눈을 국민의힘으로 돌리는 효과를 거둔 측면도 있다.
자연히 민주당 주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를 의식한 견제성 발언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 대표를 겨냥해 “어떤 분은 능력대로 경쟁하자고 주장하고 제1야당 대표가 됐다”며 “능력에 맞게 경쟁하는 것은 옳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세상이 이뤄지면 격차가 한없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 대표 선출에 대해 “구태 정치를 걷어내는 정치를 해달라는 열망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적대와 균열, 대립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면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조심해 주면 좋겠다”고 견제했다.
이 모든 게 ‘이준석 컨벤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홍준표 의원(대구시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내 대선 주자들과 윤 전 총장, 최 전 원장 등 국민의힘 장외 주자들이 ‘이준석 밴드왜건’에 오른 것은 이 대표의 흡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갈등 조정력 발휘 못하고 SNS로 외곽 때리기
하지만 이후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두 가지 원인이 겹쳤다. 이 대표 본인의 리더십 문제와 당 주도권을 쥐려는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의 이 대표 견제가 합쳐지면서 당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이 지난해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대표가 당무를 보이콧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 특히 그랬다. 윤석열 후보가 울산으로 내려가 이 대표와 가까스로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윤 후보 측 조수진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이 이 대표에게 대들고 이 대표는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하는 한심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 대표의 불만은 당시 선대위가 당의 공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윤 후보 측근 그룹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이 배제되고 일부 측근에 의해 돌아가다 보니 윤 후보의 처가 의혹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게 이 대표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일단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당은 후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임에도 이 대표는 당무 보이콧까지 벌인 것은 궤도를 한참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돼 온 이유다. 특히 언론 인터뷰에서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즉답을 피한 것은 당에 충격을 줬다.
대표가 내부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할 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사사건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외부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 대표가 외곽을 때려 논란을 증폭한 다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치판을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대중 정치인의 속성이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 이후 국민의힘 상황은 심각하다. 이 대표의 ‘성 상납 및 증거 인멸 교사’ 의혹을 놓고 국민의힘 내부의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대표의 잘못이 드러난다면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깨끗하게 물러나면 되고 반대라면 이 문제를 제기한 측이 합당한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징계 문제를 둘러싼 당권 다툼이다.
이 대표 측은 당 대표를 중도에 몰아내려는 ‘윤핵관의 음모’, ‘쿠데타’라고 지속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 대표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반대로 윤핵관 측은 의혹들이 있는데 이 문제를 마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 3월 대선 이후 줄곧 당권 다툼을 벌여 왔다. 이 대표와 ‘윤핵관’ 정진석 의원은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 적절성을 놓고 ‘개소리’, ‘싸가지’ 등 온갖 험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며칠 동안 충돌하면서 국민을 짜증나게 했다.
“갈등 확대 재생산, 與 대표 아니라 정치 평론가 같다”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이 연일 입씨름을 벌인 것도 마찬가지다. 당무에 관한 것도 아니고 회의 발언의 언론 유출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로 싸우다가 당 대표가 회의장을 뛰쳐나가는 볼썽 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이 대표가 악수를 청하는 배 최고위원의 손을 밀쳐낸 것이나 배 최고위원이 항의의 뜻으로 이 대표의 어깨를 친 것도 ‘도긴개긴’이다.
최고위원 추천 문제를 두고 이 대표가 안철수 의원에게 SNS를 통해 장외 공세를 퍼부은 것도 그렇다. 이견이 있다면 마주 앉아 의견을 나누고 타협하는 민주 정치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가 배 최고위원을 겨냥한 ‘디코이(decoy : 유인용 미끼)’ 발언, 안 의원과 ‘윤핵관’ 장제원 의원을 향한 ‘간장 한 사발’ 발언도 그런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만하다. 대표가 아니라 정치 평론가 같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년 사이 이렇게 분란이 끊이지 않았고 그 중심에 갈등 조정은커녕 확대 재생산에 나서는 이 대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는 국민과 당원들은 이 대표 체제의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한 눈빛’을 더 강하게 보내고 있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