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 곤란’ 비판에 ‘친환경 음반’ 내놓는 4대 엔터사들

팬덤서도 ‘ESG 강화’ 목소리 높아져…‘선한 영향력’ 넘어 구체적 실천 방안 마련해야

[비즈니스 포커스]

케이팝포플래닛 관계자들이 4월 21일 서울 용산구 BTS소속사 하이브 사옥 앞에서 친환경 앨범 선택지 도입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1분기 주요 엔터테인먼트 4사(하이브·SM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는 무려 809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CD 대신 음원 사이트에서 음원을 듣는 시대다. 누가 실물 음반을 이렇게나 많이 사는 것일까.

정답은 ‘팬덤’이다. 팬덤은 ‘남는 것은 기록’이라는 신조 아래 공동 구매로 가수의 음반 판매량을 늘린다. 발매 1주일 음반 판매량을 말하는 ‘초동’은 팬덤의 자존심 싸움이 된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팬 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한 사람이 적게는 수십 장, 많게는 100여 장이 넘는 CD를 구매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수십 장을 사는 팬도 있다. 앨범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멤버의 포토카드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콘서트 개최가 쉽지 않았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 엔터사들은 팬심을 이용해 음반과 굿즈를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듣지도 않는 수백 장의 음반은 제아무리 팬심이 굳건해도 ‘짐’이 될 수밖에 없다.

‘CD 없는 음반’의 등장 2020년대의 음반은 가수의 음악적 결과물을 넘어 ‘굿즈’가 됐다. CD를 비롯해 화보집·포토카드·메시지 카드·가사집·등신대 등 구성 품목도 다양하다.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선택지도 늘어났다. 엔터사는 리패키지라는 명목 아래 같은 앨범을 두세 번 발매하고 커버 사진을 멤버별로 다르게 내놓는 등 다양한 구성을 통해 판매량을 늘린다. 팬덤이 무분별하게 음반을 소비한다고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팬덤 또한 버려지는 음반이 얼마나 환경에 유해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K팝 팬들로 구성된 기후 변화 위기 대응 플랫폼 ‘K팝포플래닛’은 지난 4월 하이브 사옥 앞에서 친환경 앨범 선택지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에 따르면 버려진 음반은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한다. 투명 폴리염화비닐(PVC)로 포장된 음반은 재활용하기도 쉽지 않다. CD는 아예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된다. 포토카드와 사진집은 그냥 종이가 아닌 코팅된 뻣뻣한 종이다.

이 때문에 엔터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첫걸음은 음반 발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팬덤 내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최근 엔터사들은 음반 판매를 보다 ‘친환경적’으로 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그룹 NCT드림의 정규 2집 리패키지 ‘비트박스’ 음반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했다. 이 앨범은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의 인증을 받은 용지를 사용했다. 또 쉽게 자연 분해되는 콩기름 잉크,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배출이 없는 환경 친화적인 자외선(UV) 차단 코팅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음반으로 제작돼 환경 오염 부담을 줄였다.

이미 송민호·아이콘 등의 앨범을 친환경 형태로 제작한 바 있는 YG엔터테인먼트는 7월 5일 발매하는 그룹 ‘위너’의 앨범도 친환경으로 제작한다. 이번 위너의 신보는 FSC 인증을 받은 용지와 저탄소 친환경 용지, 콩기름 잉크, 환경 보호 코팅으로 만들어졌다. 키트 앨범 또한 FSC 인증 용지와 생분해 플라스틱(PLA)이 사용됐다. 포장 비닐도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를 활용했다.

그룹 BTS의 멤버 제이홉의 솔로 음반은 ‘CD 없는 앨범’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에 따르면 이번 음반은 QR카드와 카드 홀더, 포토카드로 구성돼 있다. 위버스 앨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로그인한 후 QR카드에 있는 코드를 인식하거나 디지털코드 번호를 입력하면 음반을 내려받을 수 있다. 앱에서는 음반 전곡을 들을 수 있고 사진 콘텐츠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BTS를 포함해 하이브 산하 레이블에서 CD가 없는 형태로 음반이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지속 가능한 ESG 경영 실천 방법 고안해야”
음반 판매 상술과 함께 엔터사들의 ESG 경영 실천이 다른 산업군보다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기업 차원’의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엔터사의 ESG 실천은 회사보다 아티스트의 ‘선한 영향력’ 전파, 팬덤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엔터사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더 이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ESG 전담 조직과 전문 인력 영입 등 회사 차원에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 이행에 합류하는 가운데 엔터업계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JYP엔터테인먼트는 6월 16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업계 최초로 한국형 RE100(K-RE100)을 이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JYP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받았다. 한국형 RE100은 기업들이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 ‘RE100’의 한국형 제도다. 기업이 한국형 RE100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한 실적에 대해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국내외 기업들에 RE100 솔루션을 제공하는 루트에너지와의 협업으로 지난 5월 1년 전력 사용량에 해당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전국 14개 태양광 발전소에서 구매해 한국형 RE100을 이행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ESG 실무협의체 구성’ 안건이 지난 5월 말 이사회에서 승인됐다고 밝혔다. ESG 실무협의체는 음악 콘텐츠의 기획·제작과 아티스트 활동 등 사업 진행 과정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 나가기 위한 과제를 추진한다. 협의체에는 사내의 주요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부서장들이 참여해 월 1회 이상 참여해 회의를 연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ESG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반기 1회 이상 ESG 교육과 자문을 진행하고 연내 ESG 보고서 발간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지난 3월 정기 주주 총회에서 이미경 재단법인 환경재단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대표는 기업과 환경 비정부기구(NGO)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통해 다양한 행보를 보였고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전력도 있다. 하이브는 이 대표의 전문성을 토대로 본격적인 ESG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남효지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엔터사의 경영 활동은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들에 비해 ESG 활동에 소홀했던 엔터테인먼트 업종에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라며 “글로벌 팬덤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환경을 비롯한 ESG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기획사들은 지속 가능한 ESG 경영 실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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