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쇼크, 샤넬 대신 적금 오픈런해요”…플렉스 끝, 스퀴즈 시작

주식·코인 폭락에 경험 못한 경기 불황까지
허리띠 졸라매고 마른 지갑 쥐어 짜는 ‘2030 생존기’

[스페셜 리포트]

그래픽=박명규 기자



감염병 위기를 벗어나나 했더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한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시에 덮친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의 시대가 왔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짠다는 뜻의 ‘스크루(screw)’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회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산층에는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고 나가야 할 돈은 늘어나게 된다. 살림살이를 쥐어짜야 하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실질적 경기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체감 물가를 상승시킨다.

이 때문에 국민의 경제 고통(실업률·물가상승률)을 급격히 높이게 돼 그 여파가 매섭다. 직장인과 젊은 세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스크루플레이션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그래프=박명규 기자


“점심 값 무서워” 배달 앱 지우고 도시락으로 끼니

직장인의 여름 별식으로 사랑받던 냉면 값이 1만원대를 돌파했다. 김밥은 한 줄에 3000원이 넘는다. 런치 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고물가 속에 식비 부담이 커지면서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점심 도시락을 직접 싸오거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2022년 1~6월 편의점 CU의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마켓컬리도 올해 2분기(4~6월) 컵 도시락 판매량이 1분기보다 1.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높아진 물가에 편의점 마감 할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애플리케이션(앱)도 나왔다. 라스트오더 앱을 통해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에서 유통 기한이 임박한 도시락·삼각김밥·샌드위치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수혜주로 주목받던 배달 앱들의 매출 성장세는 꺾였다.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주요 배달 앱의 결제 추정 금액은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전인 올해 3월(2조3500만원)과 비교해 6월 1조8700만원으로 21% 감소했다.

이용자도 감소세다. 5월 배달 앱 3사의 월간 이용자 수(MAU)는 4월(3321만6220명) 대비 약 5.3% 감소한 3201만2451명을 기록했다. 이유는 거리 두기 해제와 배달료 인상이 겹치면서 배달보다 직접 매장을 방문해 먹거나 포장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돈을 아끼기 위해 배달앱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정부는 이를 알고 있다. 정부는 직장인들의 점심 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직장인 식대비 비과세 한도를 현행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하는 이른바 ‘밥값 지원법(소득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치솟는 유가를 잡기 위해 유류세 법정 인하 폭을 50% 이상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미 7월 1일부터 유류세 인하율을 법정 최대 한도인 37%까지 확대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해 부담 완화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차는 사치…“카풀하실 분 구해요”

치솟는 기름 값에 직장인들은 ‘자차 통근’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풀로 눈을 돌린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7월 5일 기준 휘발유의 전국 평균 판매 가격은 리터당 2116원으로 1년 전(1641원)보다 28.9% 올랐다. 같은 기간 경유의 전국 평균 판매 가격도 1437원에서 2150원으로 1년 새 약 49.6% 올랐다.

차량 유지비 상승으로 차를 두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뚜벅이’ 직장인도 늘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올해 3월 1억6118만 명이었던 서울 지하철 1~9호선 수송 인원은 4월 1억8118만 명, 5월 1억9968만 명이 됐다.

차량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원정 주유’에 나섰다. 교통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10원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서울 시내 알뜰주유소 앞에는 조금이라도 더 싸게 주유하려는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카풀족도 늘었다. 당근마켓과 중고나라에도 카풀 운전자와 탑승자를 구하는 글이 부쩍 늘었다. 직장인 강 모(38) 씨는 “용인 집에서 직장이 있는 강남까지 통근하는데 혼자만 타고 가는 게 요즘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며 “아파트 커뮤니티에 카풀 탑승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022년 2분기 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 보고서에서 “가계 소득이 정체되는 가운데 높은 물가 수준으로 소비 심리가 악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내수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리해 집 샀는데…눈덩이 이자에 ‘영끌족’ 패닉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플렉스(Flex : 과시형 소비)’는 옛말이 됐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갑을 쥐어짜야 하는 우울한 전망이 현실이 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분류되는 20~30대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 팍팍해졌다. 갭 투자로 집을 장만했던 MZ세대는 금리 인상과 부동산 침체로 이자 걱정에 잠 못 드는 나날을 보낸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주식과 코인 등 가상 자산 투자에 올인했던 MZ세대는 자산 가치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은행이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며 이들의 비명 소리는 더 커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스티커 쇼크와 과잉 대응’ 보고서에서 “정부 방역 정책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며 보상 소비에 따른 소비 회복이 기대됐지만 고물가에 따라 소비 심리가 냉각됐다”면서 ‘스티커 쇼크’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티커 쇼크는 예상 밖의 가격 상승에 따라 소비자가 받는 충격을 의미한다. 매장 내 제품 가격을 표시하는 스티커에서 유래됐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며 플렉스에 열중하던 MZ세대들은 치솟는 금리와 주식 시장 불안에 ‘짠테크(짠돌이+재테크)’에 돌입했다. 2년 차 직장인 김 모(32) 씨는 업무 미팅과 데이트를 하며 모은 스타벅스 e프리퀀시 완성본을 당근마켓에 올려 2만5000원을 벌었다.

가격대가 높은 미션 음료 3잔과 일반 제조 음료 14잔 등 총 17잔을 마시고 17장을 모으면 스타벅스 굿즈(증정품)와 교환할 수 있다. 증정품 대신 프리퀀시를 현금화해 치킨 값을 번 셈이다.


고물가와 폭염으로 직장인들의 구내식당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청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이 식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 폐지 줍기’로 10원씩 저금…짠테크의 부활

짠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푼돈으로 목돈 만드는 방법, 생활비 절약법 등 절약 노하우와 앱 테크 정보를 공유하는 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출석 체크를 하면 포인트가 쌓여 현금처럼 쓸 수 있거나 설문에 참여하면 건당 일정 금액을 적립해 주는 앱 테크는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부수입 수단이다. 이런 종류의 앱 테크를 통해 포인트와 쿠폰을 모아 생활비에 보탤 수 있어 ‘디지털 폐지 줍기’로도 불린다.

토스 만보기나 캐시워크 등 걷기를 통해 소액을 벌 수 있는 앱 테크도 인기다. 토스 만보기는 1000보에 10원, 5000보에 10원, 1만 보에 20원을 적립해 준다. 토스 행운 퀴즈에 참여하면 더 많은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MZ세대들은 고금리 예금·적금 상품에 몰리고 있다. 명품만 ‘오픈런(개점하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예·적금도 오픈런 시대다. 높은 금리를 주는 한정판 특판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위험 자산인 주식·가상화폐 시장이 침체하고 경제가 불안해지자 시중 자금이 주식 등의 위험 자산에서 안전 자산인 은행으로 이동하는 ‘역(逆) 머니 무브’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자금 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가계의 저축성 예금이 42조3000억원으로 1년 전(15조원)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주식에 투자한 돈은 16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1년 전 52조2000억원이 늘어난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하고 영수증을 인증하는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통해서도 네이버 포인트를 적립해 사용할 수 있다. 티끌이라도 모아 생활비에 보태자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앱에 출근 도장을 찍는 것이다.

이월 상품 또는 반품 등으로 흠집이 생긴 상품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사용에 문제가 없지만 정상 가격에 판매하지 못하는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티몬의 초가성비 상품 기획관인 ‘알뜰쇼핑’의 5월 매출은 전월과 비교해 무려 3.8배(279%) 늘었다. 밥상 물가와 밀접한 식품이 307% 늘었고 뷰티(412%), 리빙(990%) 상품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쓰레기를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 ‘쓰테크(쓰레기+재테크)’도 주목받고 있다. 재활용할 수 있는 캔과 페트병 등을 회수하는 전문 업체를 통해 버리면 포인트로 적립해 주는데 일정량 이상 쌓인 포인트는 현금 전환하거나 각종 상품을 구매하는 데 쓸 수 있다.

헌 옷·중고책·중고 가전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굿윌스토어나 아름다운가게 등에 기부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받으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직장인들은 생활 필수품 위주로 지출 우선 순위를 매기고 있다.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 중 오락과 취미 생활에 쓰는 비용이다.

사람들은 월 1만원이 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구독료를 아끼기 위해 구독 해지에 나섰다. 넷플릭스는 올해 4월 유료 가입자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1분기 20만 명에 이어 2분기 200만 명이 넷플릭스 구독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대 물가 공포, 외환 위기 이후 최고치

직장인과 MZ세대를 짠테크 시장으로 내몬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따른 공급망 차질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수치로 보면 그 강도를 알 수 있다.

2022년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 급등했다.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국민이 자주 구매하는 쌀·라면 등 생활물가지수는 7.4% 올랐다. 1998년 11월(10.4%) 이후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아직 7월 1일부터 적용된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의 추가 인상분이 6월 물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 여름철에는 물가가 7~8%대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

물가가 오르면서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민고통지수는 10.6이다. 2015년 1분기 이후 최고치다.

국민고통지수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해 국민의 경제적 고통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실업자는 늘고 물가는 높아진다.

반대의 경우 삶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으로 본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국민고통지수가 높아지면 소비 위축 등 경제 악영향으로 실업이 증가해 지수가 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퀴즈(squeeze) 용어 설명 : ‘짜내다’라는 뜻으로 기사에서는 살림살이를 쥐어짜는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용어로 썼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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